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1년’ 계엄 6시간 만에 물거품···외국인 6300억 셀 코리아
코스피 1.44%·코스닥 1.98%↓
변동폭 줄었지만 불확실성 커져
환율·채권시장도 하루종일 요동
지지부진 시장에 악재만 더해
"韓증시 기피현상 이어질 수도"
45년 만에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안 그래도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가 대형 악재에 부딪혔다.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8월 이후 최대 규모로 순매수하면서 바닥을 다졌던 외국인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셀 코리아’로 돌아섰다. 그나마 정부가 50조 원 규모의 증시·채권안정펀드로 수습에 나섰기에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1년 동안 추진했던 밸류업 프로그램이 불과 6시간의 계엄 사태로 밸류다운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일 코스피지수는 전장 대비 36.10포인트(1.44%) 하락한 2464.00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 역시 13.65포인트(1.98%) 하락한 677.15를 기록했다. 이날 새벽까지도 개장 여부를 저울질하다 정상 개장한 증시는 1.97% 급락 출발한 후 장중에는 2% 이상 낙폭을 키웠지만 정부의 금융시장 긴급 대책에 1%대 하락률로 장을 마감했다. 업종별로는 전기가스(-9.94%), 보험(-4.54%), 건설(-4.53%) 등 대다수 업종이 내렸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장 초반부터 물량 처분에 나섰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071억 원, 코스피200 선물 2201억 원어치를 매도해 선·현물 합산 6272억 원을 팔아치웠다. 기관과 개인이 각각 162억 원, 3398억 원 순매수했지만 지수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외국인은 전날 7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돌아서면서 그동안 하락 일변도였던 국내 증시에 모처럼 훈풍을 불러왔지만 불안정한 정국에 하루 만에 다시 ‘팔자’로 돌아섰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전날 외국인이 8월 이후 최대 순매수액을 기록하는 등 그동안의 공격적인 순매도세를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한국 고유의 정치 불확실성 확대가 이를 후퇴시켰다”고 짚었다.
환율과 채권시장 또한 요동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대비 7.2원 오른 1410.1원에 거래를 마쳤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1442원까지 치솟으며 2022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계엄 정국이 6시간 만에 해프닝으로 끝난 데다 정부가 긴급 대책을 빠르게 내놓자 변동 폭은 점점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역시 계엄령 발표 직후 한때 급등한 후 상승 폭을 줄였다. 국고채금리도 대체로 오름세를 보였지만 개장 이후 상승 폭을 줄였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일 대비 4.1bp(bp=0.01%포인트) 오른 연 2.626%, 10년물은 5.2bp 오른 연 2.765%로 장을 마감했다.
간밤에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응책을 내놓으며 수습에 나섰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심야에 진행된 ‘F4(Finance4,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은행 수장)’ 회의에서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가능한 모든 금융·외환시장 안정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이날 오전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유관기관장 및 금융협회장들과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10조 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가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채권·자금시장에도 4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동해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금융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무제한 유동성 지원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이다.
당분간 증시를 둘러싼 변동성은 피할 수 없다는 게 금융투자 업계의 중론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고 내란죄로 고발한다고 밝힌 데다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향후 정국 불안이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투자가는 14주 연속 코스피를 순매도하고 있고 신용등급이 변동될 수 있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까지 가파르게 진행돼 외국인의 한국 증시 회피 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연초부터 한국 증시 상승을 위한 밸류업을 외친 윤 대통령이 스스로 국제 신인도를 추락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킴엥 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아태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투자자로서는 (비상계엄은) 마이너스 쇼크”라며 “일시적인 것인지 구조적인 것인지 두고 봐야 하지만 당분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태로 당장 국가신용등급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송이라 기자 elalala@sedaily.com김혜란 기자 khr@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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