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대한민국, 계엄 선포와 해제까지 6시간
송진영 기자 2024. 12. 4.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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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하고 국회가 4일 새벽 '무효'를 선언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55분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통령의 한밤 계엄 선포와 국회 내 군 투입 등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모습인지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국민에게 극도의 충격을 안겼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5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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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후 45년만 국회에 군 투입
국민 충격, 경제 사회적 대혼란 후폭풍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하고 국회가 4일 새벽 ‘무효’를 선언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155분이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새벽 4시 27분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계엄을 해제했다. 전날 오후 10시 25분께 같은 방식으로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만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통령의 한밤 계엄 선포와 국회 내 군 투입 등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의 모습인지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국민에게 극도의 충격을 안겼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 25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여러 대통령실 참모조차 모른 채 극비리에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선포 한 시간 만에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할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후 11시께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국회 표결을 위해서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요건인 ‘재적의원 과반 찬성’을 위해선 최소 150명의 국회의원이 시급하게 본회의장에 모여야 했다.
이 무렵 국회에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이를 막아서는 국회 보좌진 간 대치와 충돌이 시작됐다. 이미 경찰이 국회의사당 정문과 측문을 막은 상태에서 많은 여야 의원은 담을 넘어 본청에 진입했다. 이 장면은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충격을 안겼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에 전신을 무장하고 소총을 두른 계엄군이 국회에 무력으로 진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국회 로텐더홀에서 보인 국회의원은 4일 0시쯤 약 60명이었지만,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 1시께에는 의결정족수를 넘은 190명으로 늘었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유리창까지 깨고 건물에 진입한 상황에서 의원들은 우 의장에게 “빨리 상정해 표결하라”고 고성으로 항의했으나, 우 의장은 “국회가 정한 절차에 오류가 없도록 진행해야 한다”며 10여분간 안건 상정을 기다리기도 했다. 결국 표결에 참여한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계엄 선포 155분 만에 가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수도방위사령부 특임대가 이 대표를 체포·구금하려 했던 시도가 CCTV로 확인됐다”며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려는 체포대가 만들어져서 각기 움직였다”고 강조했다.
외신도 이번 계엄 사태를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엔) 초창기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며 민주적 국가로 간주됐지만, 국가 전체에 충격파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됐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개했다. 그 뒤 40년이 지나 윤 대통령이 야당과 북한을 연계해 “반국가” 활동을 벌인다며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설명하며 “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조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전 한국의 군부 통치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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