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39조에도 해마다 '신용경보'···롯데, 만기 분산해 리스크 줄인다

임세원 기자 2024. 12. 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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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금조달 구조 개편
2010년대 공격투자로 차입 경영
1년 미만 사채·기업어음만 13조
올 계열사가 낸 이자 1조2400억
물산 잠실 롯데타워 등 담보 활용
고금리 감수 만기 분산해 경색 해소
[서울경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제공=롯데그룹

롯데그룹이 자금 구조를 단기에서 중장기로 개편하는 작업에 나선 것은 13조 원에 달하는 주요 계열사의 채무 만기가 1년 내로 몰리면서 재계 6위 수준인 139조 원의 자산에도 불구하고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만기를 늘리면 금리가 올라가고 기준금리 인하 등 금리 변동이 심할 때는 만기를 짧게 해 발행하는 게 유리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그룹 전체의 만기를 분산해 차환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011170)·호텔롯데·롯데쇼핑(023530)·롯데건설 등 롯데 주요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 중 내년 만기인 회사채 규모는 약 7조 원이다. 2026년에는 6조 7000억 원, 2027년에는 3조 9000억 원대로 확 줄어든다.

회사채뿐만 아니라 만기가 3개월에서 1년 미만인 단기사채와 기업 어음, 또 장기부채 중 만기가 1년 앞으로 다가온 것까지 합친 유동부채와 사채 규모는 13조 3071억 원으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주요 계열사가 장단기 유동부채와 사채 때문에 지출한 이자만 올해 3분기 말 기준 1조 2457억 원에 이른다.

롯데그룹 유동성의 가장 큰 문제는 개별 차입 규모는 그룹 자산에 비해 작지만 시장 상황이 악화했을 때 만기가 몰린다는 점이다. 2022년 레고랜드발 롯데건설 위기에 이어 최근 롯데케미칼 회사채 등 사건 하나로 그룹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그룹 재무 전략의 주도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는 창업주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 시절 내수 산업을 주력으로 무차입 경영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신동빈 회장이 화학 등에 진출하고 해외로 확장하기 위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단행하면서 외부 자금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오랜 기간 무차입 경영을 고수했고 상당한 부동산 자산을 보유해왔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 손쉽게 단기 차입을 일으킬 수 있었다”면서 “일부 계열사는 빠르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업어음을 선호했다”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는 롯데물산이 알짜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계열사 추가 지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롯데물산은 과거에도 롯데건설의 이자에 대한 자금 보충과 대여금을 지원한 바 있다. 롯데물산은 롯데쇼핑과 호텔롯데로부터 롯데월드몰과 타워에 대한 임대 수익을 받는 등 사업적으로 긴밀하다. 한국기업평가는 “롯데물산의 월드타워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월드호텔 등 계열사와 긴밀한 연계성을 가지면서 사업 안정성이 강화된다”며 신용평가에 반영했다.

롯데물산은 잠실롯데타워와 오피스, 잠실 롯데몰을 분양·임대하고 있고 베트남의 롯데센터하노이·롯데몰떠이호 등 해외 쇼핑몰의 자산관리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 주요 자산 규모는 올해 3분기 기준 7조 9036억 원이다.

롯데물산은 롯데타워 분양 수익 외에 최근 5년간 매년 2200억~3400억 원의 임대 수익을 올렸다. 그밖에 내년까지 이천과 안성의 물류센터를 매각할 예정이어서 추가 수익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롯데타워의 부동산 가치는 6조 원으로 롯데케미칼에 활용한 담보 가치가 2조 4818억 원이어서 추가 담보 활용은 롯데그룹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롯데물산은 롯데케미칼의 2대 주주이기 때문에 담보를 제공했을 뿐 다른 계열사는 현재 지원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그 밖에 롯데건설도 자금 조달 구조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롯데건설은 올해만 8600억 원의 기업 어음과 단기사채 3500억 원의 회사채를 최대 7.0% 금리로 발행했는데 이 중에는 만기 한 달짜리 단기물도 있었다. 건설사는 사업장마다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단기 자금을 활용하는 것을 고려해도 만기를 중장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평가다. 다만 롯데건설은 앞으로 그룹의 지원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금리 인상 시기에 업황 부진까지 맞은 계열사는 상환 후 재발행 과정에서 금리 인상을 겪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계열사의 신용 보강이 필요할 수 있다. 호텔롯데는 2020년과 2021년 찍은 회사채의 만기가 다가오자 올해 재발행하는 과정에서 1.4%대였던 금리가 4.1%대로 높아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타워 내부 쇼핑몰의 모습. 사진제공=롯데물산

그룹 내부에서는 2022년 롯데건설 위기 당시 메리츠증권과 맺었던 펀드 조성 조건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기를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롯데그룹 관계자는 “떠밀리듯 비싼 돈을 빌리면서도 위험은 그룹이 떠안는 조건인데 만기가 몰리다 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2022년 1월 롯데건설이 메리츠증권과 맺은 1조 5000억 원 펀드 조성 당시 롯데그룹 계열사가 담보를 제공했다. 사실상 최악의 위험은 롯데가 받치는 구조였지만 당시 금리는 수수료 포함 12%였다. 이후 2년 만에 은행권이 주도해 금리를 낮춘 2조 3000억 원의 펀드로 갈아탔지만 롯데는 급전을 쓴 대가로 1000억 원 넘게 메리츠에 줘야 했다.

계열사 중 1년 만기 도래 부채가 가장 많은 롯데케미칼 역시 자금 조달 구조 개선 대상이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최근 메리츠와 6600억 원 규모의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대적으로 위험한 총수익스와프(TRS)를 배제했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자금 조달 개선 차원에서 TRS방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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