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중범죄' 공식 만든 경찰서장…500채 사들인 '세모녀' 결국
[편집자주] 형사, 수사, 경비, 정보, 교통, 경무, 홍보, 청문, 여청 분야를 누비던 왕년의 베테랑. 그들이 '우리동네 경찰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평범한 일상, 그리고 우리동네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그들. '우리동네 경찰서장-서울편'을 넘어 전국 18개 시·도지방경찰청을 대표하는 경찰서장들을 만나봅니다.
2021년초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에 이런 첩보가 입수됐다. 서울 강서구, 관악구 등에서 빌라 524채를 사들인 '세 모녀'가 억대에 달하는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반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런 사건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로 불렸다. 일각에선 세입자들이 준비를 소홀해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세입자를 타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자력 구제를 위해 발품을 팔던 사건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냈다. 500채가 넘는 주택을 갭투자 방식으로 사들인 세 모녀가 보증금 상환이 불투명한 상황을 알면서도 세를 내준 데 주목하고 '미필적 고의'를 적용했다.
이른바 '세 모녀' 중 50대 김모씨는 지난 6월 1심 재판에서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장으로 수사를 지휘한 최진태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장(59·간부후보생 42기)은 "전국적으로 유사한 피해가 더 발생하는 일은 꼭 막아야 했다"고 돌이켰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50여명은 '저렴한 신축 빌라' 전세를 구했던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였다.
전세보증금보다 매매가격이 내려가자 결국 사고가 터졌다. 전세계약 만료 시기가 도래하자 김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우니 집을 매수하라"는 제안을 받은 이도 있었다. 일부 피해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에 추가금을 얹어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수사상 선례가 없었다. 세 모녀는 전세보증금 반환 능력과 의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민법상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면 계약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의 '사정변경의 원칙'도 경찰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당시 강력범죄수사대를 이끌던 최 서장은 사기죄를 명시한 형법 347조 1항의 본질에 집중했다.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 상대방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최 서장은 갭투자를 통해 주택 500여채를 소유한 세 모녀가 시장 상황에 따라 보증금을 되돌려주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12명의 경찰관이 묵묵히 힘을 더했다.
경찰 수사결과 세 모녀는 분양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고 빌라를 떠넘길 목적으로 세입자들에게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세 모녀와 공모한 분양업체도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피해액만 800억원에 달했다.
최 서장은 "솔직히 처음엔 사기 혐의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해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며 "법원 판단은 결국 우리 경찰 수사의 역량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 남양주남부서장으로 부임한 최 서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생 침해 사건'에 주력한다. 올 9월에는 관리비가 월 10억원에 달하는 지식산업센터 관리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류를 위조한 일당을 구속 송치했다. 고소인만 100여명에 달했다.
지난달 강원 춘천시 의암호에 위치한 붕어섬에서 대마를 재배하고 이를 같은 동네 선후배들과 나눠 핀 일당도 붙잡았다. 남양주남부경찰서 마약팀은 지난해 8월 "춘천 지역 주민들이 대마와 마약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장기간 수사에 나서 B씨 등 5명을 검거했다.
최 서장은 "시민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찰 수사 역량을 신뢰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시민들의 보내주시는 신뢰와 응원에 수사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남양주(경기)=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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