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 김동현ㆍ‘모험형’ 박재홍 “MBTI로 치면 상극인 절친…우리는 러닝 메이트” [인터뷰]

고승희 2024. 12.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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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절친 김동현 박재홍
오는 6일, 첫 공식 듀오 공연
“다름의 미학을 받아들인 관계”
영재원 동기로 만나 10여년간 우정을 쌓아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과 피아니스트 박재홍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99년생, 세기말에 태어난 스물다섯 동갑내기. 한 사람은 피아노를, 다른 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첫 만남은 11년 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였다.

“사실 서로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어요.” (박재홍, 김동현)

동갑 친구를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영재원에서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은 처음 만났다. 소위 말하는 ‘중2병’ 시절이었고, 모든 감각이 열려있던 시기였다. 김동현은 “이 친구(박재홍)는 워낙 목소리도 크고, 교실 안에서도 존재감이 컸다”며 “중2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모가 많았다”고 회상한다. 친구의 말에 박재홍은 “워낙 넉살도 좋고 능구렁이 같은 애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첫인상 스토리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다.

“MBTI 이론에 따르면 저흰 서로가 서로를 좋아할 수 없는 성격이에요. ENTP는 ESTJ를 깍쟁이라고 생각하고, ESTJ는 ENTP를 나댄다고 생각해요. (웃음)” (김동현)

두 사람은 MBTI가 설명하는 성격 그대로라고 말한다. ‘영리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색가’인 ENTP 박재홍, ‘사물과 사람 관리 능력이 뛰어난 경영자’인 ESTJ 김동현. N극과 S극이 만나 서로를 끌어당겼고,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겹쳐 서로를 채웠다. “다름의 미학을 받아들인 인간관계”라는 것이 김동현의 설명이다.

성격은 달랐지만, 취향이 닮아 둘은 서로에게 ‘입덕’했다. 클래식 음악에만 빠졌을 것 같은 영재들은 그 시절 제이슨 므라즈, 마룬 파이브와 같은 팝 음악을 공유했다. 김동현은 “어른들의 관리하에 성장해야 했던 학생 시기엔 레슨과 연습 이외에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숨막히게 다가왔다”고 돌아본다. 소년들이 함께 듣던 대중음악은 단지 ‘취향의 공유’가 아니었다. 일종의 해방이자 안식이었고, 자유로움을 향한 갈증과 결핍을 채우준 공감의 음악이었다.

두 사람은 각각 “무섭기로 유명하다”는 김대진 한예종 총장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의 ‘막내 라인’ 제자였다. 그 시절을 함께 하며 이 둘은 음악적 성장과 고충을 나눴다. 토픽 하나당 두 시간은 기본.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금도 아침해를 함께 맞는다. 박재홍은 “우리 이제 자야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매번 한다”며 웃는다. 그 시절 나눈 대화는 클래식 음악계에 전무후무한 스물 다섯 살의 두 달변가를 키웠다.

‘10년 지기’ 김동현 박재홍이 한 무대에 선다. 열 여섯 살에 실내악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고, 학부 졸업연주회(2019)에서도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5년 만의 듀오라지만, 공식 공연으로 치면 이번이 처음이다. 김동현의 바이올린 리사이틀(12월 6일, 마포아트센터)을 통해서다. 공연을 앞두고 만난 두 사람은 “포트폴리오를 올렸더니 결재를 해줘 함께 하게 됐다”며 웃었다.

영재원 동기로 만나 10여년간 우정을 쌓아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과 피아니스트 박재홍 [마포문화재단 제공]
‘안정형’ 김동현·‘모험형’ 박재홍…새로운 우주 향해 떠나다

‘김동현 픽(Pick)’에 박재홍의 ‘큰 그림’이 더해졌다. 김동현은 마포문화재단 상주 음악가인 M아티스트 활동의 대미를 장식할 공연에서 ‘오랜 지기’ 박재홍을 파트너로 골랐다.

