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에서 곡물 라떼 맛이… 쿨일라 언피티드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4. 12. 5.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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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스 8종. /김지호 기자

2001년부터 매년 ‘스페셜 릴리스’를 선보였던 디아지오가 올해도 8종의 신제품을 공개했습니다. 최종 병입 단계에서 물을 첨가하지 않은 도수 높은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제품들입니다.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는 연례행사처럼 기다려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프리미엄까지 붙여서 판매됐던 제품들은 2019년부터 그 열기가 꺾인 듯했습니다. 초창기 스페셜 릴리스를 경험했던 위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특별함이 사라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모든 술은 재고가 쌓이면 할인하긴 하겠지만, 스페셜 릴리스는 국내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편이기도 한 터라 저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꾸준히 ‘민첩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엔 또 어떤 맛일지 기대하며.

2024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스 8종. /김지호 기자

매번 구설에 오르지만, 재밌는 제품들이 꼭 한두 개 이상 포함되어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스페셜 릴리스입니다. 올해 가장 눈에 띄었던 제품은 아일라섬에 있는 쿨일라(Caol Ila) 증류소의 11년 숙성, 언피티드(Unpeated) 제품이었습니다. 2018년 출시를 마지막으로 6년 만에 돌아온 쿨일라 언피티드는 피트가 주력인 증류소에서 피트를 제거한 위스키입니다. 피트 애호가라면 햄버거에서 패티가 빠진 듯한 느낌이겠지만, 그 오묘한 여백의 미는 직접 경험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없어서 못 파는 게 피트 위스키지만 과거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조니워커의 핵심 원액 쿨일라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위치한 쿨일라 증류소 모습. /김지호 기자

1846년에 설립된 쿨일라 증류소는 아일라섬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증류소는 여러 차례 손 바뀜 끝에 1927년 디아지오에 인수됐고 2개였던 증류기를 총 6개로 늘려, 연간 650만L를 생산하는 아일라에서 가장 큰 증류소로 성장합니다.

쿨일라는 1980년대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와 불황으로 피트 위스키의 수요가 없던 시절, 상대적으로 달콤한 ‘하이랜드 스타일’로 제품들을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쿨일라의 ‘언피티드 행보’는 당시 여기저기서 문 닫고 폐업하는 위스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 위치한 쿨일라 증류소 모습. 조니워커에서 스모키함을 담당하고 있는 원액이다. /김지호 기자

쿨일라 증류소의 원액 대부분은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되며 조니워커의 핵심 원액으로 사용됩니다. 조니워커 특유의 스모키함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죠. 블렌딩용 원액에 걸맞게 원액 자체도 풍미가 가볍고 화사한 편입니다. 매번 균형감 있고 깔끔한 원액이 쿨일라 증류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쿨일라 11년 언피티드

이번 제품의 특이한 점은 매번 버번 오크통만 사용하던 쿨일라가 처음으로 와인 오크통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또 디아지오는 짧은 발효 시간과 클라우디 워트를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워트란 당화 과정을 통해 얻은 맥아즙(Wort)을 말하는데 보통 클라우디 워트(Cloudy Wort)와 클린 워트(Clean Wort)로 나뉩니다. 말 그대로 맥아즙이 탁할수록 기름진 견과류나 시리얼 등의 풍미가 강해지고, 깨끗하고 투명할수록 과실 풍미가 강해집니다. 기존 언피티드 제품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이번에도 기대가 컸습니다. 그래서 마셔봤습니다. 알코올 도수 57.3도, 버번 오크통과 레드와인을 담았던 오크통 내부를 깎아낸 뒤 숙성한 제품입니다.

잔에 코를 대면 화사한 과일 향보다는 먼지 소복이 쌓인 녹색 곡물 향이 지배적입니다. 버터 발린 견과류와 가벼운 풀 향까지. 와인의 느낌은 찾기 어렵습니다. 입안으로 한 모금 가볍게 흘려보내면 두께감 있는 질감의 곡물 맛이 퍼집니다. 일반적인 쿨일라에서 느껴지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죠. 마치 호두와 아몬드를 갈아 넣은 곡물 라테를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끝에서는 땅콩의 붉은 껍질을 씹는 듯한 와인의 타닌감이 스칩니다.

지난 쿨일라 언피티드의 쨍하고 화사한 과일 풍미를 기대하셨다면 이번 제품은 결이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평소 쿨일라를 좋아하고 고소하고 미끈한 질감의 쿨일라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틀림없이 재밌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어떤 보틀이든 구매에 앞서 몰트 바에서 잔술로 미리 경험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2024 디아지오 스페셜 릴리스 8종 /디아지오

참고로 올해 디아지오 8종 스페셜 릴리스 중 피트 애호가들을 위한 저의 추천은 라가불린 12년입니다. 불필요한 기교 없이 깔끔한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해 출시된 제품이죠. 새콤한 사과에 메이플 시럽과 라임즙을 뿌려 장작으로 태운 맛을 경험하실 수 있으니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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