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치료제, 암세포와의 첩보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환석의 알쓸유이]
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T와 B세포를 통한 자가면역 치료
면역관문, 획기적 치료제의 원리
인간 세상의 첩보전과 같은 방식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 사진 속 모습이 마치 왕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예전에는 일반적인 감기 정도의 증상만 유발했으나, 어느 날 어디선가 특별한 종류가 나타나서 COVID-19라는 대유행 호흡기 질환을 초래했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전에 침입했던 병원체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방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따라서 새로운 병원체가 기존 정보와 다르면 다를수록 애써 구축해 놓은 방어 시스템이 무용지물에 가까워지게 된다. 외부에서 침입한 병원체가 아니라 우리 몸 안에서 자체 발생한 원인으로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는 암과 자가면역질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암세포란 예전에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던 극히 정상적인 내 몸의 일부 세포가 어느 날 어디선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기존 내 몸의 질서에서 벗어나 무한 증식과 주변 세포 공격이라는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서 이른바 ‘암’적인 존재가 된 세포들을 말한다. 때로는 한술 더 떠서, 원래는 우리 몸 안에 침입한 적들 혹은 내부에서 발생한 이상 세포들을 제압해야 할 면역 세포 자체에 오류가 생겨서 발생하는 질병들도 있다.
가령 백혈병이라 불리는 혈액암은 B세포라는 면역 세포에서 흔히 발생하는데, 원래 B세포는 외부 병원체와 결합하는 방어 시스템인 항체를 만드는 세포지만 B세포 자체가 비정상적인 암세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은 주로 T세포의 과잉 작동으로 인해 신경계가 손상되어 발생하는데, 원래 T세포는 바이러스나 암세포처럼 병원체에 대항하는 면역 세포지만 면역 세포의 오작동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면역 세포들은 복잡한 상호 작용 과정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은 T세포와 B세포를 모두 표적으로 삼아 연구하며 치료제를 개발하기도 한다.
획기적인 혈액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CAR-T 치료 방법의 우리말 이름은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이다. 면역 세포인 T세포를 유전 공학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가 되어 버린 혹은 자가면역질환 증상에 가담하고 있는 B세포를 공격하는, 마치 특전사 군인처럼 강화된 T세포를 만들어서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제품들은 '킴리아'와 '예스카르타'라는 약인데 둘 다 B세포 표면에 있는 ‘CD19’라는 단백질 또는 ‘CD20’이라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기능이 탑재된 T세포들이며, 이처럼 아직 CAR-T 치료제는 혈액암이나 자가면역질환들에만 효과적인 상황이다.
질병에 걸린 세포들과 면역 세포 사이의 창과 방패의 세계에서는 면역 관문이라는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도 알려져 있다.
세포막 표면에는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백질들이 있는데, 특정 단백질 조합이 확인되면 마치 검문소에서 통행증이 확인된 것처럼 면역 세포들이 해당 세포를 무사통과시켜주고 그렇지 않을 때는 면역 세포가 공격을 개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암세포들은 자신이 정상 세포인 것처럼 인식되게 하려고 면역 관문 체계의 통행증을 이용해 검문을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 혁신적 항암 치료제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키트루다’나 ‘옵디보’ 같은 치료제들은 암세포가 'PD-1'이라는 단백질 또는 'PD-L1'이라는 단백질을 이용해 면역 관문을 무사통과하는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항암 치료를 도모하는 약들이다.
방어 시스템이 반대로 내부 공격에 가담한다거나 적군이 마치 아군처럼 위장 전술을 펼치는 상황은 인간 세상이나 세포들의 세계나 다를 바가 없으니,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는 정치사회면 뉴스에서도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이환석 한림대 의료·바이오융합연구원 R&D 기획실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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