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자’들의 연말 결산…이 힘든 걸 왜 하느냐고요?

김지숙 기자 2024. 12. 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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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정부·환경단체 등 ‘시민과학 결과 발표회’
벌·개구리·새 관찰 십수년…“알아야 지킨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열린 ‘2024 시민과학 콘퍼런스 자연을 지키는 힘, 시민과학’에서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공동대표가 올해 야생 벌 관찰 기록을 공유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제공

“알아야 지킬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곤충은 관찰도 기록도 어려워서 많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한 걸음씩 나아가더라고요.”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열린 ‘서울환경연합 2024 시민과학 콘퍼런스’에서 조수정 ‘벌볼일있는사람들’ 공동대표가 지난 10여년 간의 시민과학 활동 경험을 나누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서울환경연합이 한 해 동안 중랑천·안양천 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 생명다양성재단 등과 협업해 진행한 시민과학 활동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이란, 과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이 과학 연구에 직접 참여하거나 연구에 기여하는 활동을 일컫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2년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가 시민들과 함께 멸종위기 1급인 수원청개구리의 서식 현황을 조사한 ‘수원청개구리 탐사대’(탐사대)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장 교수는 당시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수원청개구리의 생태와 서식 현황을 탐사대와 수집해 국제학술지에 소개했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부와 수원시가 수원청개구리 복원 사업에 나서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번 콘퍼런스에 ‘자연을 지키는 힘, 시민과학’이라는 행사명이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시민과학 활동이 환경 파괴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한 사례와, 서울 시내 생물들의 ‘생태계 서비스 가치’(대기오염 제거, 홍수 방지, 탄소 흡수 및 저장)를 환산한 데이터들이 공유됐다. 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은 2020년 10월 안양천 철새보호구역에 호안 정비공사가 진행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철새보전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서며 꾸려졌다. 철새보호구역 시민조사단의 2023~2024년 활동 결과, 중랑천에서는 멸종위기 1급인 흰꼬리수리를 비롯한 조류 65종 4306개체가 관찰됐고, 안양천에서는 47종 1520개체가 발견됐다.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를 찾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의 관찰 결과다. 시민 170여명(연인원)은 토요일마다 진행된 모니터링에 참여해 철새의 출현과 주변 환경 등을 6~10회가량 기록했다.

지난 7월 야생벌을 관찰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유니벌스’ 참가자들이 서울 남산에서 야간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벌볼일있는 사람들 제공

시민들의 활동은 실제 정책을 변화시키고 언론보도도 바로잡았다. 조해민 활동가는 “지난 1월 중랑천에 원앙 200마리가 도래한 것이 이례적이란 보도가 많았는데, 그동안의 관찰 데이터를 통해 실제로는 개체 수가 감소한 결과였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멸종위기종 큰고니가 2년 만에 한강을 찾은 것을 기록해, 서울시가 옥수동 인근 모래섬인 저자도에 건설하려고 했던 한강버스 선착장의 위치를 변경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시민과학 데이터는 야생동물과 생물 서식지를 보전할 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 분야에도 활용된다. 정부가 2011년부터 운영하는 ‘시민참여 한국 생물다양성 관측 네트워크’(K-BON, 이하 관측 네트워크)는 전국의 시민과학자와 연구기관이 협업해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종’ 100종을 관찰해 기록을 만들고 있다. 관측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국립생물자원관도 지난달 22일 올 한해의 활동을 갈무리하는 활동 결과 공유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22일 국립생물자원관이 서울 중구 한 모임공간에서 ‘시민참여 한국 생물다양성 관측 네트워크’(K-BON) 최종 워크숍(활동 결과 공유회)을 개최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국립생물자원관 기후환경생물연구과 관계자는 “올해 관측 네트워크 미션에 참여한 단체는 총 26개, 시민은 13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측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은 수의사, 교사 등 일반 회사원에서부터 시민단체 활동가, 숲 해설가, 나무 의사 등 다양한데 10여년간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온 단체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관측 네트워크 활동 결과 공유회에서는 강원 영월의 왜가리, 큰고니 월동 현황부터 부산의 큰산개구리 산란, 제주·울산·대전의 광대버섯 분포 및 북방아시아실잠자리 등의 곤충 서식현황까지 다양한 생물종의 모니터링 결과가 발표됐다. 자연활동 공유플랫폼 ‘네이처링’의 강홍구 대표는 “올해는 강원도에 서식하는 북방계 식물인 난사초가 경북 경주에서 40여포기 발견되는 등 눈에 띄는 관찰 기록들이 공유됐다”고 전했다. 네이처링은 시민과학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앱으로 관측 네트워크의 기록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 6월 야생벌을 관찰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유니벌스’ 참가자들이 서울 남산공원에서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벌볼일있는 사람들 제공

강홍구 대표는 네이처링에 등록된 시민과학 과제 유형이 △시민 관찰기록을 실제 연구에 활용하는 사례 △과학자들이 개인 연구를 위해 과제(미션)를 개설하는 사례 △정책·제도 개선, 문제 제기를 위한 데이터를 모으는 사례 등으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과학이 정부 기관의 과학자들의 연구 기반이 된 사례로 관측 네트워크를, 정책·제도를 개선한 사례로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등을 꼽았다. 지난해 네이처링 보고서를 보면, 이곳에 가입한 시민과학자는 5만5000명이고, 이들이 공유한 자연관찰 기록은 42만건에 달한다.

시민들은 왜 이다지도 ‘진심’인 걸까. 강홍구 대표는 “내가 사는 지역의 생태계 파괴를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경험이 누적된 효과일 것”이라 설명했다. ‘시민과학자’들의 꾸준한 관찰 기록이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야생 벌을 쫓다가 2021년 신종을 관찰하기도 한 조수정 대표는 매우 근본적인 동기를 말했다. “바로 ‘발견의 기쁨’을 나누는 거겠죠.”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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