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소중해' 의귀·하례마을로 뻔하지 않은 서귀포 여행

김진 2024. 12. 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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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한 서귀포를 조금 더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여행을 보다 의미있게 보내고, 여행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지역 사회와 연대하여 제주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들을 방문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서귀포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마을 이야기를 들어보는 여행. 유명한 관광지에서 사진 한 장으로 기록되는 여행보다 의미와 가치를 마음에 꾹꾹 담아가는 소소한 여행에서 우리의 경험은 보다 풍성해진다.

하례마을 걷기

제주마의 본고향, 의귀마을

제주도를 대표하는 동물이 무엇일까? 제주도의 맛을 즐기러 떠나는 관광객이라면 흑돼지가 먼저 생각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동물은 따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한 제주마(濟州馬)가 그 주인공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마와 함께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제주의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서귀포 남원읍에 위치한 의귀마을은 제주마와 역사를 함께 한다. 의귀(衣貴)마을이라는 이름도, 조선시대 외적이 침입할 때마다 수천 마리의 말을 나라에 바친 '헌마공신 김만일'이 임금으로부터 귀한(貴) 옷(衣)을 하사받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귀한 옷이라는 뜻을 담아 옷귀마을이라고 했으나, 요새는 의귀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의귀마을 주민들의 김만일에 대한 애정은 '헌마공신 김만일 기념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례마을 돌담에 자라는 다육식물이 마치 꽃처럼 아름답다

제주 중간산 마을이자 김만일의 고향인 의귀리에 자리한 '옷귀마 테마타운'은 마을 주민 120여 명이 힘을 합쳐 만든 승마장이다. 그래서 수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의귀마을과 제주 말 문화를 홍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영한다.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승마체험이 가능한 것은 마을주민의 이런 마음에서 비롯한다. 옷귀마 테마타운의 건물로 들어가면 복도 가득 마을과 말의 역사를 가득 전시해 놓아 쉽게 의귀 마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체험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승마 체험

적당히 서늘한 공기 속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 앉던 12월 초. 코치의 설명에 따라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말에 올라타는 법, 고삐 잡는 법, 말을 걷게 하는 법, 말을 달리게 하는 법, 좌우로 도는 법, 정지시키는 법 등. 실내 마장에서 기승교육을 받고, 어느 정도 말타기 방법이 익숙해지고 나서 승마 체험을 시작했다. 코치가 옆에서 말을 끌어주는 것이 아닌, 체험자가 직접 말을 타고 달려 보는 진짜 승마다. 말이 걸을 때는 편안하지만, 달릴 때는 고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조금 긴장되었다. 그래도 짜릿했다. 의귀마을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는 이 프로그램은 45분 정도 진행된다.

말타고 산길을 달리는 짜릿한 기분

이 날 말 위에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은 가을과 겨울 그 중간에 있었다. 눈모자를 쓴 한라산을 바라보며, 편백나무와 비자나무가 가득한 숲길을 달리고, 황금빛 억새를 가로지르며 말과 함께 달렸다. 비단결처럼 고운 말의 털을 쓰다듬으며, '잘 했어. 고마워.'라는 말을 전했다. 말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호흡하며 걷고 달리는 기분은 뭐랄까, 단순히 말을 타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동물과의 깊은 교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위안을 받았달까.

말과의 교감

옷귀마 테마타운은 1회성 체험이나 자유 승마 같은 일반적인 프로그램 뿐 아니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승마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재활승마 지도사도 5명이나 있다. 전신운동인 승마를 통해 근력과 균형감각을 기르고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어 장애인들의 재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옷귀마 테마타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례마을은 어딜 가나 감귤

감귤꽃이 가장 빨리 피는 하례마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마을은 연평균 15.8도의 온화한 기후를 지닌 곳으로, 전국에서 감귤꽃이 가장 빨리 핀다. 어디를 가든 상큼한 감귤 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막 수확한 감귤을 박스에 담느라 주민들의 손은 바빴다. 하례마을 900명의 주민 중 대다수는 감귤 농업에 종사한다. 한라산 백록담에서부터 바다로 이어지는 효돈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어 하례마을의 감귤은 기온 차로 인해 유독 새콤달콤하다.

