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우리나라에만 '예체능 병역 특례' 있다?

박형빈 2024. 12. 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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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엘리트 예체능 육성 차원에서 보충역 편입 도입
대만 등 일부 국가, 병역 특례에 입상 기준 규정하기도
끊이지 않는 공정성 시비…정치권도 존치 여부 오락가락
가족들 앞에 선 훈련병 (논산=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29일 오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대면 신병 수료식이 열리고 있다. 육군훈련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단했던 대면 수료식을 2년 4개월 만에 재개했다. 2022.6.29 psykims@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야구 스타 추신수(42)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201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은 후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했다는 의혹에 대해 "구단에서 반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타자로 인기를 누린 추신수가 공개 해명까지 했음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는 "누릴 건 누리고 국가 부름에는 모른척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하고 불공정한 병역 특혜" 등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국제 대회마다 남성 선수들의 입상에는 메달과 함께 '병역 면제' 여부가 국민의 관심사였다.

'국방의 의무'인 군 복무는 장성한 아들이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엘리트 예술·체육인에 대한 병역 면제는 매번 일반 현역병과의 공정성 시비를 야기했다.

그렇다면 예체능 분야 병역특례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할까? 제도의 역사부터 쟁점까지 살펴봤다.

1973년 도입 이래 61년째…정명훈부터 '페이커'까지

흔히 예술·체육인의 병역 특례는 병역 제도상 보충역 중 하나인 '예술체육요원'으로의 편입을 말한다.

현행 병역법상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법이 규정하는 공인 대회에서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을 내 '국위선양 및 문화창달에 기여한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해 군 복무 대신 특기를 살려 공익봉사를 하며 34개월 동안 복무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나 기관·기업체에서 해당 분야의 선수, 코치, 감독 등으로 종사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복무 전과 다름없이 지낸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병역 면제'로 받아들여진다.

이 제도는 1973년 제정된 '병역의무의 특례 규제에 관한 법률'을 모태로 한다. 당시 법은 '학술·예술 또는 체능의 특기를 가진 자 중 국가이익을 위해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가 필요하다고 인정돼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선발한 자'에 대해 보충역 편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개발도상국 시절 국가 차원에서 엘리트 체육·예술인을 양성하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체제 경쟁이 치열하던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한국이 북한에 패하자 이듬해 도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993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병역특례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관련 내용이 병역법으로 흡수돼 제도는 유지됐다.

처음에는 예술요원 편입 대상이 '국제 규모 음악 경연대회 2회 이상 우승 또는 준우승', 체육요원은 '올림픽·세계선수권·유니버시아드·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3위 이상, 한국체대 졸업성적 상위 10% 이내'로 폭이 넓은 편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이 1974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로 입상해 첫 예술 분야 병역 특례를 받았고, 체육 분야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첫 수혜를 입었다.

이후 엘리트 예술·체육인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입상자가 대거 나오자 예술요원 편입을 인정하는 대회를 축소하는 추세로 제도 정비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현재는 예술 분야의 경우 35개(국제 음악 경연대회 25개. 국제 무용 경연대회 5개, 국내 예술경연대회 5개) 대회 95개 부문, 체육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에게만 병역 특례가 주어진다.

병무청 통계를 종합하면 이 제도가 시행된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체육요원 편입자는 약 1천여명이다. 예술요원도 해마다 20∼30명 정도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병역 특례를 받고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체육·예술인은 축구선수 손흥민(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선수 류현진(2008년 베이징 올림픽),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 피아니스트 조성진(2009년 일본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임윤찬(2019년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 등이 있다.

전승 우승 주인공들 (항저우=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중국 저장성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제우스' 최우제, '카나비' 서진혁, '쵸비' 정지훈, '페이커' 이상혁, '룰러' 박재혁, '케리아' 류민석이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3.9.29

대만 등 일부 국가, 병역 특례에 입상 기준…대체·연기 복무도 있어

징병제 국가에서 건강상 이유로 군에 복무할 수 없거나 일정한 자격이 있는 대상자에게 면제 또는 대체 복무를 허용하는 사례는 보편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예술·체육인이 특정한 성과를 냈을 때 병역 특례를 허용하는 내용이 법에 명시된 국가는 드물다. 스포츠가 아닌 예술 분야는 더욱 그렇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대만과 이란은 우리나라 병역 특례 방식과 비슷한 편이다.

