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HBM 모두 中에 못 판다… 긴장감 커지는 K반도체 [美, 반도체 對中 제재 강화]

이진경 2024. 12. 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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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상무부 추가 규제… 31일부터 적용
제조 장비 24종·SW 도구 3종도 포함
日·네덜란드 등 33개국은 대상 미적용
삼성·하이닉스 등 對中 수출에 악영향
전 세계 HBM 시장 파이 축소 우려도
정부 4일 업계와 간담회·상담 등 지원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추가 통제 조치로 중국 기업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한국 반도체 업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대중 수출 물량 등을 고려했을 때 피해가 제한적일 수 있으나 부정적인 영향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2일(현지시간) 관보를 통해 미국 정부가 중국이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핵심 부품인 HBM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등 다른 나라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리핑에서 “미국은 우리의 적들이 우리의 기술을 우리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중대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HBM 수출통제는 31일부터 적용된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통제에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더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이 사용됐다면 수출통제를 준수해야 한다는 규칙이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원천 기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이번 수출통제를 적용받게 된다. 상무부는 HBM의 성능 단위인 ‘메모리 대역폭 밀도’가 평방밀리미터당 초당 2기가바이트(GB)보다 높은 제품을 통제하기로 했다.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이 해당한다.

상무부는 중국이 첨단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SME)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에 대한 신규 수출통제도 발표했다.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수출통제 제도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 기업이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때 상무부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주요 반도체 장비 수출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총 33개 국가가 이에 해당하는데 한국은 빠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세 번째)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 출범 대비 반도체 업계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상무부는 특히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개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들 기업에 첨단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수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중국에 있지만 일부는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 있는데 한국에서는 ‘ACM리서치코리아’와 ‘엠피리언코리아’ 2개 기업이 지정됐다.

ACM리서치코리아는 1998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설립돼 2017년 나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장비 전문업체 ACM리서치의 한국 사무소다. 엠피리언코리아는 중국 소프트웨어 기업 엠피리언 테크놀로지가 본사다.

정부와 기업은 미 상무부가 발표한 15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조치로 이번 조치가 HBM을 생산하는 우리 기업에 다소 영향이 있을 수 있으나, 향후 미국 규정이 허용하는 수출방식으로 전환해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전 세계 HBM 시장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해 기준 각각 53%, 38%, 9%를 차지하며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중국의 HBM 기술 수준은 아직 초기 수준으로, 삼성전자의 2세대 HBM2 혹은 3세대 HBM2E를 일부 수입해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하이닉스는 대부분 HBM을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TSMC를 거쳐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연합뉴스
앞서 외신은 삼성전자의 HBM 대중국 수출 비중이 30%라고 보도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낮은 수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정부의 HBM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해 면밀히 검토 중이며, 관련 기관과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이 중국에 파는 물량이 얼마 되지 않고, 저가형 제품이기 때문에 매출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삼성 입장에서 메인 이슈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HBM2·HBM2E의 중국 수출 제한이 아니라 엔비디아 등 HBM3E와 HBM4 공급처 확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업계에선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규제로 전 세계 HBM 시장 파이 자체가 축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세계 반도체의 절반을 소비하는 최대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우려가 클 수 있다는 해석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약 170억달러(약 23조원)로, 이 중 중국이 1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수출 규제가 중국 HBM 자립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화웨이와 CXMT 등이 HBM을 개발 중인데, 중국의 추격으로 기존 업체들의 입지가 작아질 수 있다.

정부는 4일 반도체장비업계와의 간담회를 개최해 영향을 점검할 계획이다. 또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와 무역안보관리원(KOSTI)에 ‘수출통제 상담창구’를 개설해 지원할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통제 제도 설명회와 가이드라인 배포 등을 통해 업계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며 “조속한 시일 내 미국 정부와 우리 기업 애로사항 등을 집중 협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진경 기자,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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