그는 “듀오를 할 땐 편안하게 맞춰주는 쪽보다는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받으며 동등한 입장에서 밸런스를 맞추고 꾸려나가는 것을 더 재밌어 한다”며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 이 친구가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얼굴만 마주치면 둘만의 기회를 엿봤기에 박재홍은 ‘친구의 러브콜’에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프로그램을 구성하기까진 약간의 ‘밀당’(밀고 당기기)이 있었다. 공연에선 니콜라이 메트너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비롯해 드뷔시와 풀랑크를 골랐다. 박재홍의 선택이었다. 정반대의 성격이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망설인 쪽은 김동현이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저라는 사람은 안정감을 추구하는 쪽이에요. 변수가 많은 삶을 좋아하기 보다는 확실하고, 틀리지 않고, 갖춰져 있는 삶을 추구하죠. 그런 제게 메트너는 너무 새롭고, 새롭기에 무서움으로 다가왔어요.” (김동현)

박재홍은 스스로 “사람을 잘 홀린다”고 했다. 친구의 고민을 알기에 일명 ‘홍스라이팅(?)’(박재홍+가스라이팅)을 발휘했다. 박재홍이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무 중 하나는 “알려지지 않은 곡을 발굴해 연주하는 것”이다. 그에게도 도전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명하지 않고 잘 연주되지 않은 곡이기에 우리의 해석을 담은 연주로 인한 리스크가 따라올 수 있겠지만 분명 잘 해낼 것이고, 이 연주를 잘 마치면 이 연주가 너의 DNA 같은 시그니처 피스(작품)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말로 꼬셨다”며 웃었다.

‘안정 추구형’ 김동현은 ‘모험형’ 친구와 함께 흔쾌히 ‘경계’를 넘었다. “걱정은 많지만, 고집은 세지 않은 성격” 덕에 친구의 손을 기꺼이 잡을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모양의 퍼즐이었지만, 한쪽 면을 붙이자 완벽히 들어맞았다. 두 사람이 ‘절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동현은 “‘밀당’이라 하지만 늘 내가 넘어간다”고 했다. 김동현의 이야기에 박재홍은 “결재를 해줘 고맙다”며 웃었다.

공연은 두 연주자가 펼쳐놓는 ‘새로운 우주’로의 탐사다. 김동현은 “우리가 전달할 수 있는 음악적 색채가 다양할 것 같다”며 “새로운 매력으로 설득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그것이 굉장히 의미있고 뿌듯한 일이라는 데에 목표를 두고 만들어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두 사람은 악보 리딩부터 시작했다. 이미 지난 9월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봤다. 서로를 오가며 일찌감치 리허설을 시작한 것이다. “천천히 오래도록 우려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부턴 박재홍이 머무는 베를린에서 연습을 이어왔다.

친구로는 물론 듀오로도 두 사람은 이상적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상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연습을 해보니 함께 하는 연주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탁구공을 주고받듯 아이디어를 던지면 기막히게 알아차려 지루할 틈 없는 음악이 만들어진다. “한쪽 귀는 서로를 향해 열어두고, 다른 한쪽 귀로는 하나의 색깔로 섞어가는 느낌”(박재홍)이라고 한다. 김동현은 “재홍이가 도전적이고 탐구하는 성향이라 음악을 촥 펼쳐놓으면, 내가 마감 처리를 맡아 하는 역할”이라며 “단단한 소리와 넓은 색채를 가진 재홍이의 피아노가 든든한 받침대가 돼 그 위에서 더 편하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재홍은 메트너를 ‘상실의 음악’이라고 했다. “곡을 듣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를 만큼 최면을 당하는 듯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김동현에게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바이올린 소나타 구조와 달라 새로운 맛을 지녔고, 몰입하듯 빠져드는 이야기 구조가 매력적인 곡”이다. 관객도 두 사람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

“시공간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 곡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쩌면 많은 분들이 처음 접할 수 있는 이 곡이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좋은 충격으로 다가서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김동현, 박재홍)

영재원 동기로 만나 10여년간 우정을 쌓아온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과 피아니스트 박재홍 [마포문화재단 제공]
우리는 ‘러닝 메이트’…“연주자는 통역사” vs “연주자는 무당”

소년들은 어느덧 20대 중반이 됐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한 길을 걸어온 지난 10여년은 길고도 짧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러닝 메이트’라고 했다. “다른 악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의 길이나 포지션은 크게 다르진 않았다”고 돌아본다.

