추워지면 더 깊어진다… 푸른등·붉은살의 ‘참맛’[이우석의 푸드로지]

2024. 12. 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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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푸드로지 - 가을생선 꽁치·청어
오메가3 함량 가장 높은 ‘꽁치’
한번에 많이 잡혀 가격도 저렴
찬바람에 말린 과메기 즐기고
통조림은 김치찌개 끓여 먹어
유럽선 꽁치보다 ‘청어’ 인기
일본선 비누 등 생활용품 재료
1970년대 국내 어획량 급감
21세기 들어서며 다시 많아져
석쇠에 올려져 구워지고 있는 꽁치. 꽁치는 기름이 도는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제철이다. 겨울이 깊어지면 꽁치는 기름기가 줄어드는 대신 담백한 맛이 올라온다. 게티이미지뱅크

낙지나 전어처럼 특별한 수식은 붙지 않지만 꽁치는 엄연한 가을 생선이다. 가을에 많이 잡히고 맛도 최상으로 오르지만 아예 이름에 가을 추(秋)가 들었다. 꽁치의 한자 이름은 ‘추도어(秋刀魚)’다. 뜻은 가을에 잡히는 칼처럼 생긴 생선이란 뜻이다. 갈치가 도어(刀魚)니 자칫 갈치의 한 종류로 생각하겠지만 이 둘은 서로 많이 다르다.

꽁치는 동갈치목 꽁칫과에 속하는데, 갈치는 뜻밖에 고등어목에 속한다. 동갈치가 갈치의 친척이 아니겠냐 하겠지만 엄연히 다른 종이다. 동갈치(Pacific needlefish)는 창처럼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어종. 가끔 날아올라 조업하는 어부를 찔러 뉴스에 등장하는 위험한 생선이다. 갈치와는 생긴 것부터 다르다. 오히려 거대한 학꽁치를 연상하면 된다. 참고로 갈치와 닮은 산갈치(이악어목 산갈칫과)란 것도 있는데 심해 대형 어종으로 최대 10m 넘게 자란다. 아무튼 꽁치는 이래저래 당당히 자신만의 족보를 지닌 물고기다.

우리 수역에도 많이 사는 꽁치는 고등어와 함께 등 푸른 생선을 대표한다. 작은 멸치부터 커다란 참다랑어까지 체급 서열(?)이 정해진 등 푸른 생선 중에선 멸치(대멸), 밴댕이와 덩치가 제법 되는 전갱이, 청어 사이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꽁치는 생긴 것이 길쭉해서 체격이 작다고 생각되지만 길이는 은근히 긴 축에 든다. 평균 25㎝에 이른다.

등 푸른 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살점이 붉다는 것인데 꽁치 역시 풍미가 진한 붉은 살을 가지고 있다. 맛이 진하고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도 풍부히 함유했다. 그중에서도 오메가3는 꽁치에 가장 높은 함량으로 들었다. 불포화지방산 중 하나인 다가불포화지방산(오메가3)은 꽁치 기름에 많이 들어 있으며 그중 뇌 기능 향상 등 건강에 좋다는 DHA(도코사헥사엔산)에 주목해 ‘오메가3 영양제’로 쓰이고 있다.

정어리처럼 군집 생활을 하는 꽁치는 한 번에 많이 잡혀 값이 저렴한 축에 든다. 수입 가격도 안정적이다. 국민 생선으로 불리는 고등어보다 싸다. 값싸고 맛까지 좋은 데다 영양도 좋다 하니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가을부터 겨울까지 구이나 조림 등으로 밥반찬으로 많이 쓰이고 김치찌개의 부재료로 들어가기도 한다. 백반집이나 횟집에 가면 꽁치 소금구이를 선뜻 내주기도 한다.

횟감으로 고등어는 주변에서 보기가 어려운데 이유는 활어로 살려놓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물에서 끌어 올리자마자 죽는다. ‘성질이 못돼서(급해서)’ 그렇다고들 하는데, 실은 꽁치 같은 생선 종류는 부레가 없고 아가미 근육이 발달하지 못해 헤엄치지 않으면 바로 죽는다. 붉은 살이란 원래 미오글로빈이 많아 산패도 빠르다. 횟감 꽁치를 접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다만 제주도나 울릉도 등 바닷가 산지 부근에서는 갓 죽어(?) 신선한 꽁치회를 맛볼 수 있다.

