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공격 사이' 메인뉴스 앵커 멘트, 어떻습니까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에 높아진 관심...TV조선·채널A '앵커 칼럼' 형태 이어가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다들 궁금하다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쓰던 휴대전화를 어떻게 했는지 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
“이재명 대표가 측근 정진상 씨를 포옹한 장면도 법정사에 남을 만합니다. (중략) 포옹은 고마움과 격려, 회유의 몸짓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지요.” (TV조선 '뉴스9' <[앵커칼럼 오늘] 백현동 특혜 누가 줬나> 중)
“법 만드는 국회에서 법안 합의했다는 말은 거의 들리질 않고, 고발한다, 탄핵한다, 특검하자는 말만 들립니다.” (채널A '뉴스A' <[앵커의 마침표] 정치가 얼어붙다>)
지난달 29일 지상파 공영방송 MBC와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채널A 메인 뉴스의 앵커 멘트들이다. 2010년대 전후 한동한 활발하다 주춤한 앵커의 논평성 멘트가 최근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를 중심으로 다시 주목 받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TV조선 '앵커 칼럼', 채널A '앵커의 마침표'처럼 신문 칼럼을 연상케 하는 코너를 두고 있다.
앞서 국내 논평성 클로징 멘트의 대표 사례로 지금은 정치인이 된 신경민 전 MBC 앵커가 꼽힌다. 2008년 '뉴스데스크' 앵커로서 적극적 해설에 나선 그는 대중적 호응을 얻었지만, 그로 인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징계 위기에 놓이고 '외압' 논란 속 하차했다. 2009년 4월 마지막 뉴스에서 그는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다”고 했다.
2014~2019년 손석희 당시 JTBC '뉴스룸' 앵커의 '앵커브리핑'은 현재 종편 앵커 코너의 시작점이었다. 그는 앵커에서 하차한 뒤 펴낸 저서에서 “30년 이상을 앵커석에 앉았지만, 앵커브리핑을 위해 뉴스 스튜디오의 비디오월 앞에 서는 순간부터 나는 진정한 앵커가 될 수 있었다”며 “앵커브리핑이 갖는 의미는 한국 방송사에서 각별하다”고 돌아봤다.
이 밖에 SBS 김성준, 편상욱 전 앵커 등이 적극적 해설을 했던 시기도 두 앵커의 재임기와 맞물린다. 이후 한동안 지상파, 공영방송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앵커 멘트가 올해 MBC '뉴스데스크'의 조현용·김수지 앵커 발탁 이후 되살아난 셈이다.
시청자들 반응은 나쁘지 않다. 특히 MBC 뉴스게시판에는 앵커를 응원한다는 등의 호평이 올라오고 있다. MBC 시청자위원들은 지난 10월 회의에서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면 어떨까” “(답답한 시국에) 시원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동시에 뉴스 앵커가 개인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객관성이나 공정성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의문도 따라 붙는다. MBC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호평한 한 시청자위원이 “언론의 객관성을 위해 앵커가 멘트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BBC 가이드라인이 있기는 하지만”이라고 덧붙인 데서도 이 같은 고민이 일부 감지된다.
이에 안형준 MBC 사장은 “미국 퓰리처상의 경우 논평 부분에 대해 상을 주고 있다. 정파적인 주장과 다르게 확인된 팩트에 기반한 진술을 추구하는 논평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는 저널리즘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현재 퓰리처상의 해설, 사설 부문은 주로 인쇄매체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나 편집위원회 일원 등에게 주어지고 있다.
실제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공정성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공공 정책, 정치적 또는 산업적 논란 또는 기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한 기자나 뉴스·시사 진행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BBC 보도에서 알 수 있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관련 지침은 “BBC는 예외적이고 정해진 상황 외에는 뉴스 및 시사 진행자, 기자 및 저널리스트가 개인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국내에선 최근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경향신문 기고에서 “앵커의 주관 표명은 언뜻 정의롭고 선명해 보여도 자신의 몫이 아니다. 자기 프로그램이 전제하는 공정·객관성을 부정하는 셈”이라는 문제의식을 밝히기도 했다.
강형철 교수는 3일 통화에서 “특히 지상파 방송은 법적으로 공정성 의무가 있다. 미국 케이블TV는 자유재이기에 공정성 의무가 없지만, 한국은 보도전문채널과 종편도 공정성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사실상 허가 채널로 특혜를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자산인 방송과 언론 자유가 강하게 보장되는 신문을 분리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공정의 전제는 상대 주장을 같이 반영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앵커 한마디의 가장 큰 문제는 반론이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잇단 산업재해 사망을 예로 들면서 “'너무 안타깝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문제를 드러내고 보도하면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계적 보도를 하거나 맹맹한 보도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공정성 평가가 “앵커멘트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관점도 있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앵커가 전체 리포트를 아우르고 감싸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뉴스가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지 관점과 비판 지점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전설적 앵커'로 꼽힌 미국 CBS의 뉴스 진행자 월터 크롱카이트를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최 교수는 “비판이 아니라 공격으로 느낄 만한” 앵커멘트를 지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비판'과 '공격' 차이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비판적 사고에는 기본적으로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하고, 인과관계가 논리적이어야 하고, 자기 성찰까지 들어가 있어야 한다”며 “이것이 결여된 앵커멘트는 자칫 정파적 공격멘트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방송사의 앵커멘트를 두고는 “어떻게 보면 TV조선이나 MBC 앵커멘트의 성격은 비슷해 보인다”고 했다. “분석을 해보면 대부분 앵커멘트의 비판적 대상은 서로 상대 진영의 정치인”이라며 “정파적 진영 언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앵커멘트를 둘러싼 의견은 언론계 내부에서도 엇갈린다. 실제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도 앵커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일부 멘트가 뉴스 전체에 대한 평가나 인식을 과도하게 좌우한다는 비판도 있다.
MBC 앵커 출신이자 미국 워싱턴 특파원 경험이 있는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앵커가) 뉴스의 맥락을 평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기사에 요구하는 사실과 의견의 잣대가 앵커한테만 예외라는 현장 합의나 저널리즘적 논의가 있다고 보진 않는다”고 했다.
박성호 회장은 “뉴스 전반에서 제공하지 못한 맥락을 보완하거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면 순기능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주장과 의견이 부각된다면 (오피니언란이 구별되는) 신문과 달리 동일한 얼굴의 진행자가 사실 뉴스를 전하다가 의견 표명을 하는 방식이 되니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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