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경제 위기 고조… 정부·국회 돌파구 찾아라

서필웅 2024. 12. 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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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식·코인 등 자산 거품론 확산
세계화 후퇴·공급망 해체 가속화
기존 경제의 틀 균열 가능성 커져
한국경제도 저성장 장기화 직면
尹 “전향적 내수 진작 대책을” 주문
거품 붕괴 따른 대규모 경기침체 우려
세계적 경제 투자자·석학들 잇단 지적
트럼프2기 미 우선주의·보호주의 강화
韓 경제에 부정적 영향 끼칠 가능성 커
한은 “수출 둔화, 구조적인 요인 크다”
단순 금리 인하·재정확대 식 접근 안돼
전문가 “인재 양성·기술 경쟁력 높이고
새 인물 기용 내각 쇄신해 대응 나서야”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에 따른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 등으로 국제 무역 질서에 변화 가능성이 커지며 국내외 경제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은 주가지수가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등 활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지나치게 비싸진 자산 가격에 대한 ‘거품론’이 확산 중이다. 거품이 터질 경우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하는 대규모 경기침체까지 거론된다. 국내 경제는 더 심각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하는 경제정책들이 한국 경제의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는 가운데 구조적 한계까지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현실로 다가온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권과 정부의 역할론이 요구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투자자들과 석학들이 미 대선 이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을 지속해서 경고해왔다. 지난해부터 침체 가능성을 제기해온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지난 9월 인터뷰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대해 낙관론자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당시 격화되던 중동문제, 우크라이나전쟁 등이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거론하며 “지정학적인 부분은 더 불안요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주식과 가상자산 등 미국 자산시장의 거품 우려가 확산 중이다. 미 대선 이후 거세게 분 ‘트럼프 랠리’ 영향 속 미국 3대 주가지수 중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가 지난달 29일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운데 주가가 너무 비싼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 속속 나오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강남 라운지 전광판에 각종 가상화폐의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올해 들어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증시 랠리로 11월 기준 S&P500 지수에 속하는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2배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5년 평균치인 20배를 훌쩍 넘어서는 수치로 2000년 ‘닷컴버블’ 붕괴 직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시가총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값인 PER은 높을수록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지난달 초 “누군가는 창밖을 내다보며 걱정해야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심지어 미 증시의 흐름이 대공황을 한 해 앞둔 1928년과 유사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 11일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인 존 오서스가 “1928년 대선 이후 다우지수의 흐름이 올해 대선 이후 흐름과 상당히 유사하다. 대선 직후 주가가 이토록 비싼 적은 1928년과 올해뿐”이라고 밝혔다.

주식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친코인’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 속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가격이 연일 천장을 뚫고 있다. 이런 가상자산 강세가 ‘거품’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중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미리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지난달 27일 인터뷰를 통해 “자산 보존을 원한다면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 등 유형의 자산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거품 붕괴로 인한 대규모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지난 9월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행한 연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그는 “(대공황이 발생했던) 1920년대와 2020년대 사이에 몇 가지 유사점이 눈에 띈다”면서 “세계 경제가 경제민족주의, 세계무역 붕괴, 대공황을 초래한 1920년대의 압력에 버금가는 ‘균열’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라가르드 총재는 세계화 후퇴 가능성, 글로벌 공급망의 부분적 해체, 거대 기술 기업의 시장 지배,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 등이 2020년대 세계 경제의 균열 요소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라가르드 총재의 연설 이후 두 달 만에 균열 가능성이 훨씬 확대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관세 부과 정책과 대중국 경제 봉쇄 확대 등이 모두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의 해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로 대표되는 빅테크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영향력을 확대하며 이들의 시장지배력 확대 가능성도 한층 커진 상황이다.

이는 고스란히 한국경제의 향후 전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우리 경제는 ‘저성장 고착화’에 빠져들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이 내년(1.9%)과 내후년(1.8%) 연속 잠재성장률(2%)을 밑돌 것으로 한국은행은 진단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돈 해는 석유 파동,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여파 등에 따른 6차례에 불과하다. 모두 외부 충격이 컸던 시기이며, 2년 연속 1%를 밑돈 적은 없다. 비상등이 들어온 한은이 10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6회 연속 내린 뒤 15년9개월 만에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최근 불거진 경제위기 의식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내년 출범에 따른 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크게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28일 “수출 증가세 둔화는 일시적 요인이 아닌 주요 산업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 저하 등 구조적 요인이 크다”고 설명했었다.

전문가들은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식의 고전적인 접근법만으로는 구조적인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당장 경기가 어렵다고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에게 일회성 현금 지원을 주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자영업자가 소기업으로 올라서거나 재취업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는 등 사회 역동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공교육 정상화 즉 교육개혁을 통한 인적자원 개발”이라며 “두 번째로 미래 경제 패권을 잡을 AI 등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우리나라는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글로벌 성장률이 떨어질 때 할 수 있는 정책이 많지는 않다”며 “조금이라도 하락세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정책 확대, 감세정책 등을 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업이 기술 혁신을 통해 가격경쟁력, 산업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경제’에 방점을 두고 내각을 쇄신해 새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앞으로 경제 상황이 트럼프 재집권으로 달라지는 만큼 새 인물로 경제정책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며 “그동안 우리가 중요시하던 경제동맹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큰 의미가 없는 만큼 앞으로 유연하게 경제정책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전향적인 내수·소비 진작 대책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민생토론회에서도 “소비 심리를 억누르는 규제, 제도들은 과감하게 혁파하는 것이 민생·소상공인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서필웅·김수미·안승진·조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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