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평화’ 가져다줄까
“한국이 침략당한 국가(우크라이나) 편에 서야죠. 그런데 그 방식이 꼭 ‘우크라이나의 무력을 증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러시아를 멈춰 세우는’ 방식일 수도 있죠. 참전을 거부하는 러시아 난민을 한국이 대거 수용해준다든지, 협상 중재국으로 한국이 나선다든지요. 허무한 죽음을 한 명이라도 줄이면서 평화적으로 개입할 방법이 분명 있어요.”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가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또다시 한국에 ‘무기 요청서’를 내밀었다. 2024년 11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을 찾은 우크라이나 특사단이 전쟁 수행에 필요하다며 방어무기를 요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무기 요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윤석열 대통령의 ‘무기 지원’ 발언이 맞물리며 일이 커졌다. 윤 대통령은 10월24일 “종전과 같은 식의 인도주의·평화주의 관점의 지원에서 북한군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을 바꿔나간다. 무기 지원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만약에 무기 지원을 한다고 하면 방어무기부터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묵혀둔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한국의 무기 지원은 과연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다주는가.
무기에 공격용, 방어용 따로 있나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그간 한국에 요구한 무기는 ‘천궁’ 등 방공 미사일 체계다. 우크라이나 영토로 날아오는 러시아 미사일을 요격하는 용도로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기는 쓰임새에 따라 용도가 달라진다. “천궁을 방어용으로만 쓴다는 보장이 없다. 날아오는 미사일이 아니라 상대편 전투기를 요격할 수도 있다. 한국이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자 중국이 위협을 느낀 것과 같은 이치다. 무기는 방어용과 공격용을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다.” 이 활동가가 말했다.
전장 상황에 따라 요청 대상이 공격 무기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에이태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가했다. 이제까지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일체 허용하지 않다가 북한의 파병 소식에 방침을 바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집요하게 요구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사람이 밟으면 터지는 ‘대인지뢰’ 사용도 허가했다. 민간인 피해 때문에 2022년 ‘한반도 내’로 사용을 제한했던 조처를 스스로 푼 것이다.
에이태큼스에 장착한 집속탄과 대인지뢰는 대표적인 비인도무기(민간인 피해가 큰 무기)다. 대형 폭탄 안에 장착된 작은 소폭탄 수백 개가 하늘에서 쏟아져 ‘강철비’라는 별칭을 가졌다. 대인지뢰 역시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 살상한다. 국제사회가 2010년 확산탄금지협약 등으로 비인도무기 사용을 제한했지만 러-우 전쟁이 확대되며 이 같은 원칙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한국 무기, 북한군 살상에 쓰일 판
지난 3년간 무기 지원은 러-우 전쟁을 종결하긴커녕 확대하고 장기화했다. 2024년 9월까지 미국은 200조원 넘는 돈을 우크라이나에 쏟아부었다. 유럽연합(EU)은 45조원, 영국은 12조원 이상 군사 지원을 했다고 밝혔다. 나토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많은 지원을 한 폴란드는 “더 이상 줄 무기도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추가 지원 요구에 선을 긋기도 했다. 수십조원을 들이고도 전쟁의 판세는 바뀌지 않았다.
한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공급했다. 2023년 미국에 대여하는 형태로 155mm 포탄을 간접 지원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그 양이 50만 발에 이른다며 “한국이 한 번 보낸 포탄 양이 유럽 전역에서 보낸 것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다.
그 무기는 이제 북한군 머리 위로도 떨어질 판이다. 탈북민 출신 작가 조경일씨는 2024년 11월5일 ‘뉴스프리존’ 연재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윤 정부가 공격용 무기까지 보낸다면 우크라이나에서 남북의 직간접 대결이 가시화할 수 있다. 확전된다면 한국군 파병도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것이다. 남의 나라에서 다시 동족상잔이 발생할까 두렵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방안 필요”
전쟁 장기화로 희생자가 점점 늘고 있다. 1000일 넘는 전쟁으로 양쪽 군인이 17만 명, 민간인이 1만 명 넘게 숨졌다. 최근 징집을 피하려 외국으로 탈출하던 우크라이나 남성들이 경찰에 붙잡히는 모습이 보도됐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선 휴전 여론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업 갤럽은 11월19일 보도자료를 내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2%가 ‘가능한 한 빨리 종전 협상을 하기 바란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 전쟁은 사실상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 됐다. 서방이 전쟁을 끝낼 의지가 없는데 한국의 무기 지원이 정말 우크라이나 평화에 도움이 될까. 각국의 위험한 무기가 들어왔을 때 피해 보는 건 결국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전쟁에 끌려간 군인이다.” 박이랑 팔레스타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 활동가가 말했다.
전쟁 새 국면에 불청객 될까
러-우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한국의 무기 지원이 되레 패착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재선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만과의 경쟁에 더 집중하겠다’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겠단 입장이다. 재임 뒤 휴전 협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한국이 취할 입장도 불확실해졌다.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는 11월24일(현지시각) 폭스뉴스에 출연해 “지금 한국은 어떻게든 개입하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매우 명확하게 밝혔다”고 언급했다. 같은 날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도 “한국산 무기가 러시아 국민을 살해하는 데 쓰인다면 한-러 관계는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들 반대 목소리도 크다. 10월25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를 보면 우크라이나에 ‘비군사적 지원만 해야 한다’는 응답이 66%, ‘어떤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16%였다. 반면 ‘군사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13%에 그쳤다. 진보당과 자주통일평화연대 등은 11월26일 전국 각지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전쟁 개입 반대 각계 공동선언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무기 지원으로) 러시아에 대한 공동교전국이 되면 경제·안보 영역에서 심각한 후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 할 일, 여전히 많다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까닭은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문제는 ‘평화’와 ‘승리’가 같은 의미가 아니고, 때로는 교집합도 크지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를 무찌르고 승리를 거머쥔들 그것이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나서, 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온통 파괴되고 나서 이룩한 승리를 평화라고 부르면 안 된다. 한국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다. 양국이 평화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게 중재하고, 전쟁 피해자를 돕는 현지 평화단체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용석 활동가가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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