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니까 간접흡연 아니다?… 안이한 인식이 더 위험
덜 해롭단 인식에 무방비 노출… 호흡기 질환 일으킬 가능성 높아
복지부, 공익광고로 위험성 알려… OTT 드라마 흡연 장면도 문제
청소년에게 잘못된 인식 심어… “규제 위한 사회적 논의 필요”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 씨(26)는 ‘전자담배의 간접흡연 위험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박 씨는 궐련 담배를 피우다가 약 2년 전부터 전자담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해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건강에도 덜 해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역시 간접흡연으로 호흡기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며 “전자담배가 무해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는 것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 전자담배도 간접흡연 위험에 노출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개발원)은 올해 두번째 금연 광고 ‘전혀 괜찮지 않은 전자담배’ 편을 제작해 연말까지 다양한 매체로 송출하고 있다. 이번 광고에는 가족과 직장, 친구 등 일상에서 전자담배로 간접흡연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가족과 공감 등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흡연자를 설득하는 방식이었던 과거 금연 광고와 유사한 맥락이다.
복지부와 개발원은 2001년 처음 금연 광고를 시작했다. 2002년 폐암 투병 중이던 고 이주일 씨가 등장해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화제가 되면서 당시 흡연율은 8%나 하락했다. 2005년에는 흡연이 뇌와 폐, 피부에 악영향을 준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가 등장했고 이후 간접흡연의 피해를 강조하는 광고가 뒤를 이었다. 2014년에는 질병 발생 위험을 전달하는 광고가 나왔고 2019년에는 ‘깨우세요! 우리 안의 금연 본능’이라는 긍정화법을 활용한 광고가 선보였다.
2022년 복지부와 울산대가 공동으로 진행한 ‘전자담배 사용 행태 및 인식 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자담배 사용자 10명 중 8명이 실내외 금연 구역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몰래 전자담배를 피우는 장소는 자택, 차량 실내, 실외 금연 구역 순이었다. 특히 여러 종류의 담배를 혼용하는 흡연자의 경우 “몰래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정혜은 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한국의 담배 규제 정책에는 ‘모든 담배는 해롭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며 “이번 광고를 통해 전자담배의 위해성을 널리 알리고 금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 OTT는 흡연 장면 규제 사각지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더글로리’에선 배우들의 흡연 장면이 등장하는 반면에 국내 지상파 방송 드라마에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 지상파의 경우 방송법 규정 등에 따라 2000년대 초부터 흡연 장면이 사라졌다. 반면 OTT의 경우 방송법이 아니라 정보통신망보호법 적용을 받는데 이 법은 유해 사이트나 불법정보 유통을 금지하지만 흡연이나 음주 장면에 대한 규제는 안 하고 있다.
하지만 OTT 가입자 상당수는 OTT를 인터넷과 연결된 TV로 시청하고 기존 지상파와 다르지 않게 인식한다. 최근 성인과 청소년의 흡연율이 증가세로 돌아선 요인 중에는 OTT의 영향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에는 청소년 흡연을 조장하는 OTT 규제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외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 속 흡연 장면에 100회 노출될 때마다 흡연자가 될 확률이 1.14배 증가했고, 전자담배 장면이 포함된 뮤직비디오에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자담배 사용 가능성이 더 컸다. 또 202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담배 마케팅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일부 국가들은 OTT 흡연 장면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관련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도는 지난해 9월 영화와 방송에서 적용되는 담배 제품 노출 금지 규제를 OTT로 확대했다.
복지부와 개발원은 지난해 미디어 업계가 콘텐츠를 제작할 때 담배 흡연 장면 노출과 묘사를 자제하는 기준을 제시한 ‘아동·청소년 흡연 예방을 위한 미디어 제작·송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흡연을 권유·유도하거나 긍정적으로 표현해선 안 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흡연이 무해하거나 덜 유해하다고 느낄 수 있는 표현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디어 업계가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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