서울 연신내‘포항물회’의 구룡포식 과메기.

꽁치를 먹는 방법 중 가장 획기적인 것이 바로 과메기다. 포항시의 명물로 꼽히는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재료로 썼다고 하는데 요즘은 대부분 꽁치다. 가을부터 꽁치에 살이 오르면 지방도 많아진다. 11월부터 내장을 따서 빼내고 그대로 찬 바람에 며칠 말렸다가 꾸덕꾸덕해지면 과메기로 출하할 수 있다.

꽁치는 값이 싸지만, 과메기는 사람의 시간과 수고가 드니 비싸다. 게다가 원래 타지방에선 즐겨 먹지 않던 것인데 십여 년 전부터 저변이 확대되면서 값도 부쩍 올랐다. 덕분에 포항과 영덕 등 동해안 어민들의 겨울철 주 수입원을 꽁치가 확보하고 있다.

꽁치를 잘 먹는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선 유난히 가을과 겨울에 꽁치를 챙겨 먹는다. 10월부터 겨울까지 이어지는 꽁치 시즌에는 도쿄 메구리, 미야기 게센누마, 홋카이도 네무로 등 전국 곳곳에서 꽁치 축제인 ‘산마 마쓰리(さんま祭り)’를 연다. 2㎞에 이르는 숯불판을 마련하고 꽁치를 구워댄다. 식당마다 포스터를 걸고 ‘가을 꽁치 출하’를 내세우고 편의점과 슈퍼마켓도 꽁치회를 포장 판매한다.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것은 바로 꽁치구이. 싱싱한 햇꽁치를 숯불에 구워 갈아낸 무와 함께 먹는다.

충남 부여 ‘시골아낙’의 묵은지 꽁치조림.

꽁치 얘기를 하면서 통조림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후반 참치 통조림이 등장하기 전까지 꽁치 통조림은 생선을 넣은 캔 제품의 대장주였다. 꽁치를 열처리 통조림 가공하면 뼈째 씹어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는다. 기본 간이 되어 있어 감칠맛이 난다. 그래서 김치찌개를 하면 보통 생물 꽁치가 아닌 통조림을 쓰는 경우가 많다. 요즘에는 김치까지 들어 있는 통조림 제품도 출시되어 있다.

실제로 꽁치가 많이 잡히는 해역(쿠릴열도 인근)을 품은 러시아에서도 꽁치 통조림은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 식료품이다. 조리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통조림을 따서 빵에 끼워 먹기도 한다.

동북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선 꽁치를 즐겨 먹진 않는다. 일단 북태평양에서 주로 서식하는 종이라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유럽 쪽엔 정어리나 고등어 같은 대체품이 많은 까닭이다. 동북아시아에 꽁치 통조림이 있다면 유럽엔 정어리나 청어, 고등어 통조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에는 140여 년 전부터 청어와 정어리로 통조림을 만들어 팔아온 킹 오스카(King Oscar) 브랜드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한남동 ‘흐붓’의 청어회.

청어는 ‘뚱뚱한 꽁치’와 모양새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종(청어목 청어과)이다. 청어는 오히려 전어와 더 가깝다. 우리가 꽁치를 먹듯 유럽인들은 청어(herring)를 먹었다. 흔하고 저렴하다는 마찬가지 이유였다. 특히 금욕을 해야 하는 중세 성직자들은 주야장천 훈제청어를 먹었다. 연기를 쐰 청어는 보존성이 높아지니 연중 식사를 책임졌다.

당시 청어는 세계적으로 흔했던 모양. 먹기도 했지만 비료로도 썼을 정도다. 알은 알젓을 만들고 남는 것은 어포로 말렸다. 산업을 움직이는 원자재 역할도 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깃발을 걸고 세계를 상대로 도발하던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원유 수입이 막히자 청어로 기름을 짠 어유(魚油)로 배를 움직였다. 청어로 비누 등 생활용품도 만들어 팔았다. 그만큼 많이 잡혔다는 얘기. 전국적으로 유통됐던 청어는 내륙인 일본 교토에도 들어갔다. 교토의 미가키 니싱(身欠ニシン)이라는 반건조 청어포는 지금도 특산물로 유명하다. 새해에 먹는 오세치(御節) 요리에도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청어 어란이 꼭 들어간다.

