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3만원 오늘은 5만원" 소비자는 모르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비밀 [추적+]

이지원 기자 2024. 12. 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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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변동가격 다이내믹 프라이싱
호텔‧항공권에 이미 도입
수요·공급 따라 값 오르내려
AI 기술 발전에 도입 확산
소비자 반발도 적지 않아
가격 결정 기준 알 수 없어
터무니 없이 치솟는 경우도
정가시대 가고 시가시대 올까
소비자 신뢰 확보가 관건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는 2022년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했다.[사진|연합뉴스]

#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용어 그대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수요와 공급 등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시가市價'다.

# 숙박이나 항공업에서 주로 사용하던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최근 들어 확산하고 있다. 기업으로선 소비자 수요를 분석해 가격을 조정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 문제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통해 왜 이 가격이 매겨졌는지 알 수 없는 소비자다. '갑을 관계'에 묶여 있는 협력업체도 의문의 피해를 볼 수 있다. 더스쿠프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덫을 취재했다.

직장인 배수현(32)씨는 올겨울 친구와 일본 도쿄 디즈니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디즈니랜드 입장권 가격을 알아보던 배씨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12월 입장권 가격은 날짜별로 9400엔에서 1만900엔까지 차이가 났고, 1월엔 7900~1만900엔으로 가격 편차가 더 컸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금액과 가장 비싼 금액의 차이가 37.9%나 된 셈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디즈니랜드가 2018년부터 수요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유동 가격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말 그대로 '시가市價'를 의미한다.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이 정해진 게 아니라 수요와 공급, 시장의 경쟁 상황, 소비자의 니즈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다.

■ B2C 속 논란들 = 사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익숙한 개념이다. 호텔 숙박료나 항공권 가격이 수요가 몰리는 휴가철에 비싸지는 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에선 프로야구단 NC다이노스가 2022년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했다. NC다이노스는 홈구장인 창원NC파크 입장권 가격을 과거 판매 이력, 날씨, 순위, 상대팀, 전적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고 있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권 종류는 15가지로, 가격은 경기 일주일 전에 공지한다. 예컨대 올해 창원NC파크 테이블석 가격은 최저 3만8900원에서 최고 5만6500원으로 45.2% 차이가 났다.

이런 전략은 NC다이노스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 도입 첫해인 2022년 60억원이던 NC다이노스의 입장권 판매수입은 지난해 92억원으로 53.3%나 증가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입장권 판매수입(81억원)과 비교해도 13.5%나 늘어난 액수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가격을 책정해 기업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장점이 발휘된 셈이다.

문제는 NC다이노스 팬들 중에선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티켓 가격이 유동적이다 보니 예상 금액을 알기 어렵다" "정작 보고 싶은 경기는 사실상 '웃돈'을 주고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NC다이노스의 입장권 가격은 다른 구단과 비교해 얼마나 차이가 났던 걸까. 앞서 언급한 테이블석을 비교해 보자. 올해 기아의 챔피언스필드 테이블석은 주중 4만원·주말 4만5000원, SSG의 랜더스필드 테이블석은 주중 3만5000원·주말 4만3000원이었다.

NC다이노스 팬으로선 인기 경기를 보기 위해선 다른 구단 대비 비싼 값을 치러야 했던 게 사실인 셈이다.[※참고: 프로야구 입장권 가격은 2003년부터 자율화해 구단이 책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팬들의 차가운 반응은 경기장 입장객 수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NC다이노스의 홈구장 입장객 수는 10개 구단 중 4위를 차지했지만, 2022년 8위, 2023년 10위로 내려앉았다. 올해도 NC다이노스는 입장객 수 10위를 기록했다.

