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체육도 “Only English”… 영어공포에 입 닫아버린 4세
<中> 말문 못텄는데‘No Korean’
길거리서 외국인 보면 ‘경기’도
“영특해서 보냈는데 오히려 독”
하루 네시간 이상 영어집중교육
낮잠시간·체험활동·방학 없어
야외 활동도 하루 15분에 불과
전문가 “주입식… 정서 악영향”

올해 5살인 A 씨의 딸은 태어났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예민하고 낯가리는 성격이었다. 옹알이하던 때부터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바로 알아듣지 않으면 쉽게 우는 등 자신의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A 씨는 아이가 낯가림을 극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3세 때 어린이집을 보냈고, 4세 때인 지난해에는 유명 영어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예민한 만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자신의 주관이 또렷해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A 씨는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영특하다고, 이렇게 두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으면 내가 아이의 똑똑한 재능을 놓치는 것 아닐까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어유치원은 독이 됐다. 하루에 1시간씩 진행되는 원어민 수업과 학원의 ‘Only English’ 수업은 아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됐다. 아이가 질문하면 유치원 선생님은 “영어로 다시 한 번 말해볼까”라고 하며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영어로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질문을 하고 답변을 요구할 때마다 아이의 답답함이 쌓였다. 몸집이 크고 목소리도 낮은 낯선 외모의 남자 원어민 교사도 예민한 아이에게는 공포가 됐다. 아이는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입을 닫았다. 유치원에서는 말을 아예 하지 않는 ‘선택적 함구증’에 걸린 것이다. A 씨는 유치원에서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원래 아이들이 잠깐 그런다” “몇 개월만 달래서 보내면 금방 적응하고 좋아한다”는 주변의 말에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믿고 매일 아이를 다그쳤다. 하지만 지난 2월 아이가 길을 걷다 외국인이 영어를 하자 경기를 일으키고 우는 모습까지 보이자 그제야 심각성을 느꼈다.
A 씨는 올해 3월 아이를 일반유치원으로 옮겼다. 아이는 우울증 진단을 받아 항불안제도 복용 중이다. 주 2회 언어치료를 받고 일반유치원으로 옮긴 지 9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A 씨는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언어능력이 발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시간을 돌리고 싶다. 아이에게 욕심을 부렸던 게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낮잠시간도 없이 영어집중수업 = 3일 교육계에 따르면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아침 9시부터 오후 2~3시까지 하루 네 시간 이상의 ‘영어집중교육’을 받는다. 3~5세 대부분은 아직 모국어로 말하는 것조차 서툴지만 영어유치원은 “한글을 몰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광고하고 있다. 오히려 일부 영어유치원은 “아이가 한글을 모를 때 영어를 시작해야 영어를 불편하거나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장려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E 영어유치원의 시간표를 보면, 이곳 3~4세 반은 하루 30분~1시간씩 원어민 수업을 하고 그 외에도 모든 미술·체육 등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낮잠시간은 없다. 아이가 졸려 하면 ‘다른 아이들과 진도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40분 정도 재운 후 깨운다’는 게 이곳의 방침이다. 3~4세 반의 유일한 야외활동은 15분간 이뤄지는 ‘놀이터 놀이’뿐이다. 소풍이나 외부 체험활동도 없고, 일정 기간의 방학도 없다. 이러한 ‘No Korean’ 수업에 일부 아이는 ‘영어 거부증’ ‘등원 거부’ 현상을 보이고, 심한 경우 우울증·함구증에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어유치원과 일부 학부모는 이를 아이들의 투정이나 일시적인 반항 정도로만 치부한다.
◇‘4세 고시’를 향해 = 3~4세 반의 영어 ‘올인’ 수업은 대부분 4세 고시 준비를 위해서다. 5세에 입학하는 학군지의 유명 영어유치원은 입학 전 ‘레벨테스트’를 보는데, 난도가 상당해 4세 고시로 불린다. 대부분 4세 고시는 알파벳 글자와 소리를 연결하는 ‘파닉스’를 완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3학년 교과 과정에 해당한다. 아이들이 5년 선행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4세 고시를 통과해 5세 반에 들어가면 영어몰입 교육은 더 강화된다. 전국에 24개 지점을 두고 있는 P 영어유치원 대치동 5세 반 시간표를 보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이 진행되는데, 체육, 미술, 과학 활동 등에 할애한 80분을 제외하고 모두 영어집중수업(파닉스 공부, 알파벳 쓰기, 원서 읽기, 스피킹 등)으로 구성돼 있다. 7세가 되면 긴 문장을 쓰고 질문에 답변할 정도의 실력을 요구한다. 이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다.
◇정서·사회·육체적 발달은 미달=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영어 쓰기에 익숙한 영어유치원 출신 아이들 중 일부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심리적 문제를 겪기도 하고, 타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껴 또래에 비해 매우 내성적으로 변한다”며 “‘어릴 때부터 영어를 시작해야 커서 잘한다’는 부모들의 착각과 영어유치원의 공포마케팅이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아 국제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 시기 대근육·소근육 발달은 두뇌 발달과 연결돼 있는데 이 같은 주입식 교육은 창의성 발달을 가로막는다”며 “일찍부터 경쟁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사회·정서적 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율·노수빈·김유진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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