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터널’ 빠져나와 ‘나를 닮은 너’와 걷습니다”[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

박주연 기자 2024. 12. 4.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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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마약중독자 재활 돕는
하용준 순오름치유센터장
지난달 28일 점심식사를 하기에 앞서 하용준 제주순오름치유센터장이 청년 입소자들과 감사기도를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테니스 특기생이던 고교 1년 때
폭력사건에 휘말려 소년교도소행
운동·대학 포기, 범죄세계 빠져
마약·도박 전과로 ‘벌레 같은 삶’
중국서 만난 아내와 제주 정착
펜션사업 접고 치유센터 문 열어
운영비·인력 부족으로 고민
마약중독에 치료약은 없지만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일상 찾아
회복 가능한 아픈 이웃입니다

전날 내린 폭설에 이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달 28일,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전국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주거용 마약류 재활센터인 제주순오름치유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제주공항에 내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동광육거리에서 내리자 190㎝가 넘는 큰 키의 훤칠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용준 제주순오름치유센터장(48)이다. 17여년 전만 해도 마약과 도박에 찌들어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제주순오름치유센터는 하씨와 한족인 중국인 아내 한문양씨(45)가 2013년부터 운영하던 펜션을 지난 4월 치유센터로 탈바꿈한 것이다. 2013년부터 교도소 봉사를 시작한 하씨는 마약중독자들의 회복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22년부터 1년간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부해 재활 강사·재활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제가 마약과 도박에서 벗어나기까지 받은 은총을 갚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들의 치유에 경험자로서 작은 보탬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 선포 후 단속과 엄벌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최근에서야 재활·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사업에 힘을 쏟지만 갈 길이 멀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마약류 검거 사범은 2만7611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암수범죄율을 최대 30배로 본다는 연구 결과를 대입하면 무려 80여만명이 마약을 하거나 팔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용준 센터장과 입소자들이 치유센터 주변길을 담소하며 산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일대일 케어’…함께 올레길 걷고 운동

- 입소자가 모두 몇명인가요.

“정식으로 센터를 오픈하기 전에 이곳에서 지내다 좋아져서 약대에 입학한 친구가 있고, 지금은 모두 여섯 명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없는 친구 중 한 명은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 꽤 젊은 친구들뿐이네요.

“서른다섯 살 이상은 받지 않고 있어요. 마약전과가 많고 교도소에서 하던 행동을 어린 친구들에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에요. 입소자를 많이 받지도 않아요. 일대일 케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예요. 방도 모두 혼자 쓰고 있어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ㄱ씨(23)는 열네 살 때 호기심에 처음 대마를 했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 코카인과 합성대마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처음엔 기분만 좋았는데 점차 마약 의존성이 강해지면서 누군가 내 머리에 칩을 심어놓고 조종한다는 망상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께 고백하고 귀국해 마약 치료보호기관인 인천참사랑병원을 거쳐 이곳에 왔다고 했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ㄴ씨(23)는 MZ조폭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격투기 선수였다가 부상을 입은 후 나쁜 길에 들어섰다. 합성마약을 상습 투약했다. 그는 “온갖 불법행위로 월 수천만원씩 만지고, 그 돈을 또 마약 사는 데 썼다”며 “다시는 그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곳엔 인도의 국제학교에서 대마를 흡입하고 학교 내에서 판매하다 적발된 ㄷ군(16), 잠을 못 이뤄 오랜 세월 수면제(졸피뎀)를 복용하다 심각하게 중독된 작곡가 ㄹ씨(27)도 있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외부와 단절되거나 감시와 통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에 온 후 같은 처지의 입소자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단약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일과는 어떻게 짜여 있습니까.

“월~목요일 오전에는 올레길·오름·해안길 걷기 등을 하고, 금요일 오전에는 전문가와 심리상담을 해요. 평일 오후에는 휴식에 이어 주짓수 같은 운동 등 입소자가 원하는 자기계발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나가죠. 주말에는 대청소를 하고 예배 외에는 자유시간이에요.”

-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폰만 있으면, 마약을 다시 하기 쉬울 텐데요.

 “실제로 택배로 합성마약을 받다가 걸린 친구도 있어요. 다행히 뜯기 전이고 본인이 잘못을 시인해 덮고 넘어갔어요. (마약에 대한) 갈망은 당연히 찾아오는 것이기에,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내쫓기보다 같이 공감해주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필요해요.”

