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여성 교정시설 첫 마약재활교육 시행’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본 기록들
여성 마약사범 8명 대상...“출소 후 재활센터·초기 상담 의무화” 목소리도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올해 사회면을 장식한 뉴스는 단연 '마약 범죄'다. 대학가 마약동아리 사건부터 유명 BJ(개인 인터넷방송 진행자)들의 집단 마약 투약 의혹, 한 방송인의 '필로폰 강제 투약' 주장까지 불거졌다. 지난해 약에 취해 사람을 들이받아 사망케 한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충격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이다. 재벌과 연예계, 화류계 등 특정 집단에서만 마약이 유통된다는 이야기는 이제 설득력을 잃은 모습이다. 이렇듯 끊이지 않는 마약 사건을 우리 사회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는 걸까. 시사저널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마약 문제와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어봤다(시사저널 12월10일자 「[인터뷰] "바닥 쳐 봐야 끊게 되는 마약, 그 끝은 죽음 아니면 교도소" 아이돌 출신 남태현의 고백」 기사 참조).
정부가 강조하는 '마약과의 전쟁'은 반쪽짜리 구호일 뿐인 걸까. 마약사범을 대거 잡아들인 수사 성과와 달리, 치료·재활 교육은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마약사범은 지난해 2만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작 이들을 마주할 치료·재활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과 주먹구구식 대책 등의 지적이 반복된다. 민간 마약중독재활센터는 한 곳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전국 단위로 숫자는 늘렸다. 그러나 만성적인 인력 부족 상황에 놓였다.
교정시설(교도소·구치소)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물론 차이는 있다. 마약사범이 이곳에서는 '강제적으로' 단약(斷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약 반입'과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시설 내 마약 투약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는 마약사범 밀착 재활교육을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부산교도소,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실시된 '회복이음 프로그램'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청주여자교도소에서도 시행됐다. 여성 전용 교정시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사저널은 11월12일 여성 마약사범의 이야기가 있는 청주여자교도소를 찾았다. 지난 6월 부산교도소에 이은 두 번째 교정시설 현장 방문기다(시사저널 6월28일자 「[르포-마약과의 사투] 20년 마약중독자 "이게 될까 하던 의심, 재활교육 3주 차에 사라졌다"」 기사 참조).
베트남 여성 "매일 슬퍼하는 엄마와 딸 떠올라"
1989년 설립된 청주여자교도소는 '과밀 수용' 문제로 악명 높은 곳이다. 수용 인원은 매번 정원(610명)을 웃돌았다. 국정농단 사건의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전 남편을 살해한 이후 시신을 유기한 고유정씨 등 850여명이 수감돼 있다. 수용률이 140%에 육박한 것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이름표가 추가됐다. 여성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회복이음 프로그램이 처음 시행됐다는 사실이다. 이 프로그램은 교정시설의 교육을 통해 '회복'되고, 출소 이후 사회적으로 '이음(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의 회복이음 참여자는 8명이다. 전국에서 지원을 받아 선발한 결과다. 이 중 1명은 중국 국적의 외국인 마약사범이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수용 현황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외국인 마약사범 기결수(형이 확정된 수용자)는 100여명, 이곳에 있는 전체 마약사범(140여명)의 약 71%를 차지한다. 태국·중국 등의 국적이 많다고 한다.
닉네임 '모란'은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베트남인이다. 지난 11월18일 만기 출소하기까지 그가 회복에 집중한 흔적은 역력했다. 자유를 얻기 한 달여 전, 그는 후회 가득한 글을 자신의 회복일지에 써 내려갔다. "마약을 하면서 재미있고 뭐가 잘못된 지 몰랐는데 이것이 틀린 걸 알았다."
