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물에 그 밥" 단통법이나 개정안이나 맹점투성이 [IT+]
단통법 폐지안 입법 절차 밟아
공시지원금 제도 삭제해
가계통신비 인하 기대 모아
다만, 인하 효과 적을 거란 지적도
제조사 장려금 제출 의무화 때문
정보 공개로 장려금 감소 우려
해외 제조사 협조 여부 불투명
실질적 가격 인하 효과 있으려면
이통사와 단말기 판매 분리해야
말 많고 탈 많던 단통법 폐지론에 드디어 불이 붙었다. 개정안이 국회 소관위를 통과하면서다. 윤석열 정부가 폐지를 공언한 지 10개월 만이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단통법의 단점을 메우고 가계통신비 인하에 도움을 줄 지 의문이다. 단통법만큼 이상한 규제가 들어있어서다. 여야 정치권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을 폐지하기 위한 '입법 절차'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폐지 논의는 단통법을 처음 시행한 2014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이뤄졌지만, 실제로 폐지 절차를 밟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단통법을 포함한 '3대 생활 규제 폐지'를 공언한 1월 22일을 기점으로 삼으면 10개월여 만이다.
21대 국회가 막을 내린 5월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단통법 폐지론이 다시 떠오른 건 10월 22일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단통법 폐지와 폐지 후속 조치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이 개정안은 한달 후인 11월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26일 과방위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업계는 이변이 없는 한 이번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뭘 바꿨나 = 그렇다면 단통법 개정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말도 탈도 많았던 공시지원금을 없앴다. 이는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구매할 때 이동통신사가 지원하는 금액이다. 이때 이통3사는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지원하는지 자사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한번 공시한 금액은 일주일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통3사가 공시지원금의 일정한 수준을 '암묵적으로 합의'하면서 실질적인 할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개정안에선 '지원금의 차별 지급 금지' 조항도 삭제했다. 이는 이통3사가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걸 막기 위한 조항인데, 이 때문에 소비자가 유리한 요금제나 가입 유형(번호이동·신규가입)으로 단말기를 구매해도 같은 금액의 지원금을 받는 역효과가 발생했다. 이 조항을 폐지한다면 이통사를 유지하거나(기기변경) 이통사를 바꾸는(번호이동) 소비자는 각각 다른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소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단통법 폐지안을 두고 "수시로 공시지원금을 변경하고 지원금을 차등으로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라며 "이를 통해 이통사 간 경쟁을 유도한다면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바뀌긴 바뀔까 = 하지만 개정안의 효과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적지 않다. 이유가 있다. 개정안에 추가된 '제조사 장려금 관련 자료 제출 의무 조항' 때문이다. 제조사 장려금이란 특정 단말기를 판매한 대가로 제조사가 이통사 대리점에 지급하는 돈이다. 이 조항을 도입하면 단말기 제조사는 정부에 장려금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제조사 장려금과 이통사의 지원금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이지만,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일종의 영업기밀인 장려금의 규모를 공개하면 공시지원금과 마찬가지로 '암묵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어서다.
애플과 같은 해외 제조사가 협조할지도 불투명하다. 다른 국가에 장려금 규모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현재 이통사에 지급하는 장려금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제조사가 공개한 국내 장려금이 '약점'이 될 소지도 있다. 세계 각국이 이를 근거로 '자국 대리점에 지급하는 장려금을 늘려라'고 압박할 수 있어서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반쪽짜리 폐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어떻게 해야 할까 =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가격인하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이통사와 단말기 판매를 분리하는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국내에선 이통사가 통신 서비스에 단말기를 묶어서 판매하고 있다. 이 담합구조를 끊어 이통사는 통신 서비스만 제공하고 단말기는 제조사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단말기를 소지한 소비자가 통신 서비스를 선택하는 구조로 바뀌면 이통사가 경쟁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자급제 단말기의 순기능이다. [※ 참고: 자급제 단말기는 소비자가 이통사나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단말기만 따로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요금제를 직접 알아봐야 하고, 유심도 직접 구매해야 한다. 번거롭지만, 통신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국내 자급제 단말기 이용률은 33.7%다. 자급제를 이용하는 이용자 중 80% 이상이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이용하고 있다. 계속해서 자급제 휴대전화 이용률을 높인다면 이통3사도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할 수밖에 없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가계통신비를 효과적으로 인하하기 위해선 이통사와 단말기 제조사를 분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그렇다면 통신사는 요금 경쟁을, 제조사는 단말기 공급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