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강하다, 동물 가족의 사막 생존기 [환경-자연 영화]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사람이 사람답게 생활하기 어렵다. 인간이 남극에 기지를 설치하고 생활하는 건 과학적·산업적 목적을 위해서이지 생활 자체의 목적이 아니다.
너무 더운 쪽의 대표적 자연환경은 사막이다. 전체 육지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사막은 한마디로 비가 적게 오는 곳이다. 강수량이 적어 식생植生이 드물고 인간의 활동도 제약되는 지역이다. 한자로 사막沙漠은 '넓은 모래'라는 뜻이고, 영어 '데저트desert'는 라틴어 어원이 '버려진 땅'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연평균 강수량이 250mm 이하인 지역을 사막이라 정의한다. 학자에 따라 그 절반인 125mm까지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 수치는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 1,418mm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은 사하라Sahara사막이다. 기후학적으로는 남극과 북극 역시 사막에 포함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래바람과 바위만 있는 사막으로는 사하라가 가장 크다. 면적 940만㎢로 북아프리카 대부분을 덮고 있으며, 이 사막을 경계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사하라 북쪽 아프리카의 인종적·문화적 차이가 발생했다.
아프리카 남부에는 칼라하리Kalahari사막이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에 걸쳐 있다. 해발고도 800~1,200m의 고원지대로 면적은 93만㎢이다. 사막이지만 전체가 모래로 덮인 것은 아니고 풀과 관목, 야자나무가 산재한다.
<낙원에서 살아남기: 가족의 이야기Surviving Paradise: A Family Tale>(감독 리네이 고드프리, 2022)는 이 칼라하리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국 다큐멘터리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 무리의 사자 모습을 보여 주면서 "이 땅에서는 가족이 전부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부제인 '가족의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동물도 가족 덕분에 한 마리, 한 마리가 살아갈 수 있는데, 이러한 결속력이 가장 큰 시험대에 오르는 곳은 드넓은 칼라하리사막이다. 사막의 건기가 악화되면, '용감한 어미'(사자), '현명한 연장자'(코끼리), '끈기 있는 약자'(아프리카들개), 모두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오아시스로 모여든다. 바로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이다.
델타delta는 삼각주三角洲를 말하는데, 그 형태가 삼각형일 때가 많으며 그리스 문자 델타 대문자(Δ)와 비슷해 유래한 이름이다. 삼각주는 하천이 바다 또는 호수와 만나는 하구河口에 퇴적물이 오랫동안 쌓여 만들어진 평평한 지형이다.
삼각주는 지속적인 물과 토사의 공급으로 기름진 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로 인해 풍부하고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할 수 있으며, 비옥하고 넓은 평야지대를 형성하기에 예로부터 농경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세계의 주요 삼각주로는 이집트의 나일강 삼각주, 미국 미시시피강, 중국의 양쯔강 등이 있다.
오카방고 델타는 보츠와나 북서부 칼라하리사막에 있으며, 영구 습지대와 계절에 따라 범람하는 평원으로 이뤄져 있다. 면적은 2만5,000㎢로, 세계 최대의 내륙 삼각주이다. 워낙 독특한 자연환경이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카방고 델타는 해마다 우기에 범람한다. 토착 동식물들은 계절 강우 및 강의 범람 시기와 동기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생물학적 사이클을 적응시켰다. 이런 현상은 기후와 생물학적 과정의 상호 작용을 보여 주는 뛰어난 사례이며, 이는 <낙원에서 살아남기>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다.
영화는 사자, 아프리카들개, 코끼리, 조류 등 동물 무리의 1년에 걸친 삶을 교차 편집의 형식으로 흥미롭게 보여 준다. 내레이션은 영화 <모털 엔진>과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브리저튼>에 출연했던 영국의 인기 배우 레게 장 페이지Rege-Jean Page가 맡아 차분하게 작품의 스토리를 이끈다.
암사자와 자매는 근방의 지배자이다. 우두머리 수사자 덕분이다. 그런데 가족과 영역을 지키기 위해 수년간 싸운 탓에 수사자의 육체가 쇠하자 이 암사자의 삶은 위험에 빠진다. 야심만만한 젊은 수사자 두 마리가 나타나 왕좌를 가로챘다.
한창 번식할 나이의 암사자만이 무리에 남을 수 있는데, 영화 주인공 중 하나인 이 암사자는 해당되지 않는다. 새로운 수사자들에게 먹여야 할 입밖에 되지 않는 이 암사자는 홀로 쫓겨난다. 이 암사자에게 올해는 한 치 앞도 예상하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델타에 사는 가족 무리는 각자의 생존 방식이 있다. 하이에나와 비슷하게 생긴 '아프리카들개' 무리 24마리는 모두 강인하다.
