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 좌초 여·야·의·정…野 “‘크리스마스 선물’ 우리가 드리겠다”
입법권력 민주당, ‘반쪽’ 협의체 좌초에 곧바로 ‘보건의료특위’ 출범
의료계 “2025년 의대 정원 조정해야” vs 대통령실 “강성 주장에 매몰”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여당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의·정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도출하겠다며 만든 여·야·의·정 협의체가 사실상 파행됐다. 의료계 핵심단체는 물론 야당도 불참한 '반쪽' 협의체가 출범 20일 만에 재개 기약도 없이 중단됐다. 정치권에선 정부와 여당이 300일가량 지속된 의·정 갈등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이제 공은 야당으로 넘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3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1일 활동을 중단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두고 여야는 '네 탓' 공방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당분간 회의를 중단, '휴지기'를 갖기로 한 데 대해 "한심한 결말"이라고 질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수수방관하던 민주당의 느닷없는 비난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태"라며 맞섰다.
민주당은 의·정 갈등 해결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모습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저는) 민주당의 의료대란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속적으로 의료계 단체를 만나왔고 지금도 만나고 있다"면서 "대화를 복원하고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다시 점검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 여·야·의·정 협의체를 좀 더 유연하게 해서 논의 조건이 달성된 상태로 해서 복원하는 방법도 하나 있을 것 같고, 저희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국회 차원의 공론화 기구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앞서 민주당은 여·야·의·정 협의체가 중단된 다음 날인 전날(2일) 곧바로 '보건의료특위'를 출범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보건의료특위는 의사 출신인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부회장이 위원장을, 박 의원과 이언주 최고위원이 고문을 맡는다.
보건의료특위는 향후 정기 국회 정책 토론회(매월 1회), 분과별 주요 정책토론회(매주 1회)를 통해, 민주당의 보건의료 정책대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는 앞서 민주당이 지난 8월 출범시킨 '의료대란대책특위'와는 별개로 운영된다.
강 위원장은 출범식에서 "윤석열 정부가 초래한 의료붕괴의 위기를 극복하고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보건의료 주체 모두가 수용 가능하고 무리 없이 정착 가능한 혁신적이고 바람직한 보건의료체계의 새판을 짜겠다"고 했다.
협의체·특위 늘어나는데…'2025년 의대 정원' 두고 의·정 평행선
하지만 어떤 형태의 소통 창구든 의·정 양측 양보 없이는 갈등의 평행선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네 차례 회의 동안 '2025년도 입시의 의대 정원 수정안'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2025년도 입시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가운데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정원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내년도 증원 조정은 불가능하지만 의료계가 과학적 대안을 제시할 경우 2026학년도 정원은 재논의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협의체에 의료계 대표로 참여했던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지난 1일 "더 이상의 협의가 의미가 없고, 정부와 여당이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협의체 참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정부도 답답함을 호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은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자꾸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문제가 걸림돌이 되다 보니 논의 진전이 어려워 쿨링타임(냉각기)을 가져보기로 한 것"이라며 "언제든 테이블에 앉아 재개할 수 있다"면서 협의체를 중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의료계가 강성 주장에만 너무 매몰되지 말고 이번에는 변화해서 하나의 의견을 모으는 거버넌스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장 수석은 이번 협의체를 통해 의·정 간 '접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계속 의료계와 대화를 열심히 시도하고 있고, 의료계 내에 합리적 의견을 가진 분들이 많다"면서 "서로 입장이 달랐지만, 총론에서는 공감대를 이루거나 서로 이해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와 여당이 1년가량 이어진 의료대란 사태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우려는 고착화된 모습이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와 여당이 허송세월하는 사이 의료 현장의 어려움은 가속화됐고, 응급 환자들의 응급실 뺑뺑이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며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플 때 진료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는 응답이 80%에 육박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진 위의장은 여당을 겨냥해 "가장 시급한 민생 과제인 의료대란 문제를 풀겠다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4차례 회의 중 단 한 번만 참석했다"면서 "한 대표가 약속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크리스마스 악몽이 될 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계를 향해서도 "의료대란 문제는 누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의료계도 입시 일정이 이미 진행된 만큼 수용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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