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복수, 시진핑의 묘책
2010년대 하반기의 미·중 1차 무역전쟁은 승패를 가리기 힘든 싸움이었다. 내년 1월20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중국과의 2차 무역전쟁을 별러왔다. 모든 나라의 상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한편 중국에는 60%까지 관세율을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제조업 강화 및 수출 증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아온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단번에 분쇄해버릴 강도의 관세율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대(對)중국 관세율을 대폭 올리며 1차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당시 트럼프의 의지는 ‘미국을 따돌리고 글로벌 산업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중국의 야망을 짓밟아버리는 것이었다. 계산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3% 정도였던 대중국 관세를 4~6배(12~19%)로 올렸다. 덕분에 미국의 중국산 수입액은 다소 줄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자신의 의도를 거의 관철하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11월10일)이 중국 전문 컨설팅 기업인 ‘가베칼 드래고노믹스’의 보고서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글로벌 수출 실적은 1차 무역전쟁 직전에 비해 오히려 60%나 늘었다. 더욱이 중국은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 부문에서 글로벌 선도국의 입지를 굳혔다.
트럼프가 중국에 이를 갈 만한 이유는 또 있다. 첫 임기의 마지막 해인 2020년 1월, 양국은 ‘1단계 무역 합의’를 성사시켰다. 이에 따라 미국은 대중 관세율을 다시 내리는 한편 새로운 관세 인상 계획도 연기했다. 중국은 2년(2020~2021)에 걸쳐 미국산 제품 구입을 2000억 달러 더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이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그해 말 대선에서 트럼프는 패배했다.
돌아온 트럼프는 쌓인 분노를 폭발시킬 태세다. 대중 강경론자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국무장관 지명), 마이클 왈츠 하원의원(국가안보보좌관 내정) 등을 외교·안보 라인에 포진시킬 것이다. 첫 임기 때 미국무역대표부(USTR)를 맡아 대중 관세 정책을 설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를 다시 기용하려 한다.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몰아내야 한다(디커플링)고 주장해온 인물들이다. 관세 인상의 명분도 있다. ‘1단계 무역 합의’는,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이 관세 인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더욱이 지금의 중국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다. 1차 무역전쟁 당시의 중국은 수출 이외에도 건설 부문 등을 경제성장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지방정부(성)들도 의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인프라 등에 투자하면서 성장률 상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상황이 크게 변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방정부들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부채로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
시진핑 주석에게 경기침체 해법으로 남은 것은 수출밖에 없다. 제조업 상품을 더 많이 만들어 해외시장에 초저가로 밀어 넣는다. 덕분에 올해 들어 중국의 수출 실적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경기침체의 심도가 너무 깊어, 중국공산당의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인 5%(지난 수십 년에 걸쳐 가장 낮은 수치)가 달성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가 2차 무역전쟁(관세 인상)을 도발한다면 중국 경제를 1차 때보다 훨씬 강하게 타격할 수 있다. 중국이 수출에 모든 것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들 싸움 붙이기’ 계책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의 ‘60% 관세’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까?
첫째, 타협과 양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관세 부문에서 중국의 사정을 어느 정도 양해해준다면, 중국도 미국에 제공할 것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11월14일)가 인터뷰한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궁지웅 교수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미국 현지에 제조업 공장을 세워 트럼프의 일자리 정책을 지원할 수 있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 시대에 해온 일이다. 중국이 선도적 지위를 확보한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을 미국에 설립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만큼 중국은 절박하다.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대중 관세율 60%’가 실제로 시행되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프라 투자 업체인 매쿼리는 2%포인트, 스위스 종합금융기업 UBS는 1.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경영자문 업체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미·중 무역 규모가 70%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미국의 전체 수입품 중 중국산 비율은 2023년의 약 14%에서 4%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호랑이들이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11월10일)에 따르면, 시진핑 정부는 아시아와 유럽의 ‘미국 동맹국’에 대해 관세율(중국으로 수출 시 적용) 인하를 제안할 수 있다. 상대국에는 관세 인하를 요구하지 않는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동맹국에도 고율(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오히려 관세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분열을 노리는 계책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덴마크 등 여러 미국 동맹국에 비자 발급을 면제했다. 상대국엔 중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를 요구하지 않았다.
더욱이 트럼프는 1기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에 막말을 퍼부으며 무리한 요구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에도 트럼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국방비를 충분히 지출하지 않는 나라들을 공격하라고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분열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협상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다.
셋째, 미국과의 정면 대결이다. 미국이 중국을 제재하는 경우 중국 역시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을 제재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미국 기업에 대해 중국 기업의 중간재 공급을 금지할 수 있다. 미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중국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도 있다. 중국은 첨단 기술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자원인 희토류나 리튬 등의 글로벌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다. 이 공급망에서 미국을 배제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컨설턴트 업체 ‘컨트롤 리스크’의 중국 분석 책임자 앤드루 길홈은 〈파이낸셜타임스〉(11월14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중국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당신은 미·중 무역전쟁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얼마나 강화할지 대충 가늠할 수 있다고 자신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틀렸다. 왜냐하면 중국은 아직 진지하게 보복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종태 선임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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