그는 주변인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푸른하늘(강사)'님이 베트남 노래를 틀어 주셨다"면서. 가족도 떠올렸다. "마약을 하고 교도소에 온 저를 보며 매일 슬퍼하고 있는 엄마와 딸을 위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정말 열심히 다시 살 것이다. (중략)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모란이 참여한 회복이음의 특징은 '치료공동체'다. 참여자들은 평일 내·외부 강사의 교육을 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자발적으로 신청한 마약사범이 그 대상이다. 거실 내 자조집단(자조모임, NA·Narcotics Anonymous) 운영 상담, 12단계 촉진치료 방식의 회복단계별 상담, 지역 재활시설 연계 등이 큰 얼개다. 세부적으로는 영화·미술 등을 활용한 심리치료가 있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는 거실 내 자조집단, '재활 수용동'을 운영하지는 않는다. 부산교도소와는 다른 지점이다.
대신 회복이음 과정에서 NA를 진행한다. 청주여자교도소 보안청사 지하 1층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다. 지난 3개월 동안 참여자들이 보고, 듣고, 느낀 생각의 결과물이다. 20평이 채 안 돼 보이는 '배움터(회복이음 교육실)' 중앙에는 책상과 의자가 원형으로 놓여 있다. 강사 '푸른하늘'과 참여자들이 둘러앉아 소통했음을 짐작케 했다.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그림이 가득하다. 참여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그린 자신들의 얼굴, 가족, 애완견 등이다.
"노력은 다행이지만..." 인력 부족 등 현실적 문제도
올해 28세인 한국인 '진달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르바이트 시절 만난 가게 사장님이다. 그는 지난 10월15일 '피해보상 준비 및 변화를 준비하기' 제목의 프로그램을 듣고 그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꽤 긴 시간 동안 알고 있었던 나의 사장님이 생각났다. (나의) 구속으로 가게에 피해를 주고, 사장님께도 피해를 드렸었던 게 떠올라서 오늘 수업으로 해를 끼친 모든 사람의 명단을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약과 멀어지던 찰나에 이곳에 들어왔다. 일차적으로 화가 나고, (마약 투약이) 처음이 아니다 보니 생각보다 길게 받은 나의 형기에 이차적으로 화가 났다."
영화는 치료 도구로 활용된다. 마약사범의 등장 장면은 특히 그렇다. 한국인 '미리내'는 지난 10월17일 영화치료를 받은 이후 마약 문제를 깨달았다.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는 심각성이다. "마약의 길은 절대 해피엔딩이 있을 수가 없다, 투약자든 판매자든..." 열성적인 참여자라는 '하나비'는 지난 10월30일 이렇게 적었다. "(기억나는 장면은) 교도소 제일 큰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찾으면서 울부짖을 때 아이가 너무 가여웠다. 다시는 여기에 들어오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은 존재한다. 우선 회복이음은 모든 교정시설에서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설령 확대 실시된다고 해도 강사 부족, 열악한 시설 등의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마약사범이 출소한 이후는 특히 문제다. 단약의 최대 관건은 중독자들의 자발적 의지다. "이를 유지하고 회복으로 이끄는 핵심은 자조모임(NA)"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민간 영역의 NA가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우영 임상심리사(청주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의 설명이다.
"국내 마약 치료·재활 교육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다만 회복이음을 비롯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중독재활센터 등의 존재 자체는 다행이다. 마약사범들은 출소 이후 이곳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쉬운 건 민간 영역의 NA 현황이다. 서울과 부산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초기 중독 상담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단약을 유도하는 상담이 이뤄져야 한다. 출소 이후에도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연계될 수 있게 관심과 개입이 필요하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첫 회복이음은 지난 11월20일 마무리됐다. 참여자들은 이곳을 떠났거나, 또 떠날 것이다. '꽃사슴'은 출소일인 이번 크리스마스만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 매시간 틈이 날 때마다 기도로 순간의 감정과 현실을 돌보고, 꾸준히 습관처럼 (회복이음 과정 중 하나인) 1단계부터 12단계까지 반복한다." 과연 꽃사슴은 자신의 회복일지에 남긴 다짐을 사회에서도 지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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