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 빈곤층’ 본인부담금 7배 뛸 수도…정률제로 전환 추진 파장

임재희 기자 2024. 12. 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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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부담 늘리는 정부 ‘의료정책’
안홍경씨가 아침·점심·저녁에 복용하는 약이 약통에 담겨 있다. 임재희 기자

심한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안홍경(64)씨는 1주일에 2∼3일 병원에 간다. 뇌성마비부터 신경뿌리병까지 진단받은 질병만 9가지, 대학병원 한곳에서 찾는 진료과만 7곳이다. 재활치료에 허리부터 머리로 이어지는 통증 치료까지 받느라 지난해에도 병원과 약국에 모두 91회(1주에 1.75회) 다녔다. 외래 진료비가 743만9070원에 달했지만, 의료급여(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1종 수급자인 그는 4만4500원만 부담했다.

하지만 내년부턴 본인부담금이 최대 7배 뛸지도 모른다. 정부가 1종 수급자 본인부담금을 ‘정액제’에서 진료비에 비례해 내는 ‘정률제’로 바꿀 계획이어서다. 지난 10월14일 서울 송파구 집에서 한겨레와 만난 안씨가 온몸을 비틀며 겨우 입을 열었다.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어떡해….”

서울 송파구 장지동 집에서 현관을 바라보고 있는 안홍경씨의 뒷모습. 임재희 기자

본인부담금 몇배로 ‘껑충’

의료급여는 월 소득이 올해 1인가구 기준 89만1378원 이하 빈곤층에게 의료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다. 일할 수 없거나 중증질환자인 1종 수급자는 약국에선 500원, 의원에선 1천원, 병원에선 1500원, 상급종합병원에선 2천원만 부담한다. 그러나 외래 진료비나 약값의 2%(약국)∼8%(상급종합병원)씩 비례해서 내는 정률제로 바뀌면 안씨의 본인부담금은 지난해 4만4500원에서 내년 32만2291원으로 7배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안씨가 지난해와 똑같이 의료기관을 이용한다고 가정해 계산한 예상치다.

정률제 전환은 의료기관을 지나치게 자주 찾는 ‘의료 쇼핑’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의료급여 수급자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3.3배(의료급여 735만원, 건강보험 219만원) 많다. 정부는 이를 과다 의료 이용으로 보고, 진료비에 비례해 본인부담금을 부과하면 수급자들이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자제할 거라고 본다.

그러나 안씨가 병원에 가는 일은 ‘의료 쇼핑’이 아니다. 안씨와 7년째 병원에 같이 다니는 활동지원사 안영숙(55)씨는 “(안홍경씨가) 목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에 온몸이 저리고, 시리고, 아프다고 해 마약류 진통제를 먹고 있다”며 “지난해엔 만성복합 치주염으로 치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매주 2∼3일 병원에 다니는 건 “최소한”이라고 했다.

“중증환자일수록 걱정”

정률제 전환은 윤석열 정부가 표방한 ‘약자 복지’ 기조와 반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위원장은 “365일 이상 병원에 가는 일부 사례로 가난한 사람 모두 도덕적 해이를 일으킨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다”며 “약자 복지가 아니라 약자를 공격하는 복지”라고 말했다.

정부는 외래 진료를 받는 의료급여 1종 수급자에게 월 6천원 주던 ‘건강생활유지비’를 내년에 1만2천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래도 역부족이다. 건강생활유지비가 없다면 안씨가 내년에 내야 할 본인부담금은 46만6291원에 달했을 터다. 월 1만2천원씩 유지비를 받아야 32만2291원이 된다.

의료비 부담은 중증환자일수록 클 것으로 보인다. 정성식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중증환자는 고난도 진료가 필요한데, 진료 1건당 총진료비 규모가 커서 정률제로 전환 시 본인부담도 크게 는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수급자들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정률제 전환 시 의원급 외래 진료비가 정액제보다 얼마나 느는지 따져봤는데, 과다 이용 대표 사례인 물리치료는 2.6배, 물리치료가 아닌 외래는 3.5배 올랐다. 경증이 아닌 진료일수록 비용 부담이 더 늘 수 있다는 뜻이다.

“과다 이용 아닌 보장성이 문제”

안홍경씨 진료를 담당한 장인호 중앙대병원 교수(비뇨의학과)는 의료급여 환자를 만날 때마다 고민한다. 의료급여 혜택이 건강보험 적용 항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비뇨의학과만 해도 요즘엔 거의 로봇 수술을 많이 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 면역항암제 같은 약물 치료도 마찬가지”라며 “새로운 의료기술을 사용하는 데 (의료급여 수급자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의료급여 수급자에게 비급여 진료 문턱은 높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를 보면, 나이와 장애·질병, 소득 등이 비슷한 의료급여 수급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외래 방문 횟수가 21% 많았다. 그런데 연간 1인당 총 외래 진료비는 비슷했다. 의료급여 수급자의 비급여 진료비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17%가량 적은 까닭이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비급여 대신 임시방편으로 간단한 급여 치료만 받다 보니 병원에 많이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진료를 포기하는 사람도 의료급여 수급자가 건강보험 가입자보다 많다. 지난해 의료 이용이 필요한데도 이를 포기한 ‘미충족 의료’ 비율은 의료급여 수급자가 3.2%로 건강보험 가입자(1.4%)보다 2.3배 많았다.

전문가들은 빈곤층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기 전에, 적절한 의료가 빈곤층에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고 말한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비급여 진료가 필요해도 못 받는 빈곤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의료급여 환자의 건강 악화를 예방할 수 있도록 주치의 제도 등 의료 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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