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익 50조 벌었는데…어떻게 위기 맞았나?[삼성 반도체 50주년②]
"HBM 경쟁력 부족…'기술의 삼성' 이미지 훼손"
"부서 간 소통 미흡…문제 숨기는 문화 퍼져"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삼성전자는 2017년 사상 처음 영업이익 50조원 시대를 열었다. 특히 반도체 부문이 연간 영업이익 35조원을 돌파하며 주력 사업군으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는 6일 5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처참한 성적표다.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와 대만 TSMC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삼성만 '나홀로 겨울'이라는 냉혹한 평가가 들린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작금의 위기는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을 잃은 반도체 사업에서 비롯됐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삼성은 '초격차 기술'을 유지해왔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서 이를 놓쳤고, 조직 문화는 경직됐으며, 우수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2017년 54조원, 2018년 59조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렸던 삼성전자는 2019년과 2020년 각각 28조원, 36조원으로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2021년 52조원, 2022년 43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1등 기업'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업황 악화로 반도체 부문에서 15조원 적자를 낸 삼성전자는 2023년 영업이익이 6조5670억원에 그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드러난 삼성의 경쟁력 약화로 인해 기술의 삼성이라는 이미지가 훼손됐다"며 "기술 기업으로서 장기 성장성에도 의문이 생기면서 주가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부진한 기업이 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선두를 지키던 삼성전자가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실기하면서 변화된 AI 시대 반도체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주요 외신들도 삼성전자가 경쟁사와 달리 HBM 관련 조직을 축소하는 우를 범했고, 기술 트렌드에 대한 경영진의 안이한 판단이 현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만년 2등' SK하이닉스는 차별화된 기술 개발에 많은 노력을 단행했고, HBM 같은 새로운 기술 투자에 집중하며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HBM을 주력으로 공급하며 압도적인 HBM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 3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89억4500만 달러 매출을 기록, 전분기 대비 13.1% 성장했다. 삼성전자는 점유율 41.1%로 1위 자리를 지켰지만 2위 SK하이닉스와 격차는 계속 좁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직 안일주의와 부서 간 소통을 가로막는 칸막이가 삼성전자 기술 경쟁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5월 '반도체 구원투수'로 깜짝 교체된 전영현 부회장은 "직급, 직책과 관계없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하며 투명하게 드러내서 소통하는 반도체 고유의 토론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부서 간 소통의 벽이 생겨 리더 간, 리더와 구성원 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고 현재를 모면하기 위해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는 문화가 퍼져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전 부회장은 지난 3분기 잠정실적 발표 이후 이례적으로 발표한 공개사과문을 통해 거듭 '도전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수율(양품 비율)과 대형 고객사 확보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를 출범하고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지만, 여전히 시장 점유율은 10% 수준이다.
올 3분기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보면 TSMC는 64%로 2위 삼성전자 12%와 50% 이상 차이를 보였고, 이 격차는 계속 더 벌어지고 있다. 첨단 공정은 TSMC에, 성숙 공정은 중국 업체에 치이며 점유율은 계속 하락세다.
삼성 파운드리는 지난해 수조원의 영업손실을 보인데 이어 올해에도 1조원 이상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업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분사설도 끊이지 않았지만, 이재용 회장은 이같은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2025년 인사를 통해 이례적으로 파운드리 사업부에 두 명의 사장을 배치하는 등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최전선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며 '영업통'이란 평가를 받는 한진만 신임 사장에게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기고, 반도체 공정개발 및 제조 전문가로 꼽히는 남석우 사장을 파운드리사업부 최고기술책임자(CTO)에 임명하는 초강수를 두며 '파운드리 구하기'에 나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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