"그 강인함은 무리를 이끄는 자가 훌륭하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우두머리 암컷이지요."
우두머리는 들개들에게 협동 사냥을 가르쳤고, 덕분에 모두 배불리 먹는다. 그런데 우두머리가 임신한 상태라 곧 우두머리 자리가 공석이 될 것이다.
5월, 칼라하리사막은 몇 십 년 만의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다.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외곽으로부터 수천 마리 동물들이 몇 주에 걸쳐 피난해 온다. 얼룩말, 기린, 아프리카들소…. 모두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물이다.
무려 4개월 전 북쪽 앙골라 고지에 내렸던 비가 모여서 드디어 이곳까지 내려왔다. 칼라하리를 건너 델타 평지까지 온 것이다. 9조 리터가 넘는 담수가 광활한 사막을 덮고, 이렇게 지구 최대의 오아시스가 만들어진다. 메마른 땅에 생명수 같은 물이 흘러들어오는 장면을 시기를 정확히 맞춰서 근접으로 아름답게 촬영했다.
불어나는 물과 함께 동물들도 몰려온다. 이 땅을 다지고 유지하기 위해 각자에게 역할이 주어진다. 물이 무릎까지 찬 습지에서 코끼리 무리가 마음껏 풀을 뜯어 먹고 있다. 코끼리들은 실제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풀을 뽑는다. 하지만 풀을 너무 많이 제거하면 물길이 막혀서 유속이 느려진다.
코끼리들이 막은 물길은 하마 가족들이 뚫어 준다. 하마는 수영을 못 하기에 바닥을 발끝으로 헤치며 걷는다. 그러면서 몸집 너비의 길을 낸다. 수중 촬영 덕분에 우리는 그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강과 웅덩이 그리고 범람지가 이어진다.
다양한 새들이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분주히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흥미롭다. '뿔호반새'는 공중에서 수직으로 낙하해 물고기를 잡고, '검은왜가리'는 날개를 펼쳐 물고기들이 모이기 좋아하는 그늘을 드리워 잡는다. '열린부리황새'는 긴 부리로 달팽이 껍데기 안의 속살을 기가 막히게 빼먹는다.
펠리컨의 새끼들은 아주 욕심꾸러기라 어미가 뱃속에서 뱉어낸 생선 무더기를 받아 게걸스럽게 삼켜댄다. 놀랍게도 하루에 30번은 먹여야 한다.
"지칠 줄 모르는 부모들은 델타 속 가족생활 원칙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강한 자식일수록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죠."
10월, 푸릇푸릇했던 낙원에 가뭄이 찾아와 황량한 먼지 구덩이가 된다. 푸른 초원이 온통 허연 흙바닥이 됐고, 모든 동물이 어떻게 해서든 물을 찾기 위해 헤맨다.
10월 말이 되자 기온은 45℃까지 치솟는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이 땅은 감옥이 되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그토록 풍요롭던 곳인데 말이다. 코끼리 생사를 책임지는 건 나이 많고 현명한 무리의 우두머리 암컷이다. 여러 기억으로 가득한 이 코끼리의 뇌에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지도가 있고, 최후의 물웅덩이 몇 군데의 위치가 표시돼 있다.
"가족은 단순한 무리가 아닙니다. 이어져 오는 기억입니다. 바로 그러한 기억이 동물들의 생사를 가릅니다. 옛 가족과의 기억이 델타 전역에 얼마 안 남은 물웅덩이로 이들을 이끕니다."
<낙원에서 살아남기>는 델타 오아시스의 생태계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여러 동물들의 행태와 함께 보여 준다. 드라마틱한 스토리 전개를 위해 억지스러운 설정을 하거나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일부러 넣는 일부 자연 다큐멘터리들과는 달리 잔잔하고 담백하게 1시간 20분짜리 작품을 구성했다. 보면서 힐링되는 장면이 많다.
무리에서 쫓겨난 암사자가 홀몸으로 저보다 덩치 큰 아프리카물소 사냥에 계속 실패하고, 낯선 수사자를 만나 임신해 새끼 4마리를 낳고, 자기를 쫓아냈던 수사자 2마리가 새끼를 물어 죽이려 하자 생명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모습 등은 애잔한 감동과 함께 여러 상념에 들게 만든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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