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 가족’ 아이를 가질 결심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한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몰랐다. 나 살기도 바쁜데 애까지 어떻게 키우느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 만남이 모든 걸 바꿔버렸다.
한국 농인 어머니와 미국 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수경 이삭슨의 집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수경은 미국 농인 부모에게서 자란 남편과 결혼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며 자랐다는 공통점으로 만났다. 이런 이들을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s·농인의 자녀)라고 부른다. 코다는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는 음성언어를 배운다. 농사회와 청사회를 오가며 두 사회를 연결하고 중재하는 매개자가 된다. 이중언어 사용자이자 이중문화 경험자로 자란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 부모와 함께 살아가며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그건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코다다. 수경과 나는 한국 코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 소리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2019)를 함께 썼다. 아시아 최초로 열린 ‘2023 코다국제컨퍼런스’의 위원장을 공동으로 맡기도 했다. 수경과 종종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화면 너머로 수어와 음성언어가 보이고 들렸다. 수경의 남편과 둘의 아이, 아름이 손을 흔들었다.

미국 출장을 갔을 때 아름을 처음 만났다. 아이는 낯을 가리며 나를 탐색했다. 내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궁금해했다. 아름과 같은 아이들을 고다(GODA, Grandchild of Deaf Adults·농인의 손자)라고 부른다. 코다처럼 고다 역시 직·간접적으로 수어를 사용하고 농문화를 경험하기에 생겨난 용어다. 농인 어머니로부터 한국수어와 농문화라는 언어적·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수경은 이를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한국 농인을 베이비시터로 고용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와 미국 문화를 접하며 자랄 아름에게 자신을 이룬 언어이자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다. 비장애인 관점에서 본다면 ‘멀쩡하게 들리는 사람들이 어째서 청각장애인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는 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수경은 그것이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그렇게 아름은 영어와 한국수어, 간단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아이는 한참을 탐색하더니 나의 어깨를 손으로 치며 소리를 냈다.
“어, 아아.”
‘데프 보이스’(농인의 목소리)였다. 아름은 나의 눈을 바라보고 수어로 말을 걸었다. 나는 수경과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고 모두가 들을 수 있었기에 음성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름은 농인의 방식으로 나를 불렀다. 아마도 내가 한국인 농인 유모와 비슷하게 생겼고 한국수어도 할 줄 아니 자연스럽게 수어 사용을 택한 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름은 수어로 말을 걸었다. 종종 간단한 영어도 섞었다. 상황에 따라 어떤 언어 사용이 용이할지를 가늠하며 언어를 바꿔가며 말했다. 나는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고 느꼈다. 코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동료이자 친구, 언니, 이제는 가족과도 같은 수경의 집에서 같은 코다인 수경의 남편과 코다로서의 애환을 털어놓았다. 동시에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고다 아름과 손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가깝고 아늑하고 친근하고 친밀했다. 코다 정체성을 그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수어통역사이자 수어통역학 교수인 수경은 자신의 가족을 ‘코다’라는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나도 갖고 싶었다, 나의 정체성과 언어를 공유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 농인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고 자라서는 음성언어를 습득하고 이제는 영어로 일본인 파트너와 소통하는 나의 다문화적 정체성과 언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 더 있다면, 혹은 비슷하게나마 이런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라고 말하는 수경과 그의 남편, 아름의 존재가 나를 마음 먹게 만들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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