엄격한 스승과의 만남은 두렵지만, 성장의 날들이었다. 박재홍은 “중학생 땐 레슨에 들어가면 너무 떨려 페달을 밟지 못할 정도였다”며 “레슨 날은 언제나 내가 살아온 일주일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재판을 받는 시간”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지난한 시간 위에서 뜨겁게 음악을 공부했고, 틈틈이 숨통을 찾아 함께 웃었다.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콩쿠르에도 도전했다. 결과는 값졌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김동현), 부소니 콩쿠르 1위(박재홍)라는 성취를 이름 옆에 나란히 새겼다. 두 사람은 “어느덧 진짜 연주가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젠 기존의 것에 머물지 않고 자유를 갈망하며, 음악을 존중하되 그것에 도전한다.

음악에 대한 관점은 다르지만 닮았다. 두 사람에게 연주자라는 직업은 ‘위대한 작곡가’가 남긴 명곡을 전달하는 매개체이자 해석가다. 김동현은 때문에 “통역사”라고 했고, 박재홍은 “신의 대리자인 무당같은 역할”이라고 했다. “작곡가를 온전히 이해해 전달하되 나만의 문체를 담고, 그러면서도 왜곡하지 않고 작곡가의 것과 나의 것을 블렌딩해 지금 시대에 들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역할”이라는 것이 김동현의 생각이다. 박재홍은 “연주자는 비워내는 직업”이라고 했다. 그는 “연주자라는 직업이 늘 재밌고 질릴 수가 없는 것은 모든 걸 채운 뒤 무대에선 모든 것을 비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이 굿을 하는 순간에 도달한 무당과 닮았다고 본다.

“깊이 고민하고 논리적으로 구조를 짜서 더 맛있는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연습을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연주자는 사라져야 해요. 작곡가의 영혼이 제 몸으로 들어와 그 음악을 모두 쳐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에요. 그 때는 나 자신은 사라지고, 온전히 음악을 잇는 하나의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게 느껴질 때 너무나 짜릿하고 행복해요.” (박재홍)

지난 10여년,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먼 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두 사람은 같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지지가 되는 관계다. 이젠 “어지간하면 평생 보게 될 것 같다”(김동현)고도 확신한다. 박재홍은 “동현이 같은 친구와 이 길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꿈은 오래도록 음악을 지키며, 함께 음악을 해나가는 것이다.

“전 음악이 늘 제게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제 옆에, 뒤에 있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커나가는 동지였으면 좋겠어요. 함께, 그리고 같이 걸어가는 음악 앞에서 저라는 사람과 저의 솔직함을 읽지 않고 오래도록 연주하고 싶어요. 그런 저를 관객들 한 명 한 명이 진하게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식상하지만, 욕심이 좀 크죠? (웃음)” (김동현)

“음악이 아니면 안 될 만큼 음악을 사랑하기에, 늘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요. 그게 제겐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이니까요. 음악을 해나가는 여정은 마라톤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만의 페이스로 꾸준히 달리면 언젠가는 결승점에 도달한다는 생각을 잃지 않는 것이 사실은 좀 어렵더라고요. 다들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나의 페이스를 잃고 다시 빨리 뛰려다 사고가 나기도 하고요. 전 오래도록 음악을 하고 싶어요. 선의 굵기가 굵든 얇든 길게 끊이지 않는 선을 그리면서 계속 음악을 해나가고 싶어요.” (박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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