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전승절에 전례 없는 북한군 파견…'운명 공동체' 발판?
러 국방장관, 방북 과정서 북한군 파견 요청
"혈맹 중심 동맹 관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러시아가 내년 5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제80주년 전승절에 북한 부대 파견을 요청했다. 과거 소련과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국가들이 전승절에 군대를 보낸 적은 있어도 북한이 부대를 파견한 전례는 없다. 행사의 성격을 고려해 본다면 북러 관계가 미래지향적 운명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는 2일 러시아가 전승절에 맞춰 북한군 파견을 요청한 사안과 관련해 "과거 70주년이었던 2015년 열병식 행사에서 김명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축하사절로 방러한 사례가 있다"면서도 "과거에 이런 행사에 북한군이 군사 퍼레이드용 또는 북한군을 파견했거나 참석했다고 알려진 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달 29일 북한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전승절 열병식에 북한군 부대를 초청했다. 러시아는 지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날을 기념해 매년 5월 9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을 중심으로 전승절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80주년 전승절 행사를 '역대 최대'로 치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러시아의 전승절 열병식에 외국 군대가 참여한 사례는 있지만 주로 2차 대전 참전 국가에 한정됐다. 일례로 지난 2015년 제70주년 전승절에서는 중국, 인도, 몽골 등 과거 소련과 연합국으로 활동한 외국 군대가 참여했다. 당시 북한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 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하는 정도에 그쳤다. 애초 김 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불발된 것으로 군대 파견은 검토 대상도 아니었다.
북한이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내년 5월 전승절에 군대를 파견한다면 이는 북러 밀착의 쐐기를 박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향후 양국 관계가 운명 공동체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총장은 "러시아의 전승절은 2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인데 북한군이 열병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앞으로 양국이 혈맹을 중심으로 동맹 관계를 지속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열병식은 기본적으로 자주국방에 대한 국방력을 과시하는 자리인데 북한이라는 동맹국의 협력 관계를 과시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 전승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네 번째로 맞는 행사다.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승절 때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을 맹비난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전승절에서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전 세계를 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망대로라면 푸틴 대통령은 내년 5월 전승절에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열병식에 북한군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국제사회에 엄포를 놓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역시 러시아 전승절 부대 파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공산이 크다. 북한으로서는 파병의 반대급부로 러시아로부터 평양 방공망 보강 장비와 대공 미사일을 지원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러시아 국방장관과 만나 "러시아 영토 완정을 변함없이 지지하겠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한 상황이다. 러시아 전승절이 다자외교의 장이라는 점도 고립된 운신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북한으로서는 가치 있는 무대다.
이러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내년 러시아 전승절에 참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지난 6월 평양에서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모스크바 답방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4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깜짝' 푸틴 대통령 면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의 방러가 관측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를 찾는다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2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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