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 타고 나타난 계엄군, 4천명 시민이 뒤엉킨 '불면의 밤' [계엄사태 후폭풍 시민·관가도 불안]

장유하 2024. 12. 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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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 된 국회
무장軍 280여명 일사불란 진입
시민들 "역사의 죄인 되지말라"
군용차량 막는 등 대치 상황도
계엄해제 후 대부분 자리 떠나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에 놀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후 11시께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로 경찰이 통제 중인 국회의사당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국회의장실 제공
3일 밤과 4일 새벽 사이 국회의사당 앞은 극도의 혼란과 환희가 불과 몇 시간 차이를 두고 교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원과 시민, 경찰, 군인이 뒤엉키며 난장판이 됐다가 날을 넘겨 국회 본회의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된 이후엔 "대한민국 만세" 등 기쁨이 터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시민들은 밤새 불안 속에서 뜬눈으로 지새웠고, 상황이 일단락된 아침에야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봤던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도 일반인에겐 낯설었다.

■국회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

4일 새벽 국회 앞은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시민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들로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전날 오후 10시30분께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회 앞에 모여들었지만, 국회 출입이 전면 통제되면서 분노가 폭발해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계엄군이 탑승한 헬기 여러 대가 서울 여의도 상공을 떠다니고, 무장 계엄군 280여명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됐다.

이날 시민들은 "국회는 국민의 것인데, 무슨 권리로 막느냐"며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한 시민은 "오밤중에 뭐 하는 거냐. 2024년에 계엄령이 말이 되느냐"고 외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회 앞에 모인 인파는 더욱 늘어났다. 경찰은 국회 인근에 약 4000명의 시민이 모인 것으로 비공식 추산했다. 시민들은 시위를 이어가며 출입을 막는 경찰을 향해 "당장 나와라, 가만두지 않겠다, 문을 열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국회 출입문은 굳게 닫혀 시민들의 진입이 완전히 차단됐다. 일부 시민은 국회 담을 넘으려 시도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자정께 총을 든 무장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하면서 시민들의 항의는 더욱 커졌다. 현장에서 군인과 일부 시민 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민들은 군인들에게 "역사의 죄인 되지 말라"고 소리쳤다.

국회대로 일대는 한때 군용차량이 줄지어 배치되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시민들은 차량을 둘러싸고 "너희 쿠데타는 실패했다" "폭력은 안 된다" "명령다운 명령을 따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국회 정문 앞에 모인 시민들 역시 "비상계엄 탄핵하라" "윤석열을 체포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날 자정이 넘은 0시48분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결의안 통과 소식에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고 깃발을 흔들며 박수로 기쁨을 표출했다. 현장에서는 "계엄령이 해제됐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후 오전 4시20분께 윤 대통령이 국회 요구를 수용하면서 선포 6시간 만에 계엄은 완전히 해제됐다. 상황이 진정되자 국회 앞에 모였던 시민들도 대부분 자리를 떠났다.

■"실제 상황이라는 것에 놀라"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시민들 대다수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본지가 만난 시민들은 계엄 선포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979년 10·26사태 당시 선포된 비상계엄령 이후 45년 만에 다시 계엄령 선포를 보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이모씨(31)는 "역사책에서만 보던 비상계엄령이 2024년에 선포돼 너무 놀랐다"며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밤잠을 설쳤고, 유튜브로 국회 본회의를 지켜보며 마음을 졸였다"고 말했다.

광진구 주민인 주부 채모씨(63)는 계엄령 소식을 듣자마자 주변인에게 안부전화를 돌렸다. 채씨는 "어제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 딸과 친한 지인들한테 '괜찮냐'고 바로 전화했다"며 "TV로 상황을 계속 지켜보다가 잠들었는데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구모씨(28)는 "아직 계엄령이 선포될 만한 나라인 줄 몰랐다"며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계엄이란 단어를 들어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살아생전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비상계엄은 선포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윤 대통령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40대 직장인 양모씨는 "비상계엄령이 실제로 내려질 수 있다는 거에 한 번 놀랐고, 대통령 혼자 판단을 내려서 군인이 국회를 점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며 "혼란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이런 사태를 일으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노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정경수 최은솔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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