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냥이만을 위한 것’? 동물복지의 기원 아시나요

2024. 1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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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돼지 농장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흔히 ‘동물복지’라고 하면 집에서 기르는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떠올린다. 먹고 살만해지니 개,고양이를 키우게 되었고, 가족처럼 함께 살다 보니 반려동물도 사람처럼 ‘복지’를 배려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물보호법만 봐도 이런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조항 거의 대부분이 반려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축산업계에서는 ‘동물복지는 반려동물을 위한 것인데, 동일한 잣대를 산업동물(농장동물)에 적용하려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애초에 동물복지 개념은 농장동물을 다루는데 대한 윤리적 성찰과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동물복지 필요성이 반려동물을 비롯한 다른 분야 동물들보다 축산업에 가장 먼저 도입된 이유는 축산업에서 다뤄지는 동물의 숫자나, 동물의 복지가 침해되는 정도가 다른 동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초로 마련된 동물보호법은 1822년 영국에서 가축을 학대하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해 마련된 ‘가축학대방지법’(The Cruel Treatment of Cattle Act)이었다. 미국에서도 1958년에 ‘인도적 도축법’(The Humane Slaughter Act)이 마련되었다. 1960년대 영국에서 공장식 축산 내 동물의 처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진 현상은 농장동물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물의 5대 자유’라는 원칙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물의 5대 자유는 현대 동물복지의 근간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동물복지의 원칙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물에 대한 관심이 다른 동물에게도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매년 일반 시민과 축산업계를 대상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비교하고 있다. 농장동물의 복지를 개선하는 일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타협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측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돈사에서 지내는 돼지들의 실제 모습. 농장동물의 복지에 대한 관심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2023년 12월 전국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민들이 농장동물 복지에 대해 이제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임신한 돼지를 좁은 틀에서 키우는 ‘스톨 사육’ 방식에 대해 알고 있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70.4%로, 2022년보다 11.5%p 증가했다. 2021년 조사에서 스톨 사육에 대해 응답자 절반이 ‘들어본 적 없다’고 답한 것과 큰 차이다.

2019년 축산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2030년부터는 모든 농장이 교배 후 6주가 지난 임신한 돼지는 스톨에서 사육하면 안 되며, 일상적인 동작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군사 공간에서 사육해야 한다. 스톨 사육 기간이 감소하면 모돈의 복지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응답은 83.1%로 전년 대비 3.9%p 높게 나타났다. 스톨에 칸칸이 가두어 키우던 돼지에게 움직일 공간을 주게 되면 농가의 사육 두수가 줄어든다는 게 농가의 우려다.

스톨 사육 제한이 모돈 복지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 응답자 중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76.6%로, 전년 대비 4.8%p 높게 나타났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응답자(84.5%)가 기르지 않는 응답자(71.9%)보다 추가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응답이 12.6%p나 높게 나타난 점은 흥미롭다. 지불 의향이 있는 응답자가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은 구입가 대비 평균 16.11%로 나타났다.

실제 스톨 사육의 모습. 어미돼지는 돌아설 수도 없는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고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제공

한편 소비자와 생산자의 인식에 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24년 1월 양돈 축산업 종사자 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농장동물복지에 대한 양돈농가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유예기간 내 변경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2.7%에 달했다. 이유로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서’가 58.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기타 의견으로는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군사사육 환경에서 돼지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군사시설로 전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86.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스톨에서 사육되는 어미돼지는 돌아설 수도 없을 정도의 공간에서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평생을 보낸다. 또한 사회적인 동물인 돼지가 다른 개체들과 정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거나 종 고유 행동을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은 동물복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문제때문에 1994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영국, 유럽연합 등에서는 이미 임신돈의 스톨 사육을 제한했다. 최근에는 임신한 어미돼지에 사용하는 스톨 뿐 아니라 새끼를 낳은 어미돼지를 사육하는 분만틀도 대체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

정부는 최근 산란계 사육 면적을 0.025㎡ 늘리기로 한 축산법 시행령 시행을 2년 늦춘다고 발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최근 정부는 2025년 7월부터 산란계 사육 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 확대하기로 한 축산법 시행령 시행 시점을 2년 늦춘다고 발표했다. 새로운 사육 면적을 제공하면 기를 수 있는 닭의 숫자가 줄어들어 달걀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생산자 단체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준비가 되지 않은 제도를 밀어붙인다면, 동물복지의 실질적인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에는 십분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시행 시점만 계속해서 미루는 것은 개선된 제도를 원활하게 시행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됐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스톨 사육 기간 제한 유예기간이 5년 남은 시점에서, 산란계 사례처럼 시행을 미루게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적극적인 논의와 조사가 필요하다. 논의에는 정부와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 또한 참여해야 한다. 설문조사에서 농장동물 복지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95.4%였다. 어미돼지에게 움직일 공간을 주는데 드는 비용을 소비자가 조금이라도 나눠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야 농장동물 복지의 개선도 가능할 것이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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