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될까 명동성당으로” 포고령 속 진보·인권단체 ‘공포의 2시간30분’

김가윤 기자 2024. 12. 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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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군용차량의 진로를 막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윤석열 정부 실정을 비판하며 거리에서 외쳐온 진보·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 3일 오전 10시28분부터 시작된 2시간 반은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계엄을 선포한 뒤 곧장 계엄사령부는 1호 포고령을 발표했다. ‘정치적 결사·집회·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파업·태업·집회 행위를 금한다’며 위반자의 경우엔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엄사령부는 집회·시위를 통해 기본권을 주장하는 활동가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했다.

계엄이 선포된 뒤부터 이른바 ‘반국가세력’은 거리로 나서는 일에 더욱 용기를 내야 했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인 명동성당을 찾는 발걸음도 이어졌다.

“옛날 광주에 계셨던 분들도, ‘별일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나갔겠구나’ 했어요. 서둘러 나갔는데 헬기가 떠 있는 걸 보니 너무 무서워지더라고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집회시위인권침해감시변호단에서 활동하는 윤재은 변호사는 속보를 보자마자 집을 뛰쳐나와 국회로 향했다. “혼자 강아지를 키우는데 내일 아침까지 연락이 안 되면 돌봐달라고 주변 지인에게 얘기했어요.”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마음이었지만, 계엄군을 보니 자칫 체포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온 것이다.

포고령이 내려진 밤 11시엔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비상식적인 일이 더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다. 집회·시위나 국가보안법 등 수사를 받았던 전력이 있던 활동가는 예비 검속이 부활하지 않겠는가, 그다음으로는 언론이 장악되지 않겠느냐는 걱정들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계엄 선포 문구에 단체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불시에 체포·구금과 압수수색이 가능한 것이 계엄령이다. 포고가 내려진 전날 밤 11시를 지나면 손발이 묶여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처단’될 수 있단 뜻이다.

“정치활동 금지엔 대부분의 사회단체 활동이 다 포함돼요. 이를 명분으로 단체장을 바로 체포할 수도 있겠다는, 시민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선 할 수 있겠단 우려가 먼저 들었죠.” 참여연대는 밤 11시 집행부를 소집했다. 최고 의사결정자가 체포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점검했고, 현장에선 한꺼번에 체포되지 않도록 팀을 쪼개 움직이기로 했다.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국장은 “언론이 통제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도 나와서 그것에 대비한 채널 가동 방안을 점검하기도 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서울 시내 ‘모처’로 서둘러 이동하기도 했다. “상황을 파악하다 보니 ‘여기 있으면 다 잡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시민 저항을 하지 못하니까 일단 명동성당으로 이동했어요.” 군인권센터는 속보를 보는 즉시 여의도로 달려가 의원과 보좌진을 들여보내고 혹여라도 곧장 명동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절반은 남고, 절반은 국회가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해야 해서 (명동성당 인근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엄군이 탄약을 마구 싣고 들어오지 않았느냐. 그 총알은 국회 앞 시위대까지 모두 제압하고도 남을 양이었다”라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몸을 피하기 위해 서로의 사무실을 내어주기도 했다.

이 모든 대처는, 계속 싸우기 위해서였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처럼 집회·시위를 많이 했던 단체들은, (포고령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해서 활동을 마비시키고 저항의 목소리를 없애려고 할 것이라 생각했다”며 “싸우기 위한 준비를 했다. 자료를 빼앗기면 싸울 수 없으니 대비를 하자고 했다”고 했다.

여야 의원 190명은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지 150여분 뒤인 4일 새벽 1시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새벽 4시30분께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인권단체 활동가들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이들에겐 단순히 2시간 반 또는 6시간의 ‘해프닝’이 아니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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