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野, 법안도 입맛대로... 간첩죄 확대 돌연 반대
더불어민주당이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敵國)’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2일 알려졌다. 최근 산업 및 국가기밀 유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정부·여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형법 98조에 규정된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 간첩죄 개정 반대로 선회하면서 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사실상 개정안 심의가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사건’ 등에 적용된 제3자 뇌물죄 처벌 범위를 축소하는 형법 개정안(주철현 의원)과 당내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를 6개월로 제한하는 정당법 개정안(김교흥 의원)도 발의했다. 각각 ‘이재명 방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방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의 입법권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간첩법 개정안은 공청회부터 열어 각계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며 “개정안 연내 처리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형법 개정안은 간첩죄의 적용 대상을 기존의 ‘적국’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바꿔 처벌 대상을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현행 형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상 적국은 ‘북한’뿐이어서 우방국이나 적성 국가의 간첩 활동을 적발해도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2018년 중국과 일본에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군무원은 간첩죄가 아닌 군사기밀 누설 혐의로 최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간첩죄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지만, 군사기밀 누설 혐의는 10년 이하 징역 등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다. 반면, 미국·일본·중국 등에선 적국뿐 아니라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도 처벌하는 법을 두고 있다. 지난 5월 한국 교민이 중국 회사 근무 당시 반도체 관련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는 혐의(반간첩법)로 중국 당국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선 중국인들이 군사 시설과 국정원을 드론으로 촬영하다 적발됐는데 간첩 혐의가 아닌 군사기지보호법 위반 등으로 입건됐다.
국민의힘은 연내 국회 처리를 목표로 간첩죄 조항을 개정하는 형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했다. 민주당에서도 김병주 최고위원과 박지원·강유정·위성락 의원 등이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는 취지의 개정안을 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관련 형법 개정안은 지난달 13일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 제1소위를 통과했으나, 법사위 전체 회의 상정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이 돌연 반대로 돌아섰다고 한다.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 일각에서 최근 간첩죄 개정안을 보고받고 우려를 표했고 이에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법안 심사를 늦추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국익을 위해 이 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당대표로서 민주당에 정중하게 묻고 싶다. 적국을 외국으로 하는 간첩법 통과시킬 건가, 아니면 막을 건가”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간첩죄 관련 법안은 당론이 아니라 관련 입장이 없으며, 상임위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했다.
한편, 민주당 의원이 정당법 위반 범죄의 공소시효를 6개월로 제한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방탄을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민주당 김교흥 의원은 지난 9월 당내 경선 과정 등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해 ‘6개월 단기 공소시효 및 범인·참고인 도피 시 공소시효 3년’을 적용하는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부칙에는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범죄 행위에도 개정안을 소급 적용하도록 돼 있다. 김 의원은 정당법 개정 이유에 대해 “현행 공직선거법은 6개월의 단기 공소시효 특례를 두고 있는데, 정당법에는 별도의 공소시효 특례가 없다”며 “수사와 처벌이 장기간 방치될 수 있고 수사기관 등의 선택적 수사나 기소라는 불필요한 오해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이 법이 통과되면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에 대해서 모두 시효 완성으로 면소(免訴) 판결이 내려지게 된다”며 입법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2021년 5·2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당시 당대표 후보 진영에서 최소 19명의 의원에게 돈봉투를 줬다는 사건이다.
윤관석 전 의원의 경우, 민주당 의원들에게 살포할 목적으로 경선 캠프 관계자로부터 6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0월 말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지만, 돈봉투를 받은 혐의를 받는 다른 의원들은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돈봉투 수수 혐의를 받는 의원을 위한 방탄 목적이 깔렸다고 여당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교흥 의원 측은 “법 시행 이전 범죄 행위에도 소급 적용하는 부칙은 넣지 않는 걸로 여당과도 협의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급 적용 부칙이 빠진 상태에서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아직 돈봉투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은 전현직 의원들이 처벌 근거가 사라지는 혜택을 입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또한 민주당 최고위원인 주철현 의원은 지난달 28일 제3자 뇌물죄를 규정한 형법 제130조에 ‘위법성 조각 사유’를 신설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로서 제3자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또는 공익 법인 등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추가하는 안이다. 정치권에선 제3자 뇌물죄로 기소된 이 대표 방어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방탄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기업들의 청탁을 들어주고 자기가 구단주로 있던 성남FC에 후원금 명목의 133억5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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