살집이 좋은 청어는 예전에 우리 바다에서도 ‘물 반 청어 반’ 할 정도로 많이 잡혔다. “비웃(청어의 고어)이 무리를 지어 나타나면 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산어보에서 언급했을 정도. 청어는 대대로 민초들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왔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조선 수군이 청어잡이로 재정과 군량을 충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제주 서귀포 ‘우정회센터’의 꽁치김밥.

하지만 남획과 바다 사정으로 청어 어획량이 급감해 1970∼1980년대엔 씨가 말랐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눈에서 사라졌다. 사라진 청어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 잔가시 많은 청어의 특성을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에 비유했는지 1990년대 초반엔 ‘어른들은 청어를 굽는다’(박구홍 저)라는 소설(1996년에 영화화됐다)도 나온 바 있다. 그러다 21세기 들어 다시 많이 잡히기 시작해 새로 청어 과메기가 복원되는 등 바야흐로 ‘푸른(靑) 등’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생선이 보약이다. 경기가 불안한 요즘 밥상에 제철 꽁치 한 마리 올라오면 그리도 든든할 수가 없다. 생물이 여의치 않다면 통조림 꽁치에 김치를 넣고 들들 볶아 밥을 비벼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져서 환절기 일교차에도 끄떡없을 듯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연신내 포항물회 = 상호에서부터 벌써 꽁치 냄새가 풍긴다. 포항 구룡포식 과메기를 잘하는 집. 겨울이면 멀리서도 몰려든다. 과메기 자체도 좋지만 미역과 초고추장도 맛있다. 가을·겨울엔 과메기를, 다른 계절엔 방어와 새우 등 제철 회를 파는데 여름에는 물회가 인기라 연중 문전성시를 이룬다. 모둠 해산물과 전복 등 해물로 구성된 안줏거리도 많다. 서울 은평구 통일로83길 15-1.

◇우정회센터 = 꽁치 한 마리를 구워 통으로 넣고 김밥으로 말았다. 김밥 양 끝에는 대가리와 꼬리가 삐져나왔다. 충격적인 모양새다. 맛을 보자면 더욱 강력한 느낌을 선사한다. 등뼈와 가시를 대부분 제거한 꽁치구이의 짭조름한 맛이 김밥을 온통 지배한다. 꽁치 기름이 밥에 배어 고소하고도 감칠맛이 난다. 김밥 한 줄 먹었을 뿐인데 생선구이 정식을 먹은 듯 든든하다. 길쭉하고 늘씬한 꽁치니까 다행이지 고등어 김밥이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제주 서귀포시 중앙로54번길 38.

◇시골아낙 = 묵은지 꽁치조림.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내륙지방이 오히려 잘하는 생선 메뉴가 있다. 통조림 생선으로 만든 요리도 그렇다. 부여 궁남지 앞 맛집인 이 집은 칼칼한 묵은지에 꽁치통조림을 넣고 지져낸 조림이 맛있다. 짜릿할 정도로 매콤하고 구수하고 감칠맛을 낸다. 상추쌈에 마늘과 꽁치 살토막을 싸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가시 걱정도 없다. 통조림 꽁치라 가능한 요리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39.

◇쿠마 = 생선회로 워낙 유명한 집인데 요즘 가면 계절 청어회도 맛볼 수 있다. 구하기도 힘든 커다란 대물 생선들을 노량진에서 독점적으로 구입해 식탁에 차려내는 통에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식당이다. 손 크기로 유명한 오너 셰프는 유튜브에서도 잘 알려진 김민성 사장. 식탁에 갖은 회를 한가득 올리지만 이 중 수십 번의 칼질로 만들어 낸 청어회는 부드럽고 녹진한 식감으로 사랑받는 계절의 별미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69길 7 충무빌딩 2층.

◇우동카덴 = 정통 일본식 우동을 내는 집. 다양한 종류의 우동으로 국내 우동 마니아의 성지로 꼽히는 이 집에서 시그니처 메뉴는 바로 청어 우동이다. 살짝 달큼하게 조려낸 청어 한 마리가 통으로 올라간다. 청어는 가시 한 점 거슬리지 않는다. 씹는 맛 좋은 면발과 함께 청어를 한입 베어 물고 속 후련한 시원한 육수를 들이켜면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고명에 따라 면발도 달라진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7안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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