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위독한 어머니 치료비를…” 팍팍한 삶에도 사랑으로 끓었다

김도윤 2024. 12. 3. 16: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본지 김도윤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 해보니
2시간 사이에 기부자 26명, 기부금액 21만 5500원
익명 기부자 9명 ·QR코드 2명· 현금 기부 15명
“구세군 덕에 어머니 치료비 충당” 시민 마음 모아
2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만남의 광장에서 본지 김도윤 기자가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에 직접 참여해 종을 흔들고 있다. [구세군 봉사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소리 없이 나누고, 좋은 일은 익명으로 할 때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2일 오후 3시 49분, 이날 기자가 목격한 최고 기부금인 5만 원을 자선냄비에 쾌척한 익명의 시민이 남긴 말이다.

기자는 이날 오후 2시부터 2시간을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지하 1층 만남의 광장에서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에 나섰다. 2시간 26명의 시민들이 자선 냄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모인 금액은 총 21만 5500원. 앞서 같은 날 정오부터 봉사를 진행한 구세군 봉사자는 “점심시간 동안 두 명만 참여해 걱정했지만, 이후 많은 시민이 뜻을 보탰다”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 거리는 화려한 트리와 반짝이는 장식으로 치장돼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화려하진 앟아도 맑은 종소리 하나로 연말연시 사람들을 발길을 붙잡는 존재가 구세군 자선냄비다. 올해로 96년째를 맞은 2024년의 자선냄비 모금은 지난달 27일 시작했다. 기자도 구세군의 상징인 붉은 패딩 코트로 갈아입고 손에 쥔 종을 흔들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찾은 기념으로 기부…시민들의 따뜻한 사연

첫 번째 기부자는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김과현(40) 씨였다. 김 씨는 “지난주 구세군 자선냄비를 봤지만 지갑을 두고 와 기부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참여하게 됐다”며 “늘 기부하던 사람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적은 금액이라도 함께 나누는 데 동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진(43) 씨는 캐나다에서 23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위독한 할머니를 뵈러 일시귀국했다는 그는 “구세군 종소리를 들으니 어린 시절 한국에서 느꼈던 따뜻한 추억이 떠올랐다”며 3000원을 자선냄비에 넣었다. 그는 “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이야기했다.

정희자(60) 씨는 지하철에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줄 알고 당황했지만 다행히 가방에서 찾았다. 기쁜 마음에 2만 원을 기부했다고 했다. 그녀는 “딸이 아파 병원에서 곧 수술을 받는다”며 “수술이 잘 되고 건강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훈(81) 씨는 “기부는 이유를 따질 일이 아니다.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며 1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살다 보면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기부는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선화예술고등학교 김동영, 이서윤, 이유섭, 이준원, 조해인 양이 돈을 모아 6000원을 기부했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자선냄비를 향하고 있다. 김도윤 기자

한 시간이 지나자 다리가 저려왔다. 당초엔 2시간 가까이 종을 쳐야 한다는 생각에 팔목이 아플까 걱정했는데, 무릎이 더 빨리 지쳐갔다. 이 생각을 하던 무렵 학생들이 자선냄비로 다가왔다. 선화예술고등학교 2학년 학생 5명은 함께 모은 6000원을 자선냄비에 넣었다. 호른을 전공하고 있다는 김동영(18) 군은 “치즈돈까스 세트를 단품으로 바꿔도 괜찮다”며 기부를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초등학교 6학년 김모 양은 “수업 시간에 시민사회의 봉사와 기부에 대해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며 500원을 기부해 순수한 나눔의 의미를 더했다.

길게는 15분 동안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기부자가 다가오면 기자는 순간 얼굴에 반가움이 번졌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처럼 기쁘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사자는 여유롭게 말했다. “기부하려는 분들은 멀리서부터 자선냄비를 보고 지갑을 꺼내거나, 은은한 미소로 다가오세요. 딱 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이날 기부자 중에는 과거 구세군의 도움을 받아 가족의 병원비를 지원받은 사람도 있었다. 박경섭 씨는 “6년 전 어머니가 위독하셨을 때 제 월급만으로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구세군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줘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받은 만큼 작지만 자선냄비를 볼 때마다 꼭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이 구세군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있다. 김유정(54) 씨는 QR코드를 통해 정희자(60)씨는 현금으로 마음을 전했다. 김도윤기자.

마지막 기부자는 김유정(54) 씨였다. 김 씨는 “20년째 연말이면 구세군에 기부하고 있다”며 1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특히 미혼모나 가출 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문제 해결에 기부금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은 2021년 21억원, 2022년 22억7000만원, 지난해엔 21억6000만원이었다. 구세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도 시민들이 오히려 더 나누려는 마음을 보여주었다”고 전했다.

매년 자선냄비 거리 모금에는 4만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다. 이날 봉사에 함께한 김강(30) 씨는 “추운 날씨에 봉사가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무 대가 없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