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전시시설에 강제병합 무효 아니라는 주장까지 전시한 일본

홍석재 기자 2024. 12. 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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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병합 재검토 국제회의에서 국제법에 대해 권위 있는 구미의 법학자가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 법 관행에 비춰 무효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3구역 한편에 군함도 등이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됐을 때인 2015년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했던 발언을 정보무늬(QR코드)로 볼 수 있는 장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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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가보니
식민지배 노골적으로 자랑하는 내용 버젓이 추가
일본 도쿄 신주쿠 산업유산정보센터의 모습. 도쿄/홍석재 특파원

“한국 병합 재검토 국제회의에서 국제법에 대해 권위 있는 구미의 법학자가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 법 관행에 비춰 무효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4일 찾은 일본 도쿄 신주쿠 ‘군함도’(공식 지명은 하시마) 관련 전시 시설인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이런 설명이 흘러나왔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본 정부가 지난 2015년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 등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하면서 ‘모든 역사’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하고 지은 시설로, 2020년 6월 문을 연 곳이다. 센터는 예약해야 방문할 수 있고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는 등 개관 이후 계속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게시물에는 “1905년 이후 일본의 보호국이었던 대한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대일본제국의 일부로 통치되고 있었다” “당시 대일본제국의 주권이 (한반도 전체에) 미치는 범위를 국민이 널리 쓰던 지도와 국가총동원법에 근거해 국민징용령이 공포된 1939년 당시 중학교 지리 교과서에서 보는 게 가능하다”는 등 오히려 식민 지배를 노골적으로 자랑하는 내용도 적혔다. 센터를 소개하는 한 안내원은 “오늘은 사람이 없는데 평소 가이드 투어 예약이 꽉 찰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온다”고 말했다. 이 게시물은 개관 초기에는 없었던 것으로 최근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개악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전체 300평 남짓(1078㎡)한 규모의 산업유산정보센터 가운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할 제3구역 어디에도 조선인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아픈 역사를 이해할 자료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참고도서 코너’에는 ‘일본의 통치를 점검한다’(조지 아키타 등 지음) 같은 책들이 줄줄이 꽂혀 있었다. “일본의 병합통치를 악랄하게 매도하는 게 일반적인데, 소문만으로 압제·학살·수탈·강간 등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조사 결과 그런 일은 없었다”며 “(일본의) 위정자가 (한국의) 개혁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관습을 지키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개혁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이전부터 있었던 왜곡 전시는 여전했다. ‘광산(군함도) 노동에 관한 증언 영상’ 코너에서 일제강점기 군함도에 살다가 창씨개명을 했다는 한 조선 출신 인물이 “(조선인이어서) 차별 같은 건 받은 일이 없고, (어렸을 적이지만) 주변에서 맞거나 비명을 지르는 일을 들은 적도,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없다”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이 전시물은 개관 초기 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인의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지난해 9월 제4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한국 정부가 요구했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 전시,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서 강제로 노역한 전체 역사 설명 같은 것들은 반영되지 않았다.

3구역 한편에 군함도 등이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재됐을 때인 2015년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했던 발언을 정보무늬(QR코드)로 볼 수 있는 장비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를 본 것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 사진은 산업유산정보센터가 2020년 6월 개관 당시 제공한 것이다.

사토 당시 대사는 2015년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며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 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언했다. 일본이 유네스코에서 했던 약속은 9년 뒤인 지금 공허하게 들렸다.

그리고 올해 여름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또 다른 현장인 니가타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도 성공했다. 윤석열 정부는 핵심 쟁점인 ‘조선인 동원’의 강제성 인정을 일본에서 얻어내지조차 못하고, 등재에 찬성해줬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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