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쌤’이 떠난다…정부의 ‘외면’ 때문에
가야금 전공 강사의 수업에
교사·학생 모두 “완전 만족”
내년도 예술강사 예산 80억원
전년 574억원에서 86% 삭감
아이들의 배울 기회 줄어들고
예술인 생계보장과도 멀어져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3층 음악실에서 2학년 7반 학생 16명이 민요 ‘옹헤야’에 맞춰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옹헤야 어절씨구 옹헤야 저절씨구!” 예술강사 박수현씨(36)가 노래를 부르며 시범을 보이자 학생들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가야금 12줄을 튕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윤정욱군(17)은 신이 난 듯 ‘옹헤야’ 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가야금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아리랑’ ‘너영나영’ ‘옹헤야’를 연달아 연주했다. 가야금을 처음 접한 이들이 열네 차례 수업만 받고서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박씨와 음악교사 이정희씨(53)도 뿌듯해하며 감회에 젖은 얼굴이었다. 이씨는 가야금 전공자인 박씨와 함께 수업해 가능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의 가야금 수업이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년도 사업예산이 대폭 삭감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교육 활성화와 예술인 생계 보장을 위해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정부는 내년도 사업 예산으로 약 80억원을 책정했다. 2023년(574억원)에 비해 86% 줄어든 수준이다. 정부는 학교 관련 예산을 지방교육재정으로 분담하라는 입장이지만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늘리지 않는 이상 사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저임금으로 부업을 해야 먹고사는 예술강사의 소득이 월평균 70만원대에서 50만원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박씨도 2011년부터 여러 학교에서 가야금 수업을 해왔지만 예산이 줄면서 지난 몇년간 수업 시수가 줄었다고 했다. ‘이제는 못 버티겠다’며 출강을 포기하는 강사들도 있다. 박씨는 “한 학기 200시수 배정받던 분 중에 절반으로 깎인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미래세대가 예술, 특히 국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중고등학교에 국악 수업이 많지 않은데 예술강사와 만날 기회마저 줄면 아예 국악을 모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박씨는 “학생들이 ‘아리랑’ 가사를 몰라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벌이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배울 기회도 없어지는 거라 더 심각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질 높은 예술교육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들도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크게 만족한다. 음악교사 한 명이 모든 악기를 전공할 수 없고, 배워서 가르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문강사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예술강사 수업이 줄면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예술수업이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고 말했다. 김가현양(17)은 “미디어에서만 보던 가야금을 실제로 배우니까 로망이 실현된 느낌이었다”며 “예술교육은 학교에서 즐기는 유일한 일탈 같고, 악기를 만지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말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날 수업을 마친 박씨는 2학년 7반에 감사 인사를 겸한 소망을 전했다.
“얘들아, 한 학기 동안 같이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 다음해에도 선생님이 꼭 올게!”
글·사진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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