- 금단증상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탈출한 입소자는 없었나요.

 “큰 부잣집 아들로 필로폰 마약전과 4범인 친구는 여기서 몰래 빠져나가 마약을 하다가 결국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런 친구들은 단약을 하고 싶어도 마약공급책들이 내버려두지 않아요. 병원이나 교도소 정문 앞에 차를 댄 채 기다리고 있죠. 이용하면 평생 돈줄이 되니까요.”

- 재활센터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마약중독은 치료약이 없어요. 기억에서 오는 갈망이기 때문인데, 그 기억을 없앨 수 없잖아요. 재활 또는 치유센터에서도 어떤 치료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만 같은 병(중독)을 앓고 있는 친구들이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 의지하는 거죠. 또 좋은 말씀과 신체 운동 등으로 건강한 가치와 즐거움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요.”

- 제주순오름센터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늘 제주의 오름을 다니면서 새 삶을 얻은 데 대해 감사했어요. 이곳 치유센터에 온 친구들도 저처럼 오름을 걸을 때 같은 마음을 느끼며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순수한 신의 마음을 제가 순오름이라고 지은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순오름이 제주방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십시일반 모아서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뜻이라더군요(웃음).”

11월28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순오름치유센터에서 하용준 센터장이 마약 중독과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 센터장은 그 자신이 심각한 마약중독자였다. 울산 출신인 그는 초중고 8년을 테니스 특기생으로 지냈다. 고1 때 전국대회 3위로 대학 진학을 확정할 만큼 유망주였다. 하지만 허구한 날 허벅지에 피가 엉겨붙을 정도의 가혹한 체벌을 견디지 못하고 운동부 선배와 싸우다 상대에게 큰 부상을 입혔다. 이 일로 김천소년교도소에 입소하면서 인생이 틀어졌다. 8개월 뒤 출소해 일진 선배들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기도로 일했다. 운동도,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 서울 폭력배들과 어울렸다.

- 마약은 언제 처음 손을 댔습니까.

“고2 열일곱 살 때요. 선배 따라 부산에 갔다가 해보겠냐고 하길래 주저 없이 필로폰 0.03g을 주사기로 맞았어요. 이후 10대와 20대, 30대를 마약과 유흥, 도박에 빠져 살았어요. 약을 위해 살았고, 살기 위해 약을 했어요.”

- 약 살 돈은 어떻게 구했나요.

“20대 초반엔 가출한 여자애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유흥업소에서 일을 시켜 돈을 갈취했어요. 이후엔 도박장을 운영하고 서울 강남에 텐프로를 비롯한 룸살롱을 몇개씩 운영했죠. 여종업원과 손님들에게도 마약을 공급했고요. 그렇게 번 돈으로 여자들과 마약파티를 하며 하루 수천만원씩 탕진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세월도 오래가진 못했어요. 꼬리가 잡혀 검거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강남 바닥에 뽕쟁이로 소문이 났거든요. 가게도 수시로 망했고요(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마약 혐의로 6차례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도박 관련으로도 여러 차례 처벌받았다).”

- 그래서 중국으로 건너간 건가요.

“약을 끊어보려 했지만 한 달 이상 버티지 못했어요. 그래서 중독자에게 약을 구해주고 심부름값으로 0.1g씩 얻어먹기도 하고, 도박장을 기웃거리며 선후배들에게 구걸하며 비루한 삶을 살았어요. 당연히 후배들에게도 멸시를 당했죠. 조폭이나 양아치 세계에서도 마약중독자는 벌레 취급하거든요. 결국 부모님이 겨우 만들어주신 돈을 갖고 2006년 서른 살에 중국으로 건너갔어요.”

- 중국에선 뭘 했습니까.

“한국에서 룸살롱을 운영할 때 밑에 데리고 있던 조선족 친구가 상하이에서 큰 규모의 술집을 운영했어요. 거기에 투자하고 사장 놀이를 했죠. 약을 끊겠다는 결심도 했지만, 순도가 좋은 일명 북한 술(북한 마약)을 보는 순간 의지가 무너지면서 몸과 정신이 빠른 속도로 썩어갔어요. 약을 사느라 돈을 빌려쓰다가 못 갚아서 살해 위협도 당했어요. 우울감에 자살 시도를 하다 실패하기도 했고요.”

