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은 어쩌다 초유의 탄핵 대상이 되었나
감사원이 또 지난 정부를 겨냥했다.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등을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경북 성주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늦추려고 군사 정보를 중국과 시민단체에 유출했다는 혐의다.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사드 배치를 고의적으로 늦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번 사안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 ‘사드 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노후된 미사일 교체였다. 사드는 이미 2017년 임시 배치됐고, 이후 2020년 노후 장비(미사일)를 교체해야 할 시점을 앞두고 ‘사드 추가 배치’가 아닌 ‘장비 교체’임을 중국 측에 설명하기 위해 정보를 전달했다는 게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이번 일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2020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이미 사드 장비 교체와 관련해 “외교 채널 등 다양한 경로로 중국에 양해를 구했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사안이다. 사드 반대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에 이를 알린 것도 같은 취지였다. 진작에 공개된 정부의 정치적 판단을 감사원이 4년 넘게 지난 시점에 기밀 누설로 문제 삼을 수 있는지 갸우뚱한 대목이다. 야권은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은 정치 보복 돌격대 노릇을 그만두라”고 비판했고,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감사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됐다”라고 직격했다.
짚고 넘어갈 점이 하나 더 있다. 11월19일 관련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사드 배치 지연 의혹’은 감사원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안이 아니다. 이른바 ‘알려졌다’라고 보도된 내용이다. 결국 감사원 내부자가 언론에 관련 사실을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의 감사 착수 시점은 2023년 10월, 감사 대상 기관은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 국방부, 외교부, 환경부, 경찰청, 경북 성주군 등 모두 11개 기관이다. 1년 이상의 감사 기간에 전 정권 심장부를 포함한 대규모 감사 사안임을 미루어보면 감사원이 언론에 내용을 흘리는 식으로 문제를 터뜨림으로써 논란을 자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홈페이지에 감사 착수 관련 내용을 공개하고 있으나 ‘국가안전보장 등을 해할 우려가 있는 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언론 보도 경위와 혐의 내용 등에 대해 “확인해줄 수 있는 사항이 없다”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검찰·경찰·국세청과 함께 4대 사정기관으로 불린다. 국가의 세입세출을 검사하고, 공공기관 등의 회계를 감독한다. 공무원 직무를 감찰하는 권한도 있다. 헌법과 감사원법에 따라 대통령 소속 기구로 되어 있지만,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적 지위를 지닌다. 중립적으로 행정부를 감시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감사원의 칼끝이 전 정권에 맞춰져 있다는 비판이 계속 나왔다. 이에 대해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은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지금 (정권) 초기 시기는 전 정부가 감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1년 넘게 흐른 지금도 비판은 계속된다. 참여연대는 9월3일 ‘윤석열 정부 2년 감사원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감사원이 지난 2년간 노골적인 표적·정치 감사로 현 정권을 지원하며 감사권 남용과 독립성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독립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감사 사례로 모두 8건을 적시한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방송통신위원회 정기감사(한상혁 위원장 관련 감사), KBS의 위법 부당 행위 관련 감사, MBC 방만 경영 관련 감사,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직무감찰,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 등이다. 모두 사회적 논란이 매우 컸던 사안이다.
이 밖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을 점검한 감사는 짜맞추기 감사로, 1년 8개월 동안 감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던 대통령실·관저 이전 불법행위 의혹 감사는 감사 무마 사례로 꼽혔다(참여연대의 보고서 발표 9일 후인 9월12일 감사원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 후원 업체가 관저 공사업체로 선정된 경위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사원법(제12조 1항)은 주요 감사 계획에 관한 사항을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감사,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직무감찰에서 감사원은 감사위원회 의결 없이 사무처 주도로 감사에 착수했다. 최근 사드 장비 교체 지연 의혹의 경우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피했다. ‘고발’과 달리 ‘수사 요청’은 감사위원회 의결이 필요 없다.
과거 정부 감사원은 어땠을까
과거 정부의 감사원도 정권 코드에 맞춰 감사를 실시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이명박 정부 때 정연주 KBS 사장 해임 건이다. 감사원은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 단체의 국민감사 청구로 진행한 감사에서 KBS 적자와 인사 논란 등을 이유로 정연주 사장 해임 요구를 결정했다. KBS 이사회는 곧바로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정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정연주 사장은 이후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명박 정부 감사원은 전 정부가 아닌 현직 청와대 수석을 조사하기도 했다. 당시 박병원 경제수석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 감사 과정에서 대출 청탁 의혹 등으로 감사원 조사 대상에 올랐는데,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사의를 표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KBS 이사진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졌다. 성격은 좀 달랐다. 2017년 11월 감사원은 당시 KBS 이사 10명의 업무추진비(법인카드) 부당 사용 사실을 적발하고 방송통신위원장에게 해임 등 인사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강 아무개 이사는 해임처분에 반발해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임기 만료 전 해임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는 이유였다. 이 밖에 문재인 정부 때 국정농단 사태 관련 공직자에 대한 감사가 이루어진 바 있지만 ‘정치 감사’라는 논란은 크게 일지 않았다.
지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재해 감사원장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임명됐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이 “제 귀를 의심케 한다. 달리 하실 말씀이 없느냐”라고 말할 정도였다.
10월 말 마무리된 감사원 국정감사에서는 대통령실·관저 이전 문제가 큰 쟁점이 되었지만, 감사원이 회의록 공개를 거부하면서 별다른 의혹 규명 없이 끝났다. 최재해 김사원장은 10월15일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통해 국정을 지원한다”라는 말을 또다시 되풀이했다. 참여연대는 감사원 개혁 필요성이 거듭 확인됐다는 논평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은 12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감사원장 탄핵소추 추진은 처음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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