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도 없는 '주식회사 스포츠서울'… "끝까지 싸울 것"
2000년 입사 후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 ‘정준영 불법촬영’ 등 특종
서울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도보로 13분 거리의 한 아파트 상가건물. 주위에 주택과 학교밖에 없는 이곳에 놀랍게도 스포츠서울의 새로운 사업장이 있다. 스포츠서울이 7월 ‘주식회사 스포츠서울’에서 핵심 사업인 신문 사업 부문을 분할, ‘스포츠서울신문 주식회사’를 신설하며 기존 법인의 주소지를 이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 건물엔 학원과 ‘매매(임대) 문의’ 현수막이 나붙은 공실만 있을 뿐, 사무실은 없다. 회사가 사실상 기존 법인을 운영할 생각이 없어서다. 실제 스포츠서울은 12월1일부터 내년 3월31일까지 기존 법인의 휴업을 신고했다. 폐업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다.
그런데 사무실도 제대로 없는 이 기존 법인에 1명의 기자가 남아있다. 바로 박효실 스포츠서울 기자다. 2000년 입사해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 ‘정준영 불법촬영’ 등 특종을 보도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신설법인으로의 전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1월 중순부터 제호만 남은 ‘굿모닝서울’을 집에서 홀로 제작했다. 현재는 회사가 휴업하며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왜 신설법인으로의 전적을 거부했을까.
“회사가 신설법인을 만든 건 매각을 위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기존에 저희가 만든 임금·단체협약을 그대로 승계하는 형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11월 첫째 주인가, 갑자기 사직원을 내고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신설법인으로 넘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계약서 내용이 너무 이상했어요. 기본급도 최저시급이 돼 버리고, 직급도 없어지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다, 안 가기로 결정한 거죠. 서명을 하고 신설법인으로 넘어가서 싸우기엔 너무 싸움이 복잡해질 것 같았어요.”
스포츠서울은 11월3일 별도의 노사협의회나 경영설명회 없이 법인 전적 관련 사항을 직원들에게 일방 통보하며 기존과 비교해 현저히 불리한 근로계약서 작성을 종용했다. 근로계약서엔 호봉을 바탕으로 책정한 기본급을 월 170여만원까지 삭감하고 대신 ‘직무수행수당’을 신설해 개인별 차등 적용하는 등 급여체계를 임의로 변경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직급 승진을 폐지하는 등 사규도 일방 변경됐다.
노동조합은 반발했다. ‘기존 법인과의 근로계약으로부터 발생한 모든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을 신설법인이 포괄 승계한다’는 문구를 추가해 다시금 전적동의서와 사직원을 만들길 촉구했다. 직원 14명도 이에 동의하며 연명 서명을 했지만 회사는 단칼에 요구를 거부했다. 오히려 전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쌍문동으로 출근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텅 빈 상가 속 ‘굿모닝서울’… 오늘도 나홀로 출근합니다
“다음 날 사람들이 다 불안해해서 이건 개인적 판단이니까 일단 신설법인에 가서 싸우라고 했어요. 저는 다행히 애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워질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어쨌든 누구 한 명쯤은 잘못한 거라고 말을 해야 될 것 같았고요. 반면 다른 후배들은 애도 있고 외벌이인 경우도 많아서 무모한 선택을 내리기 어려웠어요. 사실 아무도 가고 싶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서명하라고 내민 내용이 너무 이상해서 다들 화가 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조직원들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전적을 진행하는 회사가 너무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와 구성원 간 갈등은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 스포츠서울은 2004년 코스닥 상장과 함께 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됐고, 십수 년에 걸쳐 임원들의 배임·횡령으로 주식 거래정지 등 비정상적인 일이 반복돼왔다. 구성원들은 2020년 5월 스포츠서울을 인수한 김상혁 서울STV 회장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가 선임한 자격 없는 임원들은 인사를 좌지우지했고 수시로 편집권에 간섭하며 오히려 기자들을 더 괴롭혔다. “기자라는 직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가령 오전 8시부터 근무면 왜 8시에 기사가 안 올라오느냐, 왜 현장에 가서 일하느냐 이런 식이에요. 야구 경기를 보고 밤 11시에 기사를 쓰면 왜 야근하냐고 해요. 야근수당 1만3000원 주기 싫어서.”
김상혁 회장 부임 이후엔 정리해고도 두 차례 진행됐다. 인수 1년도 안 돼 정리해고를 강행하려다 실패하더니 올해 9월 또 11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해고 대상자엔 매번 노조 간부와 편집국장이 포함됐고, 이 과정에서 취재기자는 13명으로 줄어들었다. 임금도 자주 체불됐다. 급여 175%가 매번 밀리는가 하면 정리해고 한 기자들의 퇴직금도 2달 만에 지급됐다. 출장비와 지난해 연말정산은 아직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상식 밖의 행보에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투쟁 동력도 예전만 못하다. “스포츠서울이 스포츠·연예 전문지로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고, 내년이면 40주년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 신문의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회사를 그저 매각 대상으로만 보고 망가뜨리는 사실이 슬퍼요. 고급 식재료를 사놓고 냉장고에서 썩히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박 기자 역시 청춘을 바친 회사가 자신을 내친다는 생각에 때론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싸울 생각이다. 회사가 폐업을 하면 해직자들과 함께 법적 다툼도 벌일 예정이다. “사실 하루도 다니고 싶지 않은데, 지금 이 상황은 너무 불명예스럽잖아요. 2021년 해고됐을 때도 복직을 해서 회사를 관두는 한이 있어도 이렇게 해고당하진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순간 목을 내놓은 상태로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거든요.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또 나쁜 전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저는 계속 싸울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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