- 중국에서 만난 아내와 종교의 힘으로 단약에 성공했다고요.

“2007년 10월24일 제 생일이었는데, 조선족 깡패 중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베이징에서 가수활동을 하는 자기 여자친구가 상하이로 공연을 온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했어요. 그날 아내를 만났죠. 아내도 공연 온 가수였는데, 사흘간 따로 만나 함께 지냈어요. 마지막 날 아내는 자기 수중에 있던 큰돈을 모두 제게 주며 한국행 비행기를 타라고 했어요. 하지만 여권은 돈을 빌려준 조선족 깡패들에게 이미 빼앗긴 상태였어요. 아내는 같이 베이징으로 가겠냐고 묻더군요. 여권이 없어 완행열차로 이틀 하고도 20시간을 달려 베이징에 도착했어요.”

- 아내의 가족이 두 사람의 결합을 허락하던가요.
 
“반대가 엄청났죠. 그래도 아내는 제 손을 놓지 않았어요.”
 
치유센터 말 꺼내자 아내도 흔쾌히 동의
 
- 10년을 단약해도 TV에서 주사기만 비쳐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던데, 어떻게 17년간 마약을 끊었나요.
 
“쉽지 않았어요. 초기에는 금단증상으로 툭 하면 폭력적으로 변했어요. 아내를 다치게 하고 주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어요. 또 열이 나면 39도, 40도까지 올라갔어요. 그런 힘겨운 시간을 지나 몸이 조금씩 회복돼갈 때쯤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고 해요. 우리는 한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인천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저는 대기하던 경찰들에게 체포됐어요.”
 
- 왜요.
 
“한국을 떠나기 전의 도박장 운영과 사기도박 혐의 때문이에요.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았고, 한 달 후 출소했어요. 그동안 아내는 목사이신 형님 집에서 지냈고요. 2008년 2월, 우리는 수중에 단돈 8만원을 지닌 채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 왜 제주도였습니까.
 
“서울에 있으면 다시 마약과 도박을 할 게 뻔하니까요. 과거 알던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고 제주도에 1년에 70만원 세를 받는 단칸방을 얻었어요. 거기서도 불현듯 솟구치는 갈망과 폭력성으로 아내를 힘들게 했어요. 다행히 당시만 해도 상선(마약공급책)이 있어야 약을 구하던 시절인데 상선도 없었고 서울 갈 돈도 없었어요. 게다가 제주도 이주 몇개월 후 벌금기소중지가 내려지면서 섬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11월28일 제주순오름치유센터에서 하용준 센터장이 마약 중단을 위해 들어온 입소자들과 산책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어떻게 먹고살았습니까.
 
“아이 우유값과 기저귀값을 벌어야 했기에 세차장 일용직을 구해 일했어요. 하지만 툭 하면 찾아오는 갈망과 과거의 생각들이 저를 미치게 했죠. 그런 어느 일요일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갔어요. 그곳에서 한 젊은 목사님을 만났고, 기적 같은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무일푼이나 다름없이 제주 삶을 시작한 부부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소망하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서귀포시가 서귀포항 새연교 개통 기념 이벤트로 이 부부의 결혼식을 준비했고, ‘한·중 결혼’ 언론보도가 중국에까지 알려지면서 베이징시장이 축전도 보내왔다. 교회 주선으로 직업도 얻었다. 청소년기 그의 특장이던 테니스를 지역 아동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때마침 중국인들의 제주도 투자이민 열풍이 불면서 일을 도와주며 목돈도 벌었다. 그 돈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2013년부터 펜션을 운영했다.
 
- 펜션사업이 꽤 잘됐다던데, 이곳을 마약치유센터로 바꾸는 것에 아내의 반대는 없었습니까.
 
“자기, 이제 해도 돼. 이렇게 딱 한마디 했어요(웃음).”
 
- 왜 마약치유센터를 설립할 생각을 했습니까.
 
“2013년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졸업하면서 교도소 봉사를 처음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마약중독자들의 회복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가 2022년 마약에 중독돼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재활센터 모습을 담은 TV 프로그램을 봤어요. 그 길로 방송에 나온 경기도다르크를 찾아갔죠. 거실에는 중독자의 부모님들이, 안쪽 방에는 중독자 20여명이 모여 있었어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제 과거의 일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회복을 도우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어요.”
 
