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 재계, 한밤 날벼락에 뜬눈 밤새…"환율 등 재무리스크 점검"(종합)
"본연의 경영 활동에 충실"…상법 개정안 토론회 등 일부 행사는 취소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윤석열 대통령의 한밤 긴급 비상계엄 선포에 '초비상'이 걸렸던 국내 기업들은 계엄 해제 이후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금융시장 불안 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는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이 더해지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SK, LG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밤사이에 긴박하게 전개된 상황을 예의주시하느라 뜬 눈으로 밤을 샌 데 이어 이날 오전부터 긴급회의를 소집해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고 뉴욕 증시에 상장된 한국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출렁이는 등 금융 시장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 만큼 향후 경제계에 미칠 파장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삼성은 전날 밤에 이어 이날 오전 계열사별로 긴급 회의를 열고 관련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재로 일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참석하는 주요 경영진 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그룹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본연의 경영 활동에 충실하고 흔들림 없이 업무에 매진하자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5일로 예정된 그룹 연말 인사도 예정대로 진행한다.
LG그룹은 이날 계열사별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해 금융 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해외 고객 문의에 대한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
특히 LG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 사옥이 있는 만큼, 이날 새벽 여의도 트윈타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비상계엄 관련 여의도 상황이 좋지 않아 트윈(사옥) 동관, 서관 모두 재택근무를 권고한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는 환율 추이에 따른 대외 환경 변화 가능성과 회사 신용도에 미칠 영향 등을 점검했으며, 포스코홀딩스도 관련 부서에서 금융시장 동향 등을 점검했다.
HD현대는 이날 오전 7시30분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향후 발생 가능한 경제 상황을 집중적으로 살핀 뒤 각사별 대응 전략을 수립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국내외 상황이 긴박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하며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해 달라"며 "조선 등 생산 현장에서는 원칙과 규정 준수에 더욱 유념해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써달라"고 당부했다.
HS효성도 오전 사장단과 관련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경제 상황 점검 회의를 열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 상황을 면밀히 예의주시하면서 관련 부서에서 환율, 주가 등 사안을 챙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기업의 고위 임원들은 전날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하게 사무실로 돌아와 생중계 등을 지켜보며 향후 미칠 파장 등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태로 정국 불안 요소가 더 커진 만큼 향후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는 등 경영 활동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다양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대책을 내놓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이 같은 노력에 사실상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이번 사태로) 금융시장의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된다"며 "정치가 경제에 이렇게 영향을 주면 안 되는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다들 당혹스러운 분위기"라면서 "그룹 차원에서 동요 없이 여느 때처럼 업무 기강이 확립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은 평소처럼 항공편을 정상 운항하면서 환율 상승이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로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항공 수요의 전반적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아직 별다른 예약 취소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인바운드(외국인의 한국 여행) 수요의 변동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도 비상계엄령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주시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국민 소비 심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뜩이나 대출 규제로 주춤한 매수 심리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경제가 불안하면 아파트를 사겠느냐"며 "영업이나 마케팅 활동에 영향이 없을지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해외 수주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그 나라 정세가 불안하다고 하면 아무래도 신뢰가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경제단체도 경제 관련 법안 처리 등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진 만큼 향후 경제계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오전에 임원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상의 관계자는 "조속히 정국이 안정됐으면 좋겠다"며 "기업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부처와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상법 개정안 토론회는 무기한 연기됐으며, 5일 열릴 예정이던 국민경제자문회의 간담회도 취소됐다.
한국무역협회도 긴급 경영진 회의를 열고 간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해제가 한국 경제와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했다.
(장하나 권혜진 김보경 김아람 이슬기 임성호 홍규빈 강태우 기자)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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