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찾아 왔는데 얻은 것은 산업재해
아내에게 영상통화를 걸기 전 알리 씨(가명·31)는 환자복을 갈아입는다.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차고, 바지에 남은 한쪽 다리를 집어넣는다.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려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손으로 머리를 빗어 넘긴 뒤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켠다. “저의 사고 때문에 가족이 더 많은 걱정과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멘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에 남아 있는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가 여전히 괜찮고,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번역 앱을 통해 그가 말했다.
2017년 7월, 알리 씨는 내전을 피해 예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유학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온 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지금 당장은 일을 해야 하지만 언젠가 꼭 대학에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을 배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에 먼저 들어와 있던 지인의 소개로 알리 씨는 2019년 12월부터 ‘인선이엔티’라는 회사에서 계약직 노동자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인선이엔티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IS동서의 자회사로, 국내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이곳에서 그는 폐기물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 주위에 떨어진 자재나 흙을 치우는 일을 맡았다. 통역은 없었고 회사 사람들은 짧은 영어 몇 마디와 손짓으로 업무를 지시했다. 안전교육은 한국어로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 게 전부였다.
작업은 고됐다. 주간 근무를 할 때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토요일은 반나절 근무), 비정기적으로 야간 근무를 할 때는 오후 7시부터 새벽 5시30분까지 일했다. 그는 그렇게 주 6일 동안 일해서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예멘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뒤인 2023년 2월에는 가족을 만나러 예멘에 갔다. 고향에서 잠시 머무르는 동안 결혼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다.
7월11일 밤 10시20분, 알리 씨는 평소처럼 혼자 컨베이어벨트 주위를 걷고 있었다. “치워야 할 흙을 살펴보며 걷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컨베이어벨트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이미 다리가 잘린 상태였습니다. 바닥에 누운 채 두 손으로 다리를 잡고 비명을 지르며 누군가 저를 도와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굴삭기 운전자가 쓰러진 그를 발견했다. “불행하게도 저는 한 번도 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랍어로 이야기를 마친 그는 두 눈을 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알리 씨를 찾아온 회사 관계자는 ‘걱정하지 말라, 당신을 위해 가족도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4개월이 넘는 지금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인선이엔티 회사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알리 씨를 돕기 위해 임직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알리 씨의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예멘 대사관과도 소통했는데, 예멘의 복잡한 사정으로 지연되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사망사고 났던 업체에서 또다시…
하지만 알리 씨는 이제 회사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변호사는 인선이엔티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으로, 인선이엔티 대표이사를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고용주는 노동자가 추락하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는 장소에 작업 발판을 마련해야 하지만(제42조 제1항), 알리 씨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그가 평소 작업하며 오가던 길은 맨 땅 그대로였다. 또 고용주는 기계의 원동기, 벨트나 체인 등 노동자가 위험에 처할 위험이 있는 부분에 덮개나 울타리를 설치해야 하는데(제87조 제1항), 그가 사고를 당한 현장에는 안전 덮개가 설치돼 있긴 했지만 위로 올라가 있어서 컨베이어벨트가 드러나 있었다.
사고를 당한 직후 알리 씨가 ‘불행하게도 한 번도 의식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컨베이어벨트에서 스스로 몸을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규칙 제192조에 따르면 고용주는 “컨베이어 등에 근로자의 신체 일부가 말려드는 등 근로자가 위험해질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운전을 정지시킬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여야” 하지만 그가 사고를 당한 컨베이어벨트 주위에는 비상정지 장치가 없었다.
인선이엔티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3월30일 발행된 인선이엔티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7년 2월에도 인선이엔티 법인과 대표이사는 ‘노동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장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산안법 제23조 제1항과 제3항을 어긴 혐의로 기소돼 벌금 800만원을 냈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살펴보면 2023년 4월10일 인선이엔티는 ‘생산 중단’ 공시를 올리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진 작업도구를 줍던 노동자가 움직이던 로더에 깔려 사망해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으로부터 부분작업중지명령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알리 씨의 소송대리인인 방소운 변호사(법률사무소 탄하)는 “연 매출액이 2000억원에 이르는 기업에서 이미 사망 사고까지 났었다. 그런데도 컨베이어벨트의 덮개를 씌워놓는 등의 간단하고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지켜지지 않아 결국 또 다른 노동자가 한쪽 다리를 잃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일산동부경찰서 형사4팀은 공장장에게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방소운 변호사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회사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대표이사라고 말했다. 방 변호사는 “수사를 담당한 경찰은 ‘대표이사가 (권한을 공장장에게 위임했다는 내용이 적힌) 위임장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는데,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대표이사가 무슨 위임장을 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라며 대표이사가 불송치된 점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선이엔티 대표이사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사고와 관련해 언급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산안법 위반 혐의는 고용노동부에서 조사 중이다.
현재 알리 씨는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에서 머물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보상을 넘어 진정한 치유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겪은 사고는 단순히 신체적인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재정적 보상만이 아니라 제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두 다리로 8000㎞를 가로질러 왔던 그는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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