쑥을 반죽에 넣어 만드는 상웨빵도 있다
상웨빵 만들기, 반죽은 정확히 70g이어야 한다

하례마을은 감귤마을인 만큼 다양한 감귤 체험도 해볼 수 있다. '하례점빵'은 주민들이 협동조합으로 뭉쳐 상웨빵과 지역 먹거리를 소개한다. '상웨빵'은 제주의 상웨떡이라는 향토 음식을 변형시켜 개발한 수제빵이다. 쌀이 나지 않던 제주의 옛 시절, 지역주민들이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막걸리를 섞어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새콤달콤한 하례 감귤 소를 넣어 만든다. 육지의 술빵을 많이 닮았지만, 감귤 맛 때문에 '제주 고유의 빵'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시절, 마을 주민은 하례점빵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겼었지만, 펀딩으로 2천만원이라는 수익을 내면서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번에 참가한 사람들은 빵이 익는 1시간 동안, 하례 마을 투어에 나섰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

하례마을은 서쪽으로 효돈천을 끼고 있는데, 깎아지른 암벽과 기암괴석 사이 난대림이 넓게 퍼져있어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소중한 자연유산을 간직한 하례마을엔 지역 주민이 직접 인솔해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을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 해설사는 하례마을의 자연이 유독 보존이 잘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은 그린벨트와는 다릅니다. 그린벨트는 언젠가 개발이 가능하지만, 유네스코 보존지역은 문화재청의 상위법이라서 아예 개발이 안되는 곳이죠. 그래서 외지인이 들어와 살지를 않습니다. 돈이 안되니까요. 그래서 자연이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효돈천 남내소

외지인에게도 잘 알려진 쇠소깍은 13km에 이르는 효돈천의 끝자락이다. 쇠소깍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해 바닷물과 함께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내 뛰어난 비경을 자랑한다. 여행자들은 쇠소깍에서 카약을 타는 등 간단한 체험만 하고 가지만, 쇠소깍의 상류인 효돈천을 경험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효돈천에서 가장 크고 넓은 소(沼)로 알려져 있는 남내소엔 사랑했던 남녀가 깊은 물웅덩이에 빠져 죽은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남내소를 포함한 긴 효돈천엔 신비로운 기암절벽이 이어진다.

제3효례교에 서면 한라산과 효돈천이 한 눈에 담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왜 사람이 없을까? 효돈천으로 들어가는 길은 꽁꽁 숨어있다. 그 흔한 이정표도, 안내판도, 주차장도 하나 없다. 마을 해설사가 알려주고 나서야 입구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하천이 알려졌을 때, 외지인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마을은 관광지에 입간판조차 설치하지 않습니다. 알려지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도 별로 달갑지는 않습니다. 외지인이 함부로 들어갔다가 구조요청을 보낸 적도 있었죠. 우리 마을은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여행하도록 마을 분들과 동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라고 전했다.

4.3사건을 기억하는 빨간 동백꽃 머리끈. 예쁘고 의미 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로 재조명된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가슴 아픈 이야기도 하례마을의 돌담길을 걸으며 들을 수 있었다. 하례마을 역시 4.3사건으로 많은 주민이 학살당한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4.3을 기억하는 빨간 동백꽃은 기념품이 되어 혼디마켓에서 판매된다. 제주의 사회적경제기업과 지역주민들이 만든 다양한 수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여행자들은 꼭 들러 보길 추천한다.

혼디마켓엔 빨간 동백꽃을 모티브로 한 제품이 많

효돈천에 서식하는 도롱뇽은 생물권보존지역을 상징하는 동물이면서, 마을의 마스코트이고 마을 투어의 길잡이가 된다. 돌담길, 길바닥, 전봇대 등에 그려진 귀여운 도롱뇽을 찾아보는 것도 하례마을 여행의 재미다.

하례마을을 여행할 땐 이 QR코드를 스캔하면 마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역과 같이 하는, 가치 있는 여행
서라운드(Surround) 트립은 서귀포를 둘러싼 자연, 사람, 마을을 순환(Round)하는 여행이라는 뜻으로, 이미 잘 알려진 제주도 체험을 넘어 서귀포의 숨은 자연을 돌아보고 주민을 만나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마을의 이야기를 듣는 10가지 다양한 테마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투어 프로그램은 무장애 여행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주도 기반 여행사, 두리함께에서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 김진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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