[※참고: 입장객 수(2019년 71만274명→2023년 55만7607명)가 줄었는데도, 판매수입(2019년 81억원→2023년 92억원)이 늘었다는 건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소비자보단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방증이다. 이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기 전 숙의해야 할 게 많다는 걸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후술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엔터사 하이브는 지난해 소속 가수의 미국 공연 티켓 판매에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했다가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하이브의 티켓 판매 주관사인 티켓마스터는 BTS 멤버 슈가의 공연 티켓을 다이내믹 프라이싱 방식으로 판매했고, 티켓 가격이 한때 1100달러(약 153만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팬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SNS상에서 #하이브티켓값뻥튀기반대 등의 해시태그 운동이 확산하면서 하이브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는 이렇게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낀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통해 수요가 적은 경기를 저렴하게 봤을 때 얻은 이익보다, 인기 경기를 (예상 금액보다) 비싸게 봤을 때 입은 손해가 더 크다고 체감한다는 거다. 소비자가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이 주도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 베일에 싸인 가격구조 = 다이내믹 프라이싱 도입이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으로선 소비자의 이탈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도입을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NC다이노스의 사례에서 보듯, 수익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그 과정에서 '차별적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인데, 그 사례는 금융업계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자의 금융 행태를 축적한 금융기업들은 줄줄이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 서비스의 근간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이다.

올해 손보사들은 가입자의 주행거리·운전특성 등을 분석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는 특약을 도입했다. 이른바 '주행정보연동보험(Usage Based Insu rance·UBI)'으로, 이에 따라 보험료가 깎이거나 오를 수 있다.

문제는 이 맞춤형 상품의 가격이 어떻게 설정됐는지 금융 소비자로선 알차내는 게 힘들다는 점이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정보와 소비자 후생(11월 18일 발표)' 보고서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과거엔 소비자의 특성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어 소비자별 맞춤형 가격 정책을 도입하기 어려웠지만 기업이 개인정보를 소유할 수 있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맞춤형 서비스를 맞춤화한 가격을 명분으로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로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설정한 가격을 알 수 없고, 이를 규제하는 것도 어렵다. 완벽하게 동일한 제품이 아닌 경우 '가격 차별'을 두고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 B2B 속 논란들 = 이런 문제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usiness to Consu mer)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B2B(기업 간 거래·Business to Business) 영역에서도 논란이 일긴 마찬가지다. 지난 11월 14일 배달앱 업계(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땡겨요)가 내놓은 '중개수수료 인하 상생안'이 대표적이다.

배달앱 업체와 입점업체로 구성한 상생협의체는 배달앱 업계 1위 배민이 내놓은 상생안에 합의했다. 입점업체들의 매출액(거래액) 구간을 설정하고 수수료를 차등해서 부과하는 게 골자다.

예컨대 매출액 상위 35% 업체는 중개수수료 7.8%·배달비 2400~3400원, 중위 35~50% 업체는 중개수수료 6.8%·배달비 2100~3100원, 중위 50~80% 업체는 중개수수료 6.8%·배달비 1900~2900원, 하위 20‰ 업체는 중개수수료 2.0%·배달비 1900~2900원을 적용하는 식이다.

당초 입점업체 점주들은 "중개수수료 5%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다이내믹 프라이싱 방식의 수수료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입점업체 점주는 배달앱의 '소비자'이고, 매출 데이터를 분석해 '가격(수수료+배달비)'을 다르게 책정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이내믹 프라이싱인 셈이다.

문제는 매출 정보를 배달앱 업체가 독점하고 있는 데다, 점주는 배달앱 업체의 정책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호겸 교수는 "어느 정도 '갑을 관계'가 작동하는 B2B 분야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도입은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수 소비자재단 사무국장은 "입점업체별로 다르게 부과하는 중개수수료의 기준인 매출 정보를 배달앱이 독점하고 있다"면서 "결국 입점업체가 신뢰할 수 있을 만한 매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게 관건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B2C와 B2B 부문 모두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양세정 상명대(경제금융학)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으로 인한 복잡한 가격 체계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는 제품 구매나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거나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할 경우 기업과 소비자에게 어떤 효과와 역효과를 불러올지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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