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트레스가 반려견에게…‘정서적 감염’ 테스트, 결과는?

김지숙 기자 2024. 12. 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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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과 돈독한 교감을 나눠온 개는 냄새를 통해 사람의 질병·기분 등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람의 감정이 개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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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반려동물을 키우면 반려인과 동물이 서로 닮는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나 기분까지 비슷해질 수 있을까요? 가끔 제가 의기소침해 있으면 우리 집 강아지가 옆에 와서 차분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A. 혹시 감당하기 힘들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우울한 감정을 종종 느끼시나요. ‘스트레스’는 원시시대 인간들이 맹수를 맞닥뜨렸을 때, 긴박한 활동에 적합하도록 신체를 준비시키면서 생존을 도왔던 생리 반응이 기원이라고 합니다. 과거엔 이러한 외부적 공격이 주된 스트레스 요인이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불안한 미래와 과도한 업무, 인간관계에서의 불화 등과 같은 다양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있죠.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무력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로 흔한 만큼, 스트레스 관리와 마음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려인들의 마음 건강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려견들도 사람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먼저 인류가 개와 함께 지내온 역사부터 살펴볼까요. 개가 인류와 함께 지내온 ‘개 가축화’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1만4000~5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러시아 중부 브랸스크 지역의 ‘엘리제비치 유적지’(Eliseevichi Site)에서 1만4000년 전 개가 사람과 함께 매장된 증거가 발견된 것이 가장 오래된 증거였습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 등과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개들은 이 호르몬과 함께 배출되는 유기 화합물의 냄새를 감지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연구가 거듭되면서 최근에는 인간과 개가 함께한 역사가 구석기 시대인 3만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는 여러 증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2008년 벨기에 왕립자연과학연구소 고생물학자와 국제 연구진이 벨기에 고예트(Goyet) 동굴에서 발견된 개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구석기 시대 개의 외모는 현대의 ‘시베리안 허스키’ 종과 닮았으며 특히 무는 힘이 강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인간과 동반자였던 개들이 인간의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놀랍지 않습니다. 개는 사람으로부터 시각, 청각, 후각 그리고 언어적 신호를 읽을 수 있도록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특히 개들의 날카롭고 뛰어난 후각은 사람의 체취에서 스트레스를 감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정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개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나 개를 비롯한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체내에서 몇 가지 생리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르티솔과 에피네프린(혹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몸의 혈당을 높이면서 심장이나 뇌로 가는 혈류를 빠르게 해 외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러면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고, 혈압과 호흡수가 높아지면서 소화·면역 등 당장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능은 억압됩니다. 이때 체내에서는 호르몬과 함께 특수한 종류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분비되는데, 개들은 바로 이 물질들의 변화를 알아차림으로써 사람의 스트레스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개들의 ‘특별한 감지 능력’으로 위로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에 개들도 영향을 받아 ‘비관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는 연구가 최근 발표됐습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진은 개가 사람의 스트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실험 결과를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공개했습니다.

논문을 보면, 연구진은 실험을 두 단계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먼저 개들이 낯선 사람 11명(여성 10명, 남성 1명)의 냄새를 맡되, 각각 휴식을 취하는 상황과 스트레스 상황으로 달리해 두 개의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샘플 채취 전 참가자들은 운동이나 매콤한 음식 섭취를 제한했고, 향수·바디워시 등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단계서는 18마리 개들을 대상으로 ‘인지 편향’을 실험했습니다. 실험 벽 5곳에 먹이 위치를 만들어 한 곳은 늘 간식이 놓이도록 하고, 다른 한 곳은 반대로 늘 비어있도록 한 뒤 개들에게 위치를 학습시켰습니다. 나머지 3곳은 간식이 놓이는 빈도를 단계적으로 달리했습니다. 개들은 위치를 익힌 뒤 당연히 간식이 놓인 곳으로 바로 이동했는데요, 연구진은 이때 개들이 ‘애매한 위치’로 얼마나 이동하는가를 통해 개의 ‘심리’를 관찰하기로 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개들이 휴식을 취한 사람의 땀 냄새를 맡았을 때는 망설임 없이 애매한 간식 그릇에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받은 사람의 냄새를 맡았을 때는 이 위치의 간식 그릇에 접근하려는 의지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스트레스가 개들에게 ‘간식이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개들이 주변 사람의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등 ‘정서적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험 참여견이 사람의 체취 샘플 앞에 앉아있다. 브리스톨대 제공

흔히 반려동물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들의 기질과 성격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을 테지만 반려인의 생활 방식과 성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의 반려견은 좀 더 외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할 확률이 높고, 노부부가 키우는 반려견이라면 이들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느긋한 성격을 지닐 가능성이 큰 것처럼 말이죠.

다만 앞선 연구 결과처럼, 개와 사람의 감정 교류는 일방통행이 아닌 양방향이란 점이 중요합니다. 반려견이 매일 우리를 사랑하고 위로하듯, 우리가 반려견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하면 개들도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4-66147-1
Plos One, DOI: 10.1371/journal.pone.0274143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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