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모든 것’ 책임지는 남자 “내년 콩쿠르 우승자, 곧바로 한국 공연”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2024. 12. 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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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클레네르 쇼팽 인스티튜트 원장
슈클레네르 쇼팽 인스티튜트 원장. /뉴시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그에게 트로피를 건넨 인사가 있었다. 이 콩쿠르를 주관하는 쇼팽 인스티튜트의 아르투르 슈클레네르(52) 원장이다. 쇼팽 인스티튜트는 콩쿠르 개최는 물론, 쇼팽 연구서 출판과 음반 발매, 쇼팽 박물관 운영까지 맡고 있는 폴란드 문화부 산하기관이다. 행정·예술·학술까지 ‘쇼팽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기관인 셈이다.

슈클레네르는 지난 28일 방한 인터뷰에서 “원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치렀던 국제 행사가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 콩쿠르였다. 그때는 나도 지금보다 날씬했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당시 조성진의 환상적인 쇼팽 발라드 연주를 들으면서 우승을 직감했다. 전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모습도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쇼팽 콩쿠르 설명회를 위해 최근 방한했다. 쇼팽 콩쿠르가 한국에서 설명회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27년 창설된 쇼팽 콩쿠르는 흔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1958년)와 더불어 ‘3대 콩쿠르’로 불린다. 5년마다 열리는 희귀성과 오로지 쇼팽의 작품으로만 실력을 겨루는 상징성 때문에 우승자들은 곧바로 세계 음악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마우리치오 폴리니(1960년), 마르타 아르헤리치(1965년), 크리스티안 지메르만(1975년)부터 조성진(2015년) 같은 우승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도 해외 설명회를 자청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지난 세기의 명성에만 안주할 수는 없다. 명성 역시 리빌딩(rebuilding)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쇼팽 콩쿠르가 신경 쓰고 있는 화두는 ‘세계화’와 ‘온라인’이다. 지난 2021년 대회 당시 영상 조회수는 3740만회, 시청 시간도 800만 시간에 이르렀다. 광고 효과 가치는 3930만달러(약 540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자체 추산이다. 대회 기간 중에 쇼팽 콩쿠르가 클래식 음악계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30여 차례에 이르는 입상자 해외 순회 공연도 직접 추진한다. 슈클레네르는 “내년 10월 콩쿠르가 끝난 뒤 곧바로 다음 달인 11월에는 우승자의 한국 연주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슈클레네르는 쇼팽의 작품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 연구자 출신이다. 2001년 쇼팽 인스티튜트에 들어온 뒤 연구부부장(副部長)을 거쳐서 2012년 원장으로 임명됐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쇼팽의 곡으로 추정되는 미공개 왈츠가 발견됐을 때 가장 먼저 악보를 검토했던 학자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쇼팽의 필적과 닮은 필치로 엽서 크기에 악보를 적은 것으로 볼 때 작곡가가 주변 지인에게 선물한 곡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쇼팽은 감상적 작곡가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낭만주의 음악에 ‘혁명’을 가져온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면은 지금도 여전히 재해석·재평가되는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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