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이 지배한 글로벌 영화 시장… 1위부터 10위까지 장악
2024년 글로벌 영화 시장은 속편이 장악했다. 전 세계 흥행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속편이다.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선보이는 오리지널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영화 제작사는 예산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흥행을 노리고, 관객은 같은 값에 확실한 재미를 찾는 경향이 올 한 해를 주도한 결과다.
4일 세계 영화의 흥행 통계를 집계하는 사이트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관객을 가장 많이 모은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2′(매출 17억달러)다. 이어 ‘데드풀과 울버린’이 2위, ‘슈퍼배드 4′와 ‘듄: 파트 2′가 각각 3위와 4위에 올랐다. 그 뒤를 ‘고질라 × 콩: 뉴 엠파이어’ ‘쿵푸팬더 4′ ‘베놈: 라스트 댄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모아나2′ ‘나쁜 녀석들: 라이드 오어 다이’가 점령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모아나2′는 ‘겨울왕국2′가 갖고 있던 역대 최고 추수감사절 흥행 기록을 깨며 단숨에 10위 안에 진입했다. 11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12위 ‘트위스터스' 역시 속편이며, 13위 ‘위키드’가 이달 말까지 기세를 이어가 10위 안에 들더라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옮긴 영화라 엄밀한 의미에서 순수 창작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1위부터 10위를 모두 속편이 차지한 해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2022년에 상위 10편 중 8편이 속편이던 때보다 더 심해진 ‘속편 중독'을 보여준다고 미국 언론은 진단했다. 올해 개봉한 영화들이 기획·제작에 착수하던 2~3년 전이 코로나 시기였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이 불확실성 최소화를 앞세우던 무렵이라 제작사 입장에선 탄탄한 충성 관객과 익숙한 캐릭터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속편이 안전한 선택이었다.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컴퍼니 CEO는 지난 5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요즘 영화 시장에서 속편은 여러 장점이 있다”며 “관객에게 인지도가 높고 마케팅비도 적게 든다”고 말했다. 또 “속편 중에도 좋은 영화가 많지 않느냐”며 “영화에 담긴 이야기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앞으로도 속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적인 흥행에 치우쳐 과거에만 의존하면 영화 산업의 미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최근 추세를 ‘속편 문화(Sequel Culture)’라 부르며 “영화 제작사들이 ‘실패 없는 흥행’(surefire hit)에 중독돼 있으며, 이대로는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스타워즈’의 아버지 조지 루커스 감독은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요즘 영화는 예전 영화가 했던 얘기만 되풀이한다”며 “창의적 아이디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속편의 행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메릴 스트리프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2편, 티모시 샬라메의 뮤지컬 영화 ‘웡카'의 2편 등 속편 제작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극장가도 속편이 박스오피스 상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경향과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올해 국내 흥행작 10위 내에 순수 창작 작품은 ‘파묘’ ‘파일럿’ ‘탈주’ 등 3편뿐이며 10편 중 7편이 속편 혹은 프리퀄이다. 익숙한 재미를 찾는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재개봉 행렬은 연말을 지나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개봉 25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하는 ‘매트릭스’(11일), 20주년 기념 ‘이터널 선샤인’(18일)에 이어 내년 초에는 ‘러브레터’ 30주년 재개봉이 기다린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속편 현상은 시장의 공급자인 제작사뿐 아니라 소비자인 관객도 확실한 재미를 원해 나타난 결과”라며 “국내 제작사들이 새로운 시리즈 작품을 발굴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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