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쌤 내년에도 꼭 오세요!”…모두가 바라는 ‘예술강사’ 파견 사업 중단 위기

김송이 기자 2024. 12. 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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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윤정욱군(왼쪽)이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가야금 수업을 들으며 민요 ‘옹헤야’를 연주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 3층 음악실에서 2학년7반 학생 16명이 민요 ‘옹헤야’에 맞춰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옹헤야 어절씨구 옹헤야 저절씨구!” 예술강사 박수현씨(36)가 노래를 부르며 시범을 보이자 학생들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가야금 12줄을 튕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윤정욱군(17)은 신이 난 듯 ‘옹헤야’ 소리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이번 학기 마지막 가야금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아리랑’ ‘너영나영’ ‘옹헤야’를 연달아 연주했다. 가야금을 처음 접한 이들이 열 네 차례 수업만 받고서 연주하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역시 몸이 기억하네요.” 윤군은 연주를 마친 뒤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강사 박씨와 음악교사 이정희씨(53)도 뿌듯해하며 감회에 젖은 얼굴이었다. 이씨는 가야금 전공자인 박씨와 함께 수업해 가능한 결과였다고 말했다. “비전공자인 저 혼자 가르치면 한 학기에 민요 하나 가르치기도 버겁거든요. 박 선생님이랑 협력 수업을 해보니 역시 전문 선생님은 다르다고 느꼈어요.”

예술강사 박수현씨(오른쪽)가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야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그러나 박씨의 가야금 수업이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년도 사업예산이 대폭 삭감됐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교육 활성화와 예술인 생계보장을 위해 학교에 예술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정부는 내년도 사업 예산으로 약 80억원을 제출했다. 2023년 574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86% 줄어든 수준이다. 정부는 학교 관련 예산을 지방교육재정으로 분담하라는 입장이지만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늘리지 않는 이상 사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저임금으로 부업을 해야 먹고 사는 예술강사의 소득이 월평균 70만원대에서 50만원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예산복원 촛불문화제’를 열고 “지난해 대비 올해 예술강사가 200여명 줄었다”며 “예산 삭감은 우수한 예술강사들의 이탈을 부추겨 결국 양질의 교육을 담보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씨도 2011년부터 여러 학교에서 가야금 수업을 해왔지만 예산이 줄면서 지난 몇 년간 수업 시수가 줄었다고 했다. ‘이제는 못 버티겠다’며 출강을 포기하는 강사들도 있다고 했다. “예산이 줄다가 아예 사업이 없어질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죠. 한 학기 200시수 배정받던 분 중에는 절반으로 깎인 분들도 많아요.”

미래세대가 예술, 특히 국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까 하는 걱정도 크다. 중고등학교에 국악 수업이 많지 않은데 예술강사와 만날 기회마저 줄면 아예 국악을 모르게 될까 하는 우려다. 박씨는 “학생들이 ‘아리랑’ 가사를 몰라서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벌이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배울 기회도 없어지는 거라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박지안양(왼쪽)이 지난 2일 서울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가야금 수업 중 ‘언제나 몇 번이라도’를 연습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학생들에게 질 높은 예술교육을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학교 교사들도 예술강사 지원사업에 크게 만족한다. 이씨는 “다른 음악교사들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내년에 예술강사를 모실 수 없게 된다면 올해만큼 양질의 수업을 하기가 어려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음악교사 한 명이 모든 악기를 전공할 수 없고, 배워서 가르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문 강사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예술강사 수업이 줄면 “절대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예술수업이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라고 말했다. 김가현양(17)은 “미디어에서만 보던 가야금을 실제로 배우니까 로망이 실현된 느낌이었다”며 “예술 교육은 학교에서 즐기는 유일한 일탈 같다. 악기를 만지다 보면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말했다. 김양은 깔깔거리며 가야금 줄을 튕기는 반 친구들을 가리키며 “친구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수업이 별로 없는데 지금은 다들 편안한 얼굴”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연습하던 박지안양(17)은 “처음엔 손가락이 너무 아팠는데 하다 보니 소리가 너무 좋아서 스트레스가 풀렸다”며 “공부 스트레스가 큰데 악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날 수업을 마친 박씨는 2학년7반에 감사 인사를 겸한 소망을 전했다. “얘들아! 한 학기 동안 같이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웠어. 다음 해에도 선생님이 꼭 올게!”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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