대만은 '국가대표 체육대표팀의 보충역 복무 방법' 법규에서 특정 종목 국가대표 선수에게 보충역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속하지 않는 선수는 올림픽 8위, 아시안게임 6위, 유니버시아드 3위에 들 경우 별도로 보충역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이란은 올림픽 3위 이상의 성적, 아시안게임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2위 이내의 성적을 거둔 운동선수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시된 규정이 없이 병역 특례를 상황에 따라 주는 국가들도 있다.

러시아는 군 합창단인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에서 일부 음악인이 대체 복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체육부대를 운영해 운동선수들이 복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집트는 자국의 축구 스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에게 총리 직권으로 병역을 면제해줬다.

싱가포르는 예체능 병역특례 제도가 없지만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자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수영선수 조셉 스쿨링에게 입대를 연기해준 사례가 있다.

유럽의 징병제 국가들은 대부분 군 복무에 대한 거부감이 한국보다 훨씬 약해 '포상' 개념의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를 찾기 쉽지 않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예체능 선수와 무관하게 징병 대상자가 정부에 일정 금액을 내면 군대를 면제받는 개념의 병역면제 제도가 있다.

RMㆍ제이홉과 만난 BTS 진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진이 12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전역하며 제이홉(가운데), RM(오른쪽)과 인사하고 있다. 2024.6.12 andphotodo@yna.co.kr

끊이지 않는 공정성 시비…정치권도 존치 여부 오락가락

이처럼 독특한 우리나라의 예체능 병역 특례 제도는 세월이 흐르며 존치 여부를 다툴 정도로 논쟁적 주제가 됐다.

과거와 달리 국위선양과 엘리트 예체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변화했고, 2002년 한일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 선수 등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특례 대상이 즉흥적으로 변한 점도 일반 현역병과의 공정성 시비에 불을 붙였다.

병역 특례 찬성론은 병역 혜택이 예체능인에게 동기를 부여해 세계적 수준의 성취를 내는 데 일조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 부가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삼는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특례자들이 대회 성과에 따른 포상금·연금 등을 받고 각종 광고 수입도 뒤따르는 데 병역 특례까지 이중으로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영내에서 기본권을 제한받는 일반 현역병들과의 차별대우도 지적한다.

최근 들어 K팝 그룹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 각국의 음원 차트를 휩쓸자 대중예술인을 병역 특례의 편입 대상에 포함하자는 의견도 제기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대중문화인이 최근 들어 사회·경제·문화·외교 등 다방면에 영향력을 끼치고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해내지만, 병역 특례는 고전·순수예술에 국한돼있기 때문이다.

정부·국회에서는 예술체육요원 편입 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과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분위기가 모두 감지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체육 분야 우수자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입상하지 못해도 입영 연령제한을 현행 30세에서 32세의 범위로 연기할 수 있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이 제출됐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동반입대하는 BTS 지민·정국 (연천=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12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지민과 정국 일행이 탄 차량이 훈련소 안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3.12.12 andphotodo@yna.co.kr

인기 아이돌 그룹 BTS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자 당시 체육 분야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한 자와 대중문화예술인도 보충역에 편입되도록 하는 개정안도 다수 올라갔으나 결국 계류하다 마찬가지로 폐기됐다.

이기식 전 병무청장은 지난 5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제도는 도입할 당시와 비교해 시대환경, 국민인식, 병역자원 상황 등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병역특례 혜택에 비판에 대해 "아직 국방부와 병무청이 우리와 이 문제는 공식으로 논의하자고 한 적이 없다. 우리로서는 완전히 폐지할 수 없고 합당한 방법을 찾겠다"고 말해 정부 부처 간에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리고 있다.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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