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6시간짜리 계엄`에 넋잃은 한국 경제

이규화 2024. 12. 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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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충격 제한적, 예의 주시
전략산업 흔들리지 않게해야
정부 정책 리더십 한계 전망
윤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연합뉴스]

시작은 결연했으나 '6시간짜리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반쯤 긴급 담화문 발표를 통해 이날 23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인 4일 오전 4시 26분 국회 해제 의결을 받아들여 해제했다.

워낙 전격적이었던 만큼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시장은 발작했다. 코스피는 외국인이 4000억원을 순매도하며 전날보다 1.44% 하락한 2464에, 코스닥은 전 장보다 1.91% 내린 677.59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미달러 환율은 7.2원 오른 1410.1원에 국내 장을 마쳤다. 그러나 계엄해제 전 미국 장에서는 한때 1440원대까지 올랐다. 한 나라의 경제체력을 나타내는 통화가치가 40원(약 3%) 하락(환율상승)했던 간밤의 롤러코스터였다.

다행히 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돼 금융시장 충격은 일단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과 전문가들은 긴 후유증을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는 계엄 후폭풍으로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란 점은 불문가지다. 이날 세계적 신용평가사 S&P가 한국의 국가신용도에 미칠 영향이 없다고 밝혔지만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잖아도 한국경제는 저성장 고착화에 진입했다. 올 성장률은 2%에 턱걸이 하고 내년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성장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수출도 상반기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였다가 11월 1.4% 증가에 그쳤다. 미·중 디커플링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한국경제는 높은 파고를 맞고 있다. 여기에 '윤석열 리스크'까지 덮친 것이다.

정부는 최상목 부총리 주재로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기업의 경영 활동, 국민의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경제 현안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실물경제 충격이 발생하지 않도록 24시간 경제금융상황점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도전에 정부가 가진 방패는 그리 튼실하지 못하다. 정부는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무제한적 유동성 공급을 약속했으나 시장이 안정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올 세수 결손이 작년 56조원에 이어 36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재정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이날 내각이 총사퇴를 표명한 것도 불안을 키우는 요소다.

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삼성·SK·LG 등 주요 기업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정국 전개를 주시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삼성은 이날 주요계열사 인사를 예정대로 단행했지만, 각사마다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다. SK그룹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상황 점검에 나서 그룹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을 논의했다. LG는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HD현대는 이른 아침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각 사별 대응 전략을 숙의했다.

계엄 해프닝이 한국경제에 미칠 악영향 중 특히 주시할 분야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산업이다.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는 내외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삼성전자는 신성장 먹거리로 내세운 파운드리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메모리 점유율도 떨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도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독보적 시장점유율을 구가하고 있지만 우위가 언제 바뀔지 모른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정부'라고 할 만큼 반도체 R&D 세액공제 확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민관 협력 체제를 짜왔다. 이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배터리 산업도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G·삼성·SK 등 배터리 기업들은 전기차 캐즘으로 고전 중인 상황에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물량·기술 양면 공세를 받고 있다. 기대했던 미 정부의 세액공제도 트럼프 2기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폐지될 것으로 보여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외교통상으로 기업들의 애로를 경감해줘야 하는데, 이 역시 기대난망이 됐다.

총체적 난국에서 전문가들은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을 조언한다. 급작스럽고 뜬금없는 계엄에 넋을 잃고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정부가 경제 컨트롤타워를 제대로 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선 이런 리스크가 오래갈 수 있어 기업마다 비상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수출이 정치 리스크로 흔들리면 안 된다"며 "방위산업이나 원전 같은 대규모 수주 사업에서 민관 원팀으로 수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경제·금융당국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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