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일 예술가, 강제동원 역사 상흔 어루만지다
가사이 겐이치 연출가
600년 동안 이어온 日 가면극 ‘노’
양국 악기·예술 어우러진 첫 작품
과거사 직시·반성 메시지 녹아있어
민영치 음악감독
재일교포 출신… 합작 먼저 제안
판소리 등 더해 한국적 색채 강화
예술의 힘으로 상처 치유하고파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전통 가면극 ‘노(能)’와 한국의 전통 가무가 만난 공연 ‘망한가(望恨歌)’ 연출을 맡은 가사이 겐이치(75)는 지난달 29일 세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일 양국 전통 악기와 예술이 한데 어울린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망한가’는 다다 도미오(1934~2010) 도쿄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대본으로 1993년 초연된 현대 노가쿠다. 일제강점기 당시 결혼 후 1년 만에 일본 규슈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다 숨진 조선(한국) 청년 ‘이동인’의 아내 이야기다. 훗날 한 일본인 승려로부터 남편이 생전에 쓴 편지들을 전달받게 된 늙은 아내의 한과 슬픔을 다룬다.
가사이 연출가는 “‘망한가’는 과거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 동아시아에 큰 피해를 끼친 일본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녹아 있다”며 “다다 선생님은 일본이 저질렀던 일을 반성하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풀어드리기 위해 이런 작품을 썼고 노로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다 교수는 강제 징용뿐 아니라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주민 대학살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참상 등을 다룬 작품들을 통해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성찰하도록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전례가 드문 양국 전통예술 분야의 합작공연이 이뤄진 데는 ‘망한가’ 음악감독을 맡은 재일교포 출신 전통음악가 민영치(54)의 역할이 컸다.
아내 역의 우자와 히사(75)를 비롯해 북과 관악기 악사 등 일본 전통 예술가 9명과 젊은 시절 아내 역의 이하경 등 국립국악원 무용단·민속악단·정악단 단원들이 함께한다.
특히 우자와 히사는 일본 중요무형문화재(한국의 인간문화재) 노가쿠 보유자다. 가사이 연출가는 “우자와는 역시 노 배우였던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노를 해와 일본 노 무대에선 으뜸”이라며 “이번 공연에 그의 딸(우자와 히카루)도 코러스로 참여한다. 이렇게 다음 세대들이 같이하기 때문에 노가 600년 동안 유지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망한가’ 공연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때처럼 최근 ‘사도광산’ 관련 ‘강제 징용 역사 명시’ 등의 약속 위반 문제를 일으킨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일본이 식민지 시대 때 한국 등에 괴로움과 부담을 준 건 사실이니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한·일 양국이 정치적으로는 힘들지 몰라도 예술적으로는 뿌리가 비슷한 만큼 활발히 교류하면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맺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번 ‘망한가’ 공연을 계기로 과거 고통과 슬픔을 예술의 힘으로 치유할 방법이 뭔지 고민하면서 한국 예술계와 공동 작업을 많이 하고 싶네요.”
‘망한가’ 한국 공연에서는 이지선 숙명여대 일본어과 교수가 사회자로 무대에 올라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할 예정이다. 본 공연에 앞서 시창 ‘추강이’와 시나위(즉흥무)로 한국적인 멋을 더하고, 공연이 끝나며 일본 노의 ‘마이바야시 샷쿄우’로 마무리한다. 마이바야시란 노 속 주요 장면을 공연이 끝난 뒤 노래와 춤으로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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