- 의욕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텐데요.
 
“이후 마약퇴치운동본부를 찾아갔고, 1년간 매주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부하면서 재활 강사 및 재활 상담사 수료를 받았어요. 올 5월에는 호주, 스페인, 몽골 등 전 세계 600여곳에 있는 중증중독치유공동체인 베텔공동체 창립자인매켄지 선교사님과 분당 만남교회 김병삼 담임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제주순오름치유센터를 방문하셨어요. 이후 매켄지 선교사님은 카톡으로 수시로 제게 센터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노하우를 전해주고 계세요.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는 데 필요할 것 같아 올해 저는 부산디지털대 청소년심리학과에도 입학했어요.”
 
전두환씨 손자와도 소통…생활고 시달려
 
미국과 일본에는 마약중독자들의 회복을 돕는 치료·재활 인프라가 체계적으로 잘되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 치료보호기관은 전국에 있지만, 치료 실적의 86.4%는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 단 두 곳에 쏠려 있다. 재활시설은 제주순오름치유센터가 거의 유일하다. 이전까지 국내 최대 마약류 중독자 주거형 재활시설인 경기도다르크마저 불미스러운 일로 얼마 전 폐업했기 때문이다. 다만 소규모인 김해다르크는 리본하우스로 이름을 바꿔 운영 중이다. 모두 정부·지자체 예산과 관리를 받지 않는 순수 민간 시설이다. 그러다보니 한계도 뚜렷하다.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과 함께 비용과 인력 문제에 부딪힌다.

11월28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제주순오름치유센터에서 하용준 센터장이 마약 중독과 치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 경기도다르크가 문을 닫은 원인을 보면 시설 운영부터 중독자 관리까지 시설장 한 명이 맡으면서 업무 과부하에 걸리고, 시설 내 악습이나 부패가 생기는 것을 막을 관리·감독도 부재했다고 해요.
 
“여기도 시설 운영과 중독자 관리가 저한테 쏠려 있어요. 다만 마약중독자의 심리 분석과 재활 및 치료의 권위자이신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님을 비롯해 마약·알코올 중독 상담 전문가 네 분이 이사진으로 구성돼 있어요. 이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오셔서 입소자들을 면담하세요. 최근에는 제주 연강참병원과 협약도 맺었고요. 하지만 인력과 재정 문제는 숙제예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리조트에서 일하던 아내가 여성 중독자들의 입소를 앞두고 센터 일을 같이하기로 했지만, 저를 돕던 손은석 매니저가 로스쿨 입시를 위해 내년 봄에 여기를 떠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에요.”
 
- 운영비는 어떻게 조달합니까.
 
“입소자들에게 매달 입소비를 받고 있어요. 하지만 운영비로는 많이 부족하죠. 그렇다고 반찬값을 아끼고 싶지는 않아요.”
 
- 전두환씨의 손자인 전우원씨(그는 최근 교회 간증에서 1년 반 동안 마약을 끊었다고 말했다)도 이곳에 다녀갔나요.
 
“오지는 못하고, 전화통화는 여러 차례 했어요. 전우원씨는 여기에 들어올 입소비는커녕 비행기값조차 없을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요. 교회에 간증을 다니는데, 여전히 갈망을 느끼는 자기가 그래도 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해요.”
 
- 정부가 최근 데이케어 재활센터 ‘함께한걸음센터’를 전국 17곳에 열었는데,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까.
 
“제주도에도 생겼지만, 마약에 대해 전문성이 하나도 없는 세 분을 앉혀놓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최소한 마약중독자 상담 자격증이라도 갖춘 직원들을 고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마약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배우 유아인씨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정상의 배우로서 받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컸을 것으로 짐작해요. 마약은 그 종류에 따라 목적이 조금씩 달라요. 유아인씨의 경우에는 보도를 보면 수면제를 불법 처방받고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잖아요. 얼마나 잠을 못 이뤘으면 그랬을까 생각해요. 치유가 필요한 환자인 거죠. 그러니 너무 심한 악플은 자제해주면 좋겠어요.”
 
그에게 어떤 바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30분 안에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게 현실이고 이는 국가의 책임도 있다”며 “밀수나 판매자에 대해선 엄히 처벌하더라도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정부도, 시민들도 범죄자라기보다 치료받고 회복할 수 있는 아픈 우리 이웃으로 바라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박주연 논설위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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