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월 내 퇴사하면 수수료는 네가 내"…'울며 겨자 먹기'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12. 3. 09:03
[갑갑한 오피스] (글 : 권남표 노무사)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초등학교 시절 두 명이서 책상을 같이 쓰던 때가 있었다. 책상은 길었고, 밑에는 작은 서랍이 있었다. 사물함을 사용하기 전까지 유용했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어 있는 책상 밑과 달리 책상 위는 임자 없는 땅이었다. 문제는 둘이 책상을 같이 쓴다는 거다. 경계 없는 책상 위에 칼로 선을 긋고 이야기했다. "이거 넘어오면 다 내 거." 내 것이었던 펜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었던 지우개가 사선으로 잘려서 내 것이 됐다. 그리고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 가질 수는 없었다. 침을 바른다고 내 것이 될 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이도, 성별도, 덩치도, 부모의 재산도 그 둘 사이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네 거니 내 거니 했다.
사회는 꽤나 험악해서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 팔꿈치를 자를 기세로 선을 긋고 계약을 체결한다. 선을 넘지 말고 서로 네 것을 인정하자는 약속이 일터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양쪽이 만족하는 계약보다는 약간 기울어져 보이는, 가끔은 완전히 비틀어진 계약이 체결된다.
2020년 부산에서 한 택배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리점과 택배기사는 일을 시작하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택배사의 대리점은 이러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택배기사에게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개월 전에 퇴사 통보를 하고 퇴사하여 후임을 구하지 못하는 등 대리점에 손해를 끼치면 위약금 1,000만 원을 내야 한다." 몸이 아파서 그만두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시 <택배노동자 사망 뒤엔 갑질횡포..."대리점 지점장이 왕"(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10.22.)>에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택배기사의 실태를 고발했고, 급기야 갑자기 아프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경우에조차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놓아야 쉴 수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양쪽이 서로 만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여 책임을 묻는 상호 의존적인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즉 리스크가 일방에게 쏠리는 비틀어진 계약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상품을 거래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아서 거래를 하니 발생하는 일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계약을 체결할 때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보통 일터에서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은 노동자다. 택배기사도 그러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평등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스스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은 과거 한계를 보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시민법 체계는 아이와 공장이 체결한 계약으로 잔인함을 드러냈다. 공장에 높게 설치된 굴뚝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어른이 들어갈 수 없었다. 굴뚝에 낀 검댕을 치우는 일은 아이의 몫이었다. 드나들기 쉬운 작은 덩치의 아이들이 힘들어서 내려오려 하면 아래에서는 내려오지 못하도록 연기를 피웠다. 많은 아이들이 질식하거나 타서 죽었다. 이러다 보니 '과연 평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걸까?'란 의문에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원리가 설명됐고, 이를 구현하는 노동법이 제정됐다. 최소한 이 정도는 보호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생각은 사용자보다 노동자에게 무게추를 실어주는 노동법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법에는 택배기사와 같이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정하지 못하게 정해뒀다. [근로기준법 제20조 (위약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이런 법조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것은 '노예 계약'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며 일을 하면서도, 그만두면 또 손해를 잔뜩 보게 해서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은 사용자가 이윤을 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제 법은 택배기사와 대리점 사이와 같이 "3개월 전에 퇴사 통보+후임자 물색 안 하면 1,000만 원"을 불법으로 정했지만 건너야 할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제정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택배기사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근래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잡코리아는 기존 헤드헌팅 회사들이 하던, 경력자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원픽'이란 상품을 운용한다. 사용자는 원픽으로 통해 경력직을 채용하면 연봉의 7%를 원픽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그 경력직이 3개월 이내에 퇴사할 때는 수수료의 80%를 환급받는다. 한 학원은 학원강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9개월 이내에 퇴사 시 채용 수수료를 부담한다"라고 적어 압박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초등학교 시절 두 명이서 책상을 같이 쓰던 때가 있었다. 책상은 길었고, 밑에는 작은 서랍이 있었다. 사물함을 사용하기 전까지 유용했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되어 있는 책상 밑과 달리 책상 위는 임자 없는 땅이었다. 문제는 둘이 책상을 같이 쓴다는 거다. 경계 없는 책상 위에 칼로 선을 긋고 이야기했다. "이거 넘어오면 다 내 거." 내 것이었던 펜이 네 것이 되고, 네 것이었던 지우개가 사선으로 잘려서 내 것이 됐다. 그리고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말을 했지만 실제로 가질 수는 없었다. 침을 바른다고 내 것이 될 수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이도, 성별도, 덩치도, 부모의 재산도 그 둘 사이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네 거니 내 거니 했다.
사회는 꽤나 험악해서 팔꿈치가 넘어오면 그 팔꿈치를 자를 기세로 선을 긋고 계약을 체결한다. 선을 넘지 말고 서로 네 것을 인정하자는 약속이 일터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양쪽이 만족하는 계약보다는 약간 기울어져 보이는, 가끔은 완전히 비틀어진 계약이 체결된다.
2020년 부산에서 한 택배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리점과 택배기사는 일을 시작하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이 택배사의 대리점은 이러한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택배기사에게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개월 전에 퇴사 통보를 하고 퇴사하여 후임을 구하지 못하는 등 대리점에 손해를 끼치면 위약금 1,000만 원을 내야 한다." 몸이 아파서 그만두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시 <택배노동자 사망 뒤엔 갑질횡포..."대리점 지점장이 왕"(김종배의 시선집중 2020.10.22.)>에서 힘들어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택배기사의 실태를 고발했고, 급기야 갑자기 아프거나 아파서 일을 못 하는 경우에조차도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놓아야 쉴 수 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양쪽이 서로 만족하기 위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행을 점검하여 책임을 묻는 상호 의존적인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즉 리스크가 일방에게 쏠리는 비틀어진 계약이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상품을 거래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아서 거래를 하니 발생하는 일인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계약을 체결할 때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 보통 일터에서 불리한 계약을 체결하는 사람은 노동자다. 택배기사도 그러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평등한 상태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스스로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은 과거 한계를 보였다.
19세기 초 영국의 시민법 체계는 아이와 공장이 체결한 계약으로 잔인함을 드러냈다. 공장에 높게 설치된 굴뚝은 위로 갈수록 좁아져서 어른이 들어갈 수 없었다. 굴뚝에 낀 검댕을 치우는 일은 아이의 몫이었다. 드나들기 쉬운 작은 덩치의 아이들이 힘들어서 내려오려 하면 아래에서는 내려오지 못하도록 연기를 피웠다. 많은 아이들이 질식하거나 타서 죽었다. 이러다 보니 '과연 평등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걸까?'란 의문에 시민법을 극복한 사회법의 원리가 설명됐고, 이를 구현하는 노동법이 제정됐다. 최소한 이 정도는 보호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생각은 사용자보다 노동자에게 무게추를 실어주는 노동법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법에는 택배기사와 같이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정하지 못하게 정해뒀다. [근로기준법 제20조 (위약예정의 금지) 사용자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다]. 이런 법조문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던 것은 '노예 계약'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저임금에 허덕이며 일을 하면서도, 그만두면 또 손해를 잔뜩 보게 해서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은 사용자가 이윤을 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이제 법은 택배기사와 대리점 사이와 같이 "3개월 전에 퇴사 통보+후임자 물색 안 하면 1,000만 원"을 불법으로 정했지만 건너야 할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제정된 지 70년 가까이 지난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택배기사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근래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잡코리아는 기존 헤드헌팅 회사들이 하던, 경력자를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원픽'이란 상품을 운용한다. 사용자는 원픽으로 통해 경력직을 채용하면 연봉의 7%를 원픽에 납부해야 한다. 다만 그 경력직이 3개월 이내에 퇴사할 때는 수수료의 80%를 환급받는다. 한 학원은 학원강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9개월 이내에 퇴사 시 채용 수수료를 부담한다"라고 적어 압박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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