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도려낸 ‘尹의 예산’…여야 ‘치킨게임’ 속내는?
‘검찰·감사원 특활비’ 묶은 野에 與일각 ‘이재명 방탄’ 반발
합의 가능성은?…‘2024년 예산’은 법정시한 19일 넘기고 확정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날치기' 통과시킨 예산안 철회하고 사과하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처음부터 자기들이 깎아놓고 야당 탓만 한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두고 여야의 '치킨게임'이 계속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원안에서 4조 이상 도려낸 '감액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키자, 정부 여당이 "예산 독주"라며 반발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오는 10일을 '합의 데드라인'으로 못 박고 중재에 나섰으나 양측 모두 양보를 거부하고 있다.
다만 '감액 예산안'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여야 모두 출혈이 불가피하다. 특히 윤 대통령 공약 이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어 여당의 피해가 더 클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이재명표 예산 증액'을 비롯해 여당이 어떤 합의 카드를 내미느냐에 따라 예산 타협 여부 및 시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李예산' 걸고 깎은 '尹예산'…"尹정부 손발 묶여"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673조3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정부 원안 예산안(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 깎인 규모다. 거야의 '감액 예산안'을 정부 여당은 막아내지 못했다. 예산 증액과 달리 감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이 예결위에서 통과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여권은 이를 '이재명 방탄 예산'이라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이 도려낸 상당수 예산이 이 대표를 수사하고 있는 기관의 '살림'과 관계됐기 때문이다. 실제 '감액 예산안'에 따르면,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9100만원)와 특활비(80억900만원) △경찰 특활비(31억6000만원) △감사원 특경비(45억원)·특활비(15억원)가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정부의 '돈줄'도 묶였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82억5100만원)가 전액 삭감된 가운데, 정부 원안에 505억원으로 편성된 동해 심해 가스전(대왕고래 프로젝트) 예산은 8억원만 남았다. 전공의들의 복귀를 지원하는 예산은 3678억원에서 2747억원으로 1000억원 가까이 감액됐다. 특히 정부가 비상시를 대비해서 쓸 수 있는 예비비가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민주당은 '윤석열표 예산'을 깎기 위해 '제 살'도 도려냈다. 특히 지역화폐나 고교 무상 교육 등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을 증액하지 못했다. 예산을 앞세워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대의' 앞에, 중진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증액' 요구 역시 모두 사장됐다.
2023년에도 대치 끝 극적 타협…이번에는?
거야(巨野) 민주당이 '감액 예산안'을 밀어 붙이자 정부 여당에선 "민생을 외면한 다수의 횡포"(대통령실), "민주당의 예산 폭거"(추경호 원내대표),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서 하는 것"(구자근 국민의힘 의원) 등의 비판이 날아들었다. 민주당의 '감액안 철회 및 지도부 사과'가 선행되지 않으면 추가 협상은 없다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감액 예산안'이 이대로 통과될 시 민주당보다 정부 여당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대왕고래 프로젝트' '전공의 양성 지원' 예산 등 정부 역점 사업과 구조개혁에 들어갈 예산이 묶인다. '위기 비상금'으로 불리는 예비비가 대폭 삭감된 것 역시 정부로선 부담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감액 예산안'이 통과되면 '이재명 방탄' 논란이 일 수 있겠으나, 그 빌미를 준 건 정부다. 검찰과 감사원 등이 특활비 내역을 '클린(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특히 민주당이 잘라낸 예산을 끝내 복구시키지 못한다면 여당 지도부는 '무능력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른바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논란으로 지도부 내 분열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야당의 '예산 삭감'마저 막아내지 못할 경우 여당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거세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물론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도 양보하거나 바뀔 생각이 없는 내전 상황"이라며 "특히 야당의 '묻지마 총공격'에 제동을 걸 여당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결국 여당이 내미는 '협상 카드'가 예산안 타협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4년 예산의 경우 소위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을 처음으로 편성하고, 연구개발(R&D) 예산을 기존 정부안보다 6000억원 정도 증액하는 선에서 여야가 극적 합의를 이뤘다. 2024년 예산안은 법정시한을 19일 넘긴 2024년 12월21일에 처리됐다.
예산을 둔 여야의 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재자로 나선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오는 10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 의장은 여야 지도부를 향해 "민생과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희망을 품는 예산을 만들 책임이 국회에 있다"며 "법정 기한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이는 막중한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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