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띠 동갑내기 잔나비 “우리 음악 재료는 노스탤지어”

윤수정 기자 2024. 12. 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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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0주년 맞은 ‘잔나비’ 인터뷰

‘향수를 부르는 음악’. 2019년 밴드 잔나비(보컬 최정훈, 기타 김도형)의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에 쏟아지는 찬사다. 아이돌도 힘들다는 음원 차트 월간 1위를 달성한 이 노래를 틀면 가장 먼저 1970년대 LP판 음악처럼 뭉근하게 들리는 현악과 기타 선율이 귀에 들어온다. 밴드의 정규 2집 ‘전설’의 수록곡. 국내 100대 명반 리스트에 오른 앨범이다.

데뷔 10주년을 맞은 밴드 잔나비 멤버 김도형(왼쪽)과 최정훈. 이들은 지난 8월 국내 최대 록음악 축제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의 가장 큰 무대에 간판 공연자로 섰다. "2014년 데뷔 땐 가장 작은 무대에 섰던 축제기에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잔나비의 음악이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최근 경기도 분당의 작업실에서 만난 이들은 “내년 봄 발매를 목표로 10주년 앨범을 제작 중”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올해 하지 못 한 지방 공연의 범위도 대폭 늘려 나서볼 거란 계획. “본래 올해 중 내려던 걸 곡 작업에 시간을 더 쓰고자 미뤘다. 과거 앨범이 ‘힘을 쏟는 데’ 주력했다면, 내년 정규 4집은 ‘힘을 빼는 데’ 집중한 소리일 것”이라고 했다.

1992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들이 만나 ‘잔나비’가 된 두 사람은 “나고 자란 분당에서 중학생 국어학원을 함께 다니던 사이”였고, “영국 ‘웸블리’ 무대에 같이 서자”는 꿈을 품으며 밴드를 결성했다. 데뷔 초 홍대 텅스텐홀에서 첫 공연을 설 땐 “지인이 대부분인 30명 관객뿐”이었지만, 지난 9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연 10주년 단독 공연은 4일간 4만여 관객을 모았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음악에 ‘향수’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로 “옛 음악을 길라잡이 삼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정훈은 “데뷔 초 음악들은 ‘뜨기 위함’에만 신경쓴 듯해 사실 창피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게 뭘까 곰곰히 생각했는데 그게 ‘옛 음악’들이었다”고 했다. “엘턴 존이나 산울림 같은 옛 선배 음악을 닥치는 대로 공부했는데,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다들 수학의 정석처럼 ‘비틀스’란 공통분모를 품고 있더군요.”(최정훈) “지방행사를 가려고 차를 타고 이동 중에도 비틀스의 노래를 계속 틀었어요. 아무 곡이나 골라 잡고 “무슨 앨범에 실렸지?” 서로 퀴즈를 내고, 못 맞추면 “왜 안 들어!” 서운해 할 정도로 비틀스의 음악을 들고 팠죠.”(김도형)

옛것을 지향하는 밴드의 성향은 2년 전 고향 분당의 5층 건물을 인수해 4층을 통째로 사용 중인 작업실에서 잘 드러난다. 통상 작업실은 밀폐된 공간을 쓴다. 하지만 이곳은 햇살이 쏟아지는 통창 구조의 탁 트인 응접실에 녹음 기계를 놓고, 악기들과 목소리를 울린다. 5층에는 작업 중 언제든 올라가 쉴 수 있는 숙식 공간을 마련해 뒀다. 마치 1960년대 가정집에서 마이크 한 대를 악기와 가수가 빙 둘러싸 녹음을 하던 한국의 초창기 녹음실들을 연상케 한다. 김도형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기 위함”이라며 “‘누가 봐도 작업실’보단 ‘일상적인 음악 듣는 공간’ 같은 작업실을 지향한다”고 했다.

작업실 한편에 놓인 옛날식 고정 다이얼 전화기도 이들에겐 그 시절 ‘따르릉’ 소리를 재연할 훌륭한 악기. 린드럼(LinnDrum·드럼 머신의 한 종류) 등 이제는 거의 단종된 옛 악기들이 이들의 작업실에 잔뜩 쌓여 있다. 최정훈은 “린드럼의 ‘툭칙 탁치’ 소리는 1980~90년대 초 음악에 널리 쓰여 들으면 바로 당대 곡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각기 다른 스토리의 향수를 가진 소리를 조합해 쓰기 위해 빈티지 신시사이저들을 모은다”고 했다. 김도형은 “실제 악기 소리는 전자음과는 질감부터 다르다. 그 시대의 음악에서만 들리는 오묘한 잡음을 컴퓨터 작곡으론 결코 재현할 수 없다”고 했다.

곡 쓰는 방식도 아날로그식이다. “잼(JAM·즉흥연주)을 하거나 보고, 느낀 것에 대한 대화가 곡에 자연스레 담긴다”고 했다. 작사를 도맡는 최정훈은 “애절한 사랑곡이 많아 경험담으로 오해받지만, 책 속 문구들이 훌륭한 원천”이라고 했다.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 뮤직비디오에 선우휘 등 국내 소설가 책들을 등장시킨 것도 그의 독서 취향을 반영한 것. 그는 “최근에는 시구들에 빠졌다. 노벨상 소식 한참 전인 2집(2019년) 작업 때부터 한강 작가님 시집을 찾아 읽었다”고 했다.

최신 앨범인 3집(2020)은 “낭만주의 시인 보들레르에 빠진 결과”다. “우리 음악도 현실적인 것보다는 사랑, 우정, 평화 등 보이지 않는 낭만을 좇으니 보들레르의 어투와 닮았다”는 것. 그의 표현처럼 이들이 “데뷔 초부터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란 제목을 고집해왔다”는 잔나비의 단독 공연에선 바쁜 일상에 잊혀지기 쉬운 각종 낭만의 대화들이 되살아난다. 가슴을 뛰게 하는 행진 드럼 소리에 맞춰 유유자적한 항해를 누리고(노래 외딴섬 로맨틱), 몽환적인 기타 선율 사이로 우리가 모두 사랑했던 소녀의 얼굴(노래 SHE)을 떠올린다. 이들이 가수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 가사 일부를 차용한 노래 ‘작전명 청-춘!’에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닮은 난장을 펼쳐 놓을 때면 일상을 잊고 마음껏 뛰놀 공백을 만드는 음악 본연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내년 잔나비가 다시금 들고 올 낭만은 어떤 외견일까. 최정훈은 “최첨단 AI 시대에도 옛 시대의 향수가 뒤섞인 음악을 펼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노스탤지어는 우리 음악의 주재료예요. 서기 1년부터, 음악이 탄생한 이래로 쭉 존재한 ‘향수’의 정서를 재해석해 쓰는 게 1순위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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