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협상 타결 무산…소수 산유국·러시아 등 이견
[한경ESG] ESG Now
플라스틱 오염 종식 국제협약 성안을 위한 협상이 시한인 12월 1일까지 부산에서 타결되지 못하고 추후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등 소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막아 협상 타결이 무산됐다.
12월 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협상위를 이끄는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은 “일부 문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고무적이지만, 소수 쟁점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쟁점, 완전한 합의 막아”
발비디에소 의장은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추후 5차 협상위를 재개해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전반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또 “부산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며 “우리의 일이 완료되기까지 한참 남았기에 공동 목표를 향해 계속 협력하면서 실용적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 정부 수석대표인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체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든다는 목표를 포기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5차 협상위에서) 합의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구축했으며, 이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미래세대를 위한 건강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 오염이 종식된 세상을 만들자는 결의를 굳건히 유지하자”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2022년 3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마련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5차례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11월 25일 부산에서 개막한 5차 협상위 첫날 발비디에소 의장이 협상위에 앞서 제시한 3차 제안문을 협상 기초로 삼기로 예상보다 빠르게 합의되면서 최소 ‘선언적 협약’이라도 마련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왔으나 결국 무산됐다. ‘플라스틱 또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 생산 규제’와 ‘유해 플라스틱·화학물질 퇴출’,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 등이 쟁점이었고 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예상보다 전향적 입장을 보인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이 플라스틱 생산 규제를 극구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협약에 생산 규제 조항을 포함하는 것을 한계선으로 규정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환경법 센터에 따르면, 부산에서 대부분 국가는 강경한 플라스틱 협약 마련을 요구했으나 일부 화석연료 및 화학산업 기업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회담에 200명 이상 로비스트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주요국이 한국에 파견한 대표 140명보다 많은 숫자다.
러시아는 모든 국가가 수용할 수 있는 조항에 집중하자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소수 산유국 탓에 협상에 진전이 없자 일각에서는 투표로 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협약 체결 후 첫 당사국총회 때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일 전 세계적 목표를 담은 부속서를 채택하자’는 문구를 넣자는 제안을 지지한 국가가 100여 곳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플라스틱 단계적 퇴출 발목
구체적으로 플라스틱 협상 타결이 무산된 것은 특정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전 세계적 구속력 있는 금지 및 단계적 퇴출과 관련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차 협상위 제안문 제3조(플라스틱 제품)에는 제품 금지 및 보고를 시행하고, 유해 제품 및 화학물질의 향후 목록화하는 여러 의무적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
또 제3조에는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되는 특정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전 세계적 구속력 있는 금지 및 단계적 퇴출과 관련한 내용도 담겼다. 플라스틱 제품의 제조·수입 또는 수출을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문구도 포함한다. 또 부록에는 장난감, 어린이 제품, 식품 접촉 물질에서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할 화학물질의 초기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생산 감축을 다룬 셈이다.
5차 협상 제안문대로 협약이 성사되면 참여국은 추후 환경과 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 플라스틱 제품은 제조·수출 또는 수입을 금지하거나 규제할 수 있다. 해당 조항에 따라 빨대·컵 등 단일 제품에 대한 규제도 시행할 수 있으며 재사용·재활용·퇴비화 불가능하거나 순환경제를 방해하는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규제도 가능해진다.
제11조(재정 메커니즘)도 이번 협상을 무산시킨 주요 조항이다. 협약 이행을 위한 재원과 자원 확보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각 당사국이 자국의 역량 내에서 본 협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활동에 필요한 자원을 자신의 역량 범위 내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문구를 담고 있다.
11조에는 재원 마련을 위해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에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하는 것도 논의 사항으로 포함됐다. 한국이 제안한 EPR은 제조업자 등이 제품·포장재를 제조·수입·판매하면서 발생한 폐기물을 회수하거나 재활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향후 열릴 5.2차 협상에서 해당 조치의 도입과 관련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협상 타결 5.2차 회의로 넘겨
이 밖에도 제5조(플라스틱 제품 디자인)는 최소 기준, 글로벌 요건 등 요구사항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플라스틱의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에 기여하고, 플라스틱의 재사용 및 재활용을 증진하며 플라스틱 제품의 내구성, 재사용성, 재충전 가능성, 개조 가능성, 수리 가능성 및 재활용 가능성을 개선해야 한다.
잉에르 아네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려는 세계의 의지는 분명하고 부인할 수 없다. 부산에서 열린 회담은 플라스틱 오염의 맹공으로부터 우리의 건강, 환경, 미래를 보호할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글로벌 조약에 대한 합의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이번 협약을 평가했다. UNEP는 정부간협상위원회(INC) 사무국 역할을 맡고 있다. UNEP는 5차 협상에서 마련된 최종 제안문을 INC 5.2로 명명된 차기 회담에 전달할 계획이다.
플라스틱은 매년 4억6000만 톤 이상 생산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일회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2040년까지 약 60% 증가한 7억36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지금까지 생산한 플라스틱의 99%는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만들어졌다.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은 9% 내외에 불과하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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