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예산 확보’ 주장하는 민주당은 왜 ‘감액 예산’ 카드를 흔들까

“민주당은 기한 내에 정부 예산안을 심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요불급한 예산은 삭감하되 민생 회복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은 증액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민주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당과의 합의 불발로, 그리고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내년 예산에서 총수입 3천억원, 총지출 4조1천억원을 감액하게 되었습니다.”
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이 예산안의 본회의 상정을 미루고 ‘10일까지 여야가 더 협상하라’고 요청한 직후의 발언입니다. 그동안 ‘민생 예산 확보’를 줄기차게 외쳐온 민주당이 정부안인 677조4천억원보다 오히려 4조1천억원 깎아낸 ‘감액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이유가 궁금한 분들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야당이 불경기에 눈물을 머금고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걸까요?
민주당이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당의 반발 속에 단독 처리한 감액 예산안은 사실상 ‘증액의 지렛대’로 풀이됩니다. 예산 심의·확정 권한을 가진 국회가 증액도 할 수 있다면 감액 예산안을 처리할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헌 논의에 불이 지펴질 때마다 국회의 예산 증액 편성 권한을 명시해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현실화하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개헌 자체가 좀처럼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민생 예산이나 지역구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감액을 통해 여지를 마련한 뒤, 정부·여당의 선의에 기대거나 물밑 거래에 나서는 것밖에 없습니다. 정권 교체 전까지, 예산철마다 여야는 주로 막판 담판으로 정국을 타개해 왔습니다. 이때 여야 원내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는 협의체를 꾸려 일종의 ‘패키지 딜’을 해왔는데, 국회법엔 없는 ‘소소위’라는 형식 탓에 밀실 담합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속기록도 없는 소소위에선 각종 쟁점 예산과 현안들이 한방에 처리되곤 합니다.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여당은 명분을, 야당은 실리를 챙기는 과정입니다. 야당 원내대표는 이때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금의환향하지요.
이런 미풍양속(?)이 깨진 건 윤석열 정부 들어서입니다. 소소위는 열리지만 여야 간에 대화와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협상장에 들어갔던 원내 지도부 의원과 통화가 연결되면 기자들의 첫 마디는 보통 이겁니다. “여당(야당)은 뭐 해달래요?” 아시다시피 협상의 출발점은 서로의 패를 열어보이는 일입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타협 가능한 선을 재보는 일이지요. 그런데 윤 대통령이 집권한 뒤 여당을 만나고 온 야당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은 3년째 한결같습니다. “저 사람들은 원하는 게 없어요.” 입법과 예산 확정, 인사청문 절차의 주도권을 쥔 170석 야당에게 원하는 게 없는 집권여당이라니요. 예산 철이 되면 야당 원내대표실과 국회 본청 예결위원장실의 문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여권 인사들이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 거죠.
이런 상황을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야 교착 상황에서 ‘김건희 특검법’이나 이재명 대표 수사 문제는 본질적인 원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4대강 사업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때도 행정수도 이전 같은 굵직한 정권의 의제가 있었다. 집권 세력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파트너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걸 위해 예산과 입법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엔 핵심 의제가 없다. 하고 싶은 게 없는 행정부의 문제가 입법부 교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원하는 게 없는 사람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협상을 통한 증액의 길이 멀다 보니, ‘벼랑 끝 전술’을 통한 증액의 길을 야당이 가고 있는 거죠. 감액 예산안은 연말 예산안 시간 싸움에서 이재명 대표가 택한 전략입니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이끌게 된 2022년부터 민주당은 야당 단독 수정 예산안 처리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써왔습니다.
이 대표는 사석에서 ‘감액 예산안은 내 아이디어’라고 자주 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산안은 국회법에 따라 12월2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고, 연말까지도 의결되지 않으면 준예산(전년에 준해 편성하는 예산) 체제로 들어가기 때문에, 야당은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연말이 다가오면 예산안 합의에 응하곤 합니다. 성남시장 시절인 2013년, 새누리당 시의회의 몽니로 준예산 사태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 이 대표도 ‘준예산 상황이 오면 의회가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당을 압박하다 준예산 체제로 가느니, ‘선 감액안, 후 추경안’이라는 극약 처방이 낫다고 본 것 같습니다.
‘검·경, 대통령실과 감사원 특활비 0원’ 예산안도 사실상 충격 요법에 가까워 보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원하는 게 없는 여당’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항목이니까요. 다만 극약을 쓰는 사람은, 그 자신도 극약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초유의 감액 예산안으로 여당을 압박하는 민주당은 이를 통해 민생 예산 증액이라는 본질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저 ‘너도 나도 다 죽고 